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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롬멜을 읽고..
    좋은글,영화,책 2006. 4. 24. 23:58


    롬멜을 읽고..  
     

     

    며칠전에 서울 출장길에서 주간지에서 읽은 서평에 뽐뿌질이 되어 사게된 책 한권..
    그책의 주인공인 롬멜원수...


    사막의 여우로 기억되는 그는 고등학교때 처음 알았었다.
    그 당시 프라모델을 즐겨했는데 아카데미에서 나온 사막전차의 모델의 상자에서}
    독일군복에 사막안경을 걸친 모습을 발견하고는 반했던적이 있는데 마침 그달치
    `학생과학`이라는 잡지에 특집으로 실린 그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


    그러나 그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고 세월이 흘러서 이 책을 접하는 순간 다시금
    그에 대한 흥미가 전율에 떨게하기에 충분했다.


    평소에 바쁜 몸인지라서 책을 집중해서 읽기가 좀 힘든 처지인데 이 책은 3일만에
    다 읽어버렸다.


    44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이렇게 단 시간에 읽어보기도 처음이다.
    원래 독서습관이 줄까지 쳐가면서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구가 나오면 잠깐동안
    그 문구에대한 내생각을 정리하면서 읽다보니 속독과는 거리가 먼데 이책이 주는
    흡인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담박에 다 읽고 말았다.


    대개의 전쟁이 그렇듯이 승자측의 지휘관은 항상 영웅으로 그 반대쪽은 전범으로
    대접받게 마련인데 적국의 병사로부터조차 신사로 추앙받았으며 그기에다가 승리의
    행운마저 얻을수 있다면 그는 진정 행복한 군인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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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THOS ROMMEL
                   롬   멜

     

     

    마우리체 필립 레미 지음/ 박원영 옮김

                                        생각의 나무

     

     

     


    ---------------------------------------------------------------------------


    롬멜 Erwin Johannes Eugen Rommel (1891-1944)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육군원수.
    연합국과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으로 알려졌으며 진정한 군인으로서 살기를
    원했으나 종전이 다가오는 1944년에 자살하였다.


    가장 간략한 그에 대한 설명일것이다.


    좀더 자세한 그의 일생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891년 11월 15일 뷔르템베르크 하이덴하임안데어브렌츠 출생. 1944년 10월 14일
    울름 근처 헤를링겐에서 사망. 롬멜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교사였으며 어머니는
    고위 관리의 딸이었다.


    1871년 독일 제국이 수립된 이후에는 독일 남부의 중산층에서도 직업장교가 인기
    직종이 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집안에 군인 출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910년 제124 뷔르템베르크
    보병사단에 사관후보생으로 들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중위로 프랑스·루마니아·이탈리아에서 싸웠다. 
    이탈리아 산악부대를 지휘하면서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기동력을 살린 기습공격
    으로 큰 전과를 올렸다. 그는 철십자훈장을 수상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뒤 롬멜은 군대에 남았다.
    프로이센-독일군에서는 일반참모로 복무하는 것이 진급의 정상 코스였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길 거부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방군과 히틀러의 국방군에 있을 때에
    그는 한결같이 일선 보병장교로 근무했다. 많은 위대한 장군들과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데 각별한 재능이 있어 각종 군사학교의 교직에 임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얻은 전투경험이 젊은 병사들에게 군인정신을 강조한 그의 사상과
    결합하여 그가 지은 군사교본 <보병 공전술 Infanterie greift an>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었다. 이 교본은 1937년 처음 출판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총통 사령부 경호대장으로 임명되었지만 그것은 일선에서
    싸우길 열망하는 군인에게는 별로 만족스러운 직책이 아니었다.
    롬멜이 빠른 진급을 한 것은 히틀러와의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
    롬멜이 지휘하는 부대를 사열하던 히틀러는 친위대가 있는 한 사열을 할 수 없다는
    롬멜대령의 주장을 시작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히틀러를 경호하는 임무를 맞아 히틀러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독일군 수뇌부가 대부분 귀족출신이란 점이 히틀러의 평범한 시민계급출신인 롬멜에
    대한 애착을 크게 했는지도 모른다.


    롬멜은 1940년 2월에 제7기갑사단의 사단장직을 맡으면서 그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잡는다. 사실 그는 기갑부대를 지휘한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공격임무에서 기계화된
    기갑부대의 엄청난 가능성을 재빨리 파악했다.


