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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에서..
2004-11-21 오후 11:11:19치지익~ 치지익~ 무전기가 울리지도 않습니다.
금테두른 모자에 까만제복을 입고 손에 빨간 깃발과 녹색깃발..그리고 손전등을 들고
플랫폼으로 나와서 응시를 보낼 역무원도 없습니다.
"천오백원입니다..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표를 파는 대합실도 없습니다.
첫새벽의 한기를 피할 대합실의 나무의자도 물론 없습니다.
옆에 새로난 아스팔트 신작로로 승용차들이 휭~하니 달리지만 아크릴 간판에다가
무슨역이라고 새겨놓은 것도 없습니다.
휘잉~ 휘잉~ 무전기가 쏟아내는 소음을 대신해서 바람소리가 있습니다.
역무원의 깃발대신에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하얀꽃을 머리에 이고 있는 갈대들이
바람의 힘을 빌어서 진입신호를 보내기도 합니다.
표를 파는 대합실이 없어도 그냥 양심이 더 크고 화려한 대합실이 됩니다.
첫새벽의 한기는 피할 수 없지만 호~호~ 입에서 불어내는 입김이 그런대로
어디론가 떠난다는 기대를 충분히 상쇄시켜 줄만 합니다.
역이름을 새겨놓은 아크릴 간판은 없지만 늘 낯익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오늘은 낯익지 않은 나그네가 찾아왔습니다.
휘이잉~ 휘이잉~ 낯선 나그네를 반겨주는 바람도 오늘은 심장이 뛰는 모양입니다.
덩달아 플랫폼의 깃발같은 갈대들도 울렁여 줍니다.
평소에 이역과 낯익은 손님들도 제법 보이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걸음을 하는지 스스럼없는 까치 한마리...가을 알곡을 찾다가
쉬러온 참새 두어마리...사그라져 가는 생명을 아직도 부여잡고 있는 늦은 가을의
방아깨비 한마리..이곳도 여느역처럼 역앞에 시장처럼 번화한 개미들...
이곳도 그러고보니 서울역의 번잡스러운 모습과 다른것은 별로 없습니다.
마이크에서 울리는 안내방송이나 바쁘게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들과 에스칼레이트
의 기계음과 같이 인공적인 소음이 없을 뿐입니다.
간이역에서 나그네도 이제는 낯익은 단골이 됩니다.
엉덩이 붙일 나무의자도 하나 없지만 마음은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습니다.'이런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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