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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국화에 대한 小考이런저런 이야기 2006. 6. 7. 20:45
가을국화에 대한 小考
2004-11-13 오후 8:21:48가을...
우리가 이 단어에서 떠올리는 단어들은 무었이 있을까?
단풍..노란 은행나무...추수...김장...관광버스...허수아비...물안개....그리고 국화...
가을이라는 담어의 군집에 국화를 제할수는 없을 것이다.
국화는 다른 많은 꽃들중에서 유난하게 동양적 이다라는 느낌을 준다. 여름의 무더위를
막 벗어나 긴팔옷을 입고 서리를 맞이하는 계절에 절정을 이루는 우아한 꽃의 기품과
추위를 이겨내는 강인함은 곧잘 충신의 절개와도 비유되어 옛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아 왔다.
옛날 우리 선비들은 사군자라고 해서 항상 주변에 두고 군자의 도를 연마하곤 했는데
사군자는 매화, 난초, 대나무, 국화를 이르는 말이다. 매화는 이른봄에 잎보다 먼저 꽃이
피고, 난초는 향기가 있고 잎과 꽃이 아름다와서 좋아하던 식물이었다. 그리고 대나무는
잎이 항시 푸르고 줄기가 꼿꼿하여 절개를 상징하던 식물이었다.
반면에 국화는 꽃도 아름답지만 향기가 매우 짙어 사랑 받던 식물이었다. 국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3000년 전 중국의 [주례기]에 있는 牡鞠(모국) 이란 말인데
확실하게 어떤 꽃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를 않다. 그러나 그 이후 기원전 256년부터
49년까지 기록된 [예기]라는 문헌에 의하면 '황색의 꽃'이라는 설명이 있고 또 鞠자와
菊자는 한자의 발달에 의하면 같은 글씨로 여겨지므로 국화는 2500년-3000년 전부터
중국에서 가꾸어 오다가 우리 나라를 거쳐 일본 등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중국의 한 고조 때의 [서경잡기] 에서는 중양절(음력 9월9일)에 국화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에서는 국화를 약초로서도 권하고 있어 건강과 장수의 비결로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 당나라 때는 중양절에 건강을 기원하며 국화이슬로 몸을 닦고 귀신을 쫓으며
재난을 피하려는 뜻에서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생겨났으며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약효를 알 수는 없지만 해롭지 않고 신선한 자연의 기운을 섭취한다는 점에서 해봄직한
풍류라 생각된다. 이와 같은 중국 사람들의 국화에 대한 남다를 생각이 국화의 품종과
재배 기술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송나라의 휘종이 그린 그림 중의 국화를 보면 이때에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개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이후의 수많은 기록에도 국화에 관해 많이 전하여진다.우리 나라의 국화 종류는 300여종 정도가 있는데 서로 교배되어 정확한 분별은 어렵다.
국화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충숙왕이 원나라에
들어가서 원나라 공주에게 장가를 들어 본국으로 돌아올 때 원나라의 황제가 천하의
진귀한 화초를 많이 주었는데 그 중에 국화도 있었다. 라는 기록이 [양화소록]에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원나라에서 국화를 가져오기 훨씬 전에도 신라나 고려에서 아름다운
종류의 국화를 중국 내륙에서 가져와 길렀음을 중국의 기록에서 볼 수 있다하고 또 백제
시대에 오색의 국화 종류를 일본에 가져간 기록을 밝히고 있어 우리 나라에서 국화를
길러온 것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449년 에 강희안이 지은 [양화소록]에는 국화가 그 색깔별로 품종이 나뉜 점으로 보아
우리 나라에서도 국화가 일찍이 사랑 받으며 개량이 계속된 꽃이라 생각된다. 중국 송나라
때에는 중국의 국화도 상당히 발달된 것이었는데, 신라나 고려의 국화를 가져다 심은 것을
보면 당시 삼국 시대의 국화 또한 그에 버금가는 또는 그 이상의 수준이라 할 수 있는
독자적인 품종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점은 국화의 원래 야생종인 감국이나
구절초가 우리 나라의 영,호남 지방에 밀집하여 자생하고 있음을 보면 충분히 입증된다 .이상과 같이 여기저기에 있는 국화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았다.
지금처럼 서양에서 들여온 화분이 많지 않던 때였던 만큼 사람이 주변에 두고 재배하거나
꽃을 감상하기에 국화만 한게 없었을듯 하다.
그러니 가을에 모든 야생화들이 모두 자취를 감춘후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국화였던만큼
대단하게 사랑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워낙이 재배의 기술이 발달해서 양난이나 변종의 꽃들도 많고
계절이 없이 아무때나 꽃들을 접할수 있어서 옛날처럼 국화가 주는 감흥이 적다.
그러나 사실 국화는 자주 시인의 시상의 대상이 되기도 할만큼 사랑받았던 적도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시인들도 국화를 노래하고는 했지만 국화에 대한 시는 역시나
도연명의 시를 최고의 백미로 꼽는다.
採菊東籬下之節(채국동리하지절)
-도연명(陶淵明)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변두리에 오두막 짓고 사니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날 찾는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 하나 없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묻노니, 어찌 이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마음이 욕심에서 멀어지니, 사는 곳도 구석지다네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꽃 따며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편안히 남산을 바라본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산기운은 저녁 햇빛에 더욱 아름답고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나는 새들도 서로 더불어 둥지로 돌아오네
此間有眞意(차간유진의)
이러한 자연 속에 참다운 삶의 뜻이 있으니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말로 표현하려해도 할 말을 잊었네나는 개인적으로 말로 표현을 하고 싶지만 별다이 표현에 적합한 용어를 찾지못한
시인의 고민과 그 함축한 결말부분이 제일 마음에 든다.2주전인가 보다. 무소유와 둘이서 장모님을 뵈러 진해로 갈때에 대구-마산간 고속도로의
남지휴게소에서 본 국화들이다.
마침 마산에서 국화박람회가 있었던 주간인 탓에 이곳에 꽤 많은 종류의 국화를 화분에
소담스럽게 담아서 전시중이였다.
본디 꽃이름..새이름..나무이름..이런것들을 잘 외우지 못하는 반디불의 특성상으로
국화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막상 이렇게 여러가지 품종을 모아두고 있으니
분명하게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름을 알기는 어렵다.
그냥 국화...국화로만 알수밖에 없다.
그냥 물끄러미 바라만 보아도 정말 소담스럽다.
이쁘다거나 예쁘다거나 하는 수식어가 별로 어울리지 않는게 국화인듯 하다.
그냥 무심히 바라보는게 국화를 바로 보는 것일지 모르겠다.'이런저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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