    프랑스 해협 연안에서의 기습공격은 그의 대담성과 창의력을 알려주는 최초의 증거가
    되었다. 롬멜이 지휘한 제7기갑사단은 연합군으로부터 `유령사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부대는 구데리안과 함께 전격전, 기동전이 무엇인가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1년 후인 1941년 2월 롬멜은 리비아에서 패배 일보 직전에 처한 무능한 이탈리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독일군 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북아프리카의 사막은 그가
    가장 큰 전공을 세운 무대가 되었으며 동시에 월등히 우세한 적에게 패하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의 전쟁터에서 대담무쌍한 기습공격을 감행한 그는 아군과 적군으로부터
    `사막의 여우`로 불렸으며 굉장한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성공에 감동한 히틀러는 즉시 그를 육군 원수로 승진시킴으로서 그에 대한 신뢰를
    보냈다.


    히틀러의 견해로는 북아프리카는 지엽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중되는 보급의 어려움으로 지친 부대를 철수하게 해달라는 롬멜의 요청을 무시하고
    1942년 여름 히틀러는 카이로와 수에즈 운하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렸다.


    롬멜이 이끈 독일-이탈리아군은 알렉산드리아에서 96㎞ 떨어진 이집트의 엘알라메인
    에서 몽고메리가 지휘하는 영국군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 무렵 그는 아랍 세계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아랍 세계에서 영국의 지배로
    부터의 `해방자`로 비쳤기 때문이다. 고국에서는 선전성을 통해 그를 무적의 `국민의
    원수(元帥)`라고 찬양했다.


    히틀러정부의 선전상이던 천재연출가인 괴벨스는 롬멜이라는 국민적 영웅을 만들어
    내므로서 정권의 기반을 다질려고 하였다.


    그러나 대(對)이집트 공격은 그의 재능으로서도 역부족이었다. 피로와 질병으로 약해진
    롬멜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사이 몽고메리는 엘알라메인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비록 전선에 복귀는 했지만 1942년 10월말 그는 엘알라메인의 제2차 전투에서
    패하여 튀니지의 독일군 교두보로 퇴각하였다. 1943년 3월 히틀러는 그를 본국으로 송환했다.


    그 후 아프리카전선은 수 개월후에 완전히 무너져서 전선을 버리고 말았다.


    이 아프리카에서의 패전은 결국 모든 전선에 대한 약화를 몰고 왔다.


    1944년 롬멜은 연합군의 침공 가능성에 대비하여 프랑스 해협의 해안방위 책임을 맡았다.
    이때 기동전으로 승리를 얻었던 롬멜은 해안 방어시설들을 건설하는 데 비상한 창의력을
    발휘했다. 그는 적이 대규모의 교두보를 설치하는 것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저지해야 하고 반격에 대비하여 해안의 방어선 뒤에 강력한 예비대를 배치해 두어야 하며
    적군을 바다로 퇴각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침공전의 운명은 첫날에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룬트슈테트는 연합군을 내륙 깊이 유인하여 기갑부대로 전멸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항공전을 경험한 롬멜은 제공권이 없는 상태에서의 기갑부대 이동에 제한을
    받을 것이며 적이 교두보를 구축하기 전에 해안에서 적군을 격파해야 한다고 했다.


    이 룬트슈테트와 전술을 놓고 벌인 설전을 이른 바 전차논쟁은 나중에 전후에도 큰 논란을
    만든다.


    롬멜은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른 지휘관들은 대륙과 가장 가까운
    깔레에 상륙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롬멜의 주장은 1944년 6월 6일이 되면서 모두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미
    제공권을상실한 독일군은 후퇴하면서 전멸당하는 것 뿐이었다. 롬멜은 상륙당일 아내의
    생일로 베를린에 있었다. 전선에 복귀했을 땐 이미 전선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일찍이 1943년 가을에 정치적 욕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순수한 직업군인이었던 롬멜은
    전쟁을 도저히 승리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또한 그는 히틀러가 그 사실을 직시할
    자세도, 연합국들과 강화를 맺어야 한다는 불가피한 결론을 내릴 준비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롬멜은 총통에 대한 군인으로서의 충성과 조국에 대한 애국심에서 심하게 갈등했다.


    1944년 봄 비밀리에 결성된 히틀러 반대파에 가입한 롬멜의 친구 몇 명이 그에게 접근하여
    히틀러가 축출된 뒤에는 롬멜이 국가 원수직을 맡아야 한다고 제의했다.
    그는 그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지만, 독일을 전쟁으로부터 구출하려는 공모자들은 히틀러
    암살계획을 롬멜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롬멜이 정치적인 목적의 살인을 옳게 생각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히틀러가 내리는 일체의 처형명령을 한결같이 무시했던 것이다.
    연합군의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몇 번이나 히틀러에게 전쟁은 패했다는 것과 연합국
    들과 강화를 맺어야한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했다.


