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65년만에 고국에 오셨던 그분...
    아마추어 무선 2006. 5. 29. 17:38


    65년만에 고국에 오셨던 그분...

     


    내가 햄(먹는 햄 아님다..아마추어무선)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처음으로 입문하였던 그해 겨울... 빠지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몰입하는 성격때문에
    시작 하자 말자 거금을 투입하여 멀리 외국의 햄들과 교신이 가능한 단파(HF)대
    무전기를 장만하고 여러일본국들과 교신을 나누는 재미에 취했을때다.


    일본의 햄들은 역사도 오래려니와 숫적인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지라
    7mhz대는 거의 일본사람이 독차지 할 정도이다.


    어느 일요일... 그 당시 수많은 취미들 중에서 내가 이렇게 빠져본적이 없었던 때라서
    일요일 나들이는 생각도 못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무전기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마이크만 잡고 살던때였는데 그 날도 일어 나자 마자 무전기 앞에 앉아서 이리 저리
    노브를 돌리며 비어있는 주파수를 찾았다.


    언제부터인지 7.070mhz를 기준으로 위쪽은 한국이 아래쪽은 일본이 주로 쓰는게
    관행이였다. 사실 특정한 주파수를 어디가 쓴다던지 하는것은 법적으로도 잘못된
    일인데 하여튼 한일간에는 그런 묵계가 조금 존재하고 있다.
    지금도 왕왕 그일로 시비가 붙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주파수는 주인이 없다
    먼저 사용하는 사람이 주인이고 긴급한 일이 있는 사람이 최우선권을 가진다.(비상시에..)


    그래서 사용하지 않는것 같아도 혹시 누가 사용중이지는 않은지 그것부터 확인한다.


    그날도 마침 비어있는 것 같아서 `디스 프리퀜시 유징~`하고 확인에 들어 갔다.
    대답이 없어서 다시 한번 반복하는데 응답이 왔다.
    `사욘 준이니니다` 어설픈 한국어가 들려왔고 그때 막 입문한터라 일본사람이 예까지
    올라왔나~ 보다 했다. 다시 들려 오는 목소리 `쪼금만 기다려주세요` 한다.
    교신을 하다보면 일본사람들은 한국어를 배울려고 가끔씩 우리말로 교신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겠거니 하고 좀 기다렸더니
    `콜링 스테이션~ 나와 주세믄 고맙습니다..`한다. 그리하여 맺어진 인연...


    그후 몇번의 교신을 통해 참으로 눈물겨운 사연을 알게 되었었다.


    첫 교신할 당시 나이가 67세였는데 일본오사까에 사시는 분이였다. 백일도 되기전에
    모친을 여의고 아버지의 등에 업혀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살았는데 일본에서 한국인임이
    밝혀지면 천대받는다고 아예 일본인으로 알고 자랐다고 한다.
    그 아버지도 완벽하게 일본인으로 살고 본인은 아예 한국인이라는 사실조차도 망각하고
    그렇게 살던중에 임종을 하시기전에 한국인이며 경상북도 청송이 고향이며 무슨 무슨
    읍에는 일가도 살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하였다.


    그 충격이야 얼마나 컷겠는가? 자신이 그토록 조센징이라고 놀리며 천대했던 그 한국인이
    바로 자신일 줄이야...
    그래도 그 사실을 가슴에 묻어두고 결혼도 하고 사업도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불혹을 지나
    50살에 접어들면서 고향이 생각나드라는 것이였다.


    처음에는 명절이나 가끔씩 생각나더니 점점 그 회수가 늘어나 앉으나 서나 고향을 생각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인 부인에게 어느날 사실대로 털어 놓았는데 그 부인은
    이제 형편도 좋아졌고 조총련쪽도 아니니 한번 고향에 다녀오라고 하였단다.
    그러나 막상 가볼려고 마음을 먹고 보니 한국어를 한마디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고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후 10여년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현해탄이 보이는 해변가로 놀러갔다가 마침 한국의
    아마추어와 교신을 나누는 일본아마추어를 보게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일본어로
    일본에서는 한국어로 교신을 나누는데 일본인이 그렇게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나 싶어서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냐고 물으니 아마추어무선을 통하여 배웠다고 했단다.


    결국 60회 생신을 며칠 앞두고 자격증을 따서 단파대를 구하고 그 길로 개국을 해서
    조금씩 한국사람들과 교신을 하면서 점점 한국어 실력이 늘어갔고 자신도 생기고
    또 부산,경주등에 나이도 비슷한 아마추어친구도 생기고....


    그렇게 한 5년을 하고나니 한국말에 자신이 생기고 이제는 한국에 친구도 있고 하니
    65세되던해에 부관페리에 자기차를 싣고 처음으로 조국땅을 밟았단다.


    새벽에 부산항에 도착하는데 그렇게 눈물이 날수가 없었더란다. 일본에 사는 동안
    울어본 기억이 없다는 그 어른...그후에는 1년에 꼭 2번은 한국에 온다고 청송과
    포항은 가까우니 한번 만나자던 그 분과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그후에 IMF를 맞았고 그 여파로 직장을 포항에서 상당한 거리에 있는 충청도 아산으로
    옮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몸이 나빠져서 먼 여행은 못하지만 오사까에 앉아서 가끔식 청송지역에 있는 아마추어와
    교신을 통해서 고향소식을 듣는다고 하시며 아마추어 햄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직도
    향수병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하시던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이사하여 살았던 곳이 5층짜리 아파트인데 옥상이 삼각이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곳이
    아예 없다보니 단파대 안테나를 설치할수 없어서 지금은 휴면기에 들어가 있었고 간간히
    차에서만 근동의 동호인들과 교신을 주고 받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가 작년에 1가구
    2주택의 불리함을 무릅쓰고 5층짜리 아파트의 5층을 구입했다.
    차일 피일 허가를 미루고 있는데 빨리 허가를 받아서 아직도 그분에 살아계시다면
    다시 그 후일담을 전해 듣고 싶다.


    조만간에 집이 해결안되면 또 마눌모르게 사고쳐서 차에다 단파대를 장치할지 모른다.


    이크~~ 이건 비밀인데...클났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