    1944년 7월 17일 전투가 한참 치열할 때 롬멜의 차가 영국의 폭격전투기들의 공격을 받아
    길에서 탈선했다.
    차는 공중으로 튀어올랐고 그는 머리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후 8월에 집으로 돌아가 요양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그 사이 1944년 7월 20일에 있었던 히틀러 암살음모는 실패하고 롬멜이 음모자들과 접촉한
    사실이 밝혀졌다.


    히틀러는 `국민의 원수`가 자신의 적으로 법정에 출두하고 법정에서 교수대로 보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2명의 장군을 롬멜에게 보내 그가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와 그의 가족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자살을 권유했다.


    10월 14일 롬멜은 강요에 의한 음독자살하여 일생을 마쳤다.
    그의 장례는 최고의 예우로 치러졌으며 `사막의 여우, 롬멜`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정치에 서툴렀던 롬멜의 미래는 이미 비극으로 상정되어 있었고
    귀족들이 주류를 이루던 사회에서 시민계급 출신 원수가 겪어야 하였던 인간적인 고민과
    고통을 알수 있었다.


    무었보다도 롬멜의 가치는 포탄이 떨어지는 전장에서 병사들과 같이 뒹굴고 같이 뛰고
    같은 위험에 처하고 같이 해결해나간 몇안되는 지휘관이라는 것이다.


    이시대에 우리 사회에도 이렇게 낮은 곳에 임할수 있는 고상한 정신력을 갖춘 지도자가
    너무 절실히 필요해서 그토록 가슴에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총통의 명령을 받들면서도 수십만 부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퇴각명령을 내리기
    까지 그가 얼마나 번민하고 고민했는지 ....
    그가 나치였는지 아니면 히틀러에 저항한 영웅이었는지는 차치하고 그는 인격적인
    군인인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 댓글 ************************************

     

     

     파랑공주  2003-12-14 오전 2:18:35   
    와....얼마전에 사셨다더니 벌써 다 읽으셨어요? 잼있는 책이었나봐요.....전 전쟁얘기는
    잘 몰라서^^;;; 반디불님께 이 사람 처음 소개받은거랍니다...ㅎㅎ 
     
      반디불  2003-12-15 오전 8:02:57    
    파랑공주님~~ 읽어볼만한 책입니다..자기직업과 직분에 참 충실했던 사람이구요..
    무었보다 일선병사들과 호흡하던 인간적인 사람이라서...강추합니다.. 
     
      반디불  2003-12-15 오전 8:03:49    
    은하수님~~들리셨군요..어제는 정크시장을 다녀왔습니다...올만에 혼자서 말입니다.. 
     
      반디불  2003-12-15 오전 8:04:51    
    산사랑님~~ 저는 속독법을 배우지는 못했구요..재미있다보니 그냥 다른일 제껴두고
    읽었습니다.. 
     
      햇살가득  2003-12-15 오전 9:20:01    
    언제나 삶을 윤택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시는 반디불님께
    감사드립니다^^ 
     
      반디불  2003-12-15 오전 9:22:05    
    햇살가득님~~ 어제는 잘 보내셨나요..날씨가 낼부터 추워진대니 감기조심하시길..
    음성이 내륙이라서인지 제법 춥더라구요.. 
     
      Jedi  2003-12-15 오전 9:54:04   
    TV에서 3,4번은 보았지요.. 예전에는 연휴때 이런영화 종종 나왔었는데. 
     
      반디불  2003-12-15 오전 10:07:55    
    흘~~제다이님..사실 영화에 나온 롬멜은 그냥 영악하게만 나왔지요..
    헐리우드영화가 철저한 우익이라서 항상 미국의 입장에서 보지요..
    역사소설중에서 고2때 22권자리 대망을 독파하고 받았던 그 감동을 오랬만에
    다시 받았답니다... 
     
      반디불  2003-12-15 오전 10:59:05    
    산사랑님~~반면에 몽고메리는 사실 과대평가가 좀되었지요..에그니마라고
    독일의 암호해독기가 완벽했고 독일측에서 그 정보들리 줄줄 쌘다는걸 감지하지
    못한데다가 나치당과 나치당에 입당하지 않은 몇몇 장군들간의 암투에다가
    공군력이 절대열세이다 보니..전사자및 부상자 통계를 보면 1:3정도로 독일이
    절대적으로 작다는 것이 그 정거이지요..반면에 아프리카 전쟁과 노르망디에서
    쏟아부은 물자는 연합국측이 10배나 더 많이 쏟아부어서 얻은 승리지요.. 
     
      반디불  2003-12-15 오전 11:00:41    
    오타 심히 많군요...독수리타법의 한계...정보들리-->정보들이..정거-->증거 
     
      스티븐  2003-12-15 오후 4:43:34   
    며칠전 롬멜전기-엘알라메인에서 몽고메리에게 대패하는 시점부터-를 영화화한
    <사막의 여우>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요즘 롬멜관련 서적이 많이 나오네요...
    이책도 다음에는 꼭 읽어보아야겠네요... 
     
      스티븐  2003-12-15 오후 4:45:33   
    그 영화 첫장면이 포로가 된 영국군장교-그 전기의 작가-에게 독일군이 영국포격을
    중지하는 특사(?)로 보내려고 하는 것을 신사적인 처사가 아니라고 롬멜이 부하장교
    들의 조치를 정정하는 대목인데.. 그때 부터 그 장교는 롬멜을 연구하여 그 전기를
    썼다고 하더군요... 
     
      식콩  2003-12-15 오후 4:49:09   
    저도 어렸을적에 얼핏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정말 파란만장한 삶이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스티븐  2003-12-15 오후 4:49:38   
    사실 롬멜이 북아프리카를 떠나는 엘알라메인전투도 절대적인 물량/보급의 열세,
    특히 전차전의 기본인 보급이 독소전과 제공권의 미확보에 따른 미흡에 기인한
    측면이 많지요... 특히 초기 단계에서 그 현장에 없었다는 점도 문제고...
    어찌되었든 롬멜은 대단한 군인임에는 틀림없는 듯 합니다.. 그의 쓰임새를
    제대로 용병술로 이용하지 못한 히틀러의 문제가 더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
    노르망디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됩니다... 
     
      식콩  2003-12-15 오후 4:51:18   
    역쉬 스티븐님은 전쟁박사셔요...^^ 
     
      한빛장  2003-12-15 오후 5:03:25   
    반디불님의 간추린 내용을 보니 영화스크린이 되어 롬멜을 보는 듯 합니다.
    한번 읽고 그렇게 정리를 잘 하시네요. 
     
      반디불  2003-12-15 오후 5:27:51    
    스티븐님덕에 그 영화를 보아야 겠군요...전쟁은 결국 병사의 용감함도 큰 역활을
    하지만 물자의 싸움이라는 것을 이 책으로 다시 느꼈습니다..
    히틀러는 원폭에 절대적인 기대를 걸었던것 같아요..그래서 항상 시간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지요..게다가 독일의 U보트의 몰락도 시작이 되는때라
    기갑부대의 기름을 그 조그만 항공기로 실어다 날랐으니 말이지요.. 
     
      스티븐  2003-12-15 오후 11:07:07   
    요즘 우리가 전차나 전투기, 전함을 생산하는 군비증강(?)에 많은 사람들이
    대북관계만 고려하는데 대양한국이나 오래후의 국제관계를 고려한다면
    이런 투자는 10~20년 걸리는 작업이므로 꼭 필요하다는... 사실 히틀러의
    독일이 육군중심의 군대 운영으로 해군은 U보트 이외에는 해양을 장악하지
    못하고 항구에 처박히고, 비행기는 런던폭격이후 급격하게 줄어들어 일찌감치
    제공권을 잃어버리고... 막강 독일육군도 결국은 그 내리막길을 달린 것을 보면....
    사막에서도 티이거전차가 막강했지만 역시 기름없이는 그저 토치카였을 뿐이고...
    이런 말이 이상한 곳으로... 
     
      반디불  2003-12-16 오전 10:10:17    
    스티븐님~~그렇습니다..우리나라의 군인비중이 육군:공군:해군이 40:30:30로
    되어야 한다고 본니다..해군은 이제 대양해군으로 그 방향을 잡아야 하며
    항공모함은 갖지못하드라도 갑판만깔면 항공모함으로 전환이 가는한 다목적함이
     몇척 있어야 하며 작전반경을 전세게의 바다로 확대해야하며 추후 잠수함의
    장거리 운용을 위해서 초장차안테나기지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공군은 항공모함들이 없는한 제공범위를 넓히기는 힘드니 초계기나 경보기가
    많이 필요하겠지요..이제 우리의 가상적에대한 비준도 북한:중국:일본:소련또는
    미국에서 30:30:30:10정도로 조정해야 합니다. 미국도 결국은 우리의 적이
    될수도 있다는 말입니다..좀 제대로된 시각을 가진 지도자가 빨리 나와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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