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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의 옹이로 새긴 낙관自作, 우든펜 만들기 2024. 10. 26. 20:03
지난 추석연휴에 가족들과 몽골을 다녀왔다. 몽골국적기를 타고 다녀왔는데 비행기마다 징기스칸 당시의 왕들의 이름이 붙여있을 정도로 징기스칸 시대의 추억으로 유지되고 있는 나라인 듯 했다. 아이들의 고집으로 초원의 낭만이라는 러시아제 승합차 푸르공을 대절해 여행 내내 이용했다. 쇼바가 부실하여 진동이 심했고, 의자는 딱딱해서 30분만 앉아있어도 엉덩이가 아팠다.
종일 달려도 초원이었다. 간간히 정차할 때가 있었는데 양, 소, 말들이 떼거리로 길을 횡단할 때 였다. 중국건설회사가 건설했다는 도로는 좁았다. “원래 공사전에는 넓었는데 몽골 고위층이 1미터쯤 잘라먹고 중국공산당 고위층이 1미터쯤 잘라먹어 좁아졌다”라는 가이드의 우스개소리가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그 초원에서 딥펜대 만들 나무, 펜트레이 만들만한 나무 등 중요한 곳마다 하나씩 줏었는데 아이들이 나중에 출국하거나 입국할 때 문제 생길 수 있다고 겁을 주어 다 버리고 두 개만 넣어왔었다. 몽골에서 출국할때나 우리나라 입국할 때나 아무런 제재도 없었다. 그래서 느낀 교훈은 자고로 간이 작으면 잃는게 많다이다.
바다가 없는 몽골, 전체인구의 대부분이 모여사는 울란바트로 사람들이 바다 대신 찾는다는 어기호수는 몽골의 수도에서 250킬로쯤 떨어져 있다. 그 호숫가 게르에서 하룻밤 유숙하였다. 짐을 챙기고 여유있게 호숫가 산책을 다서던 중에 풀밭에서 옹이 하나를 줏었다. 요모조모 살펴보니 제법 큼지막한 낙관면이 나올 것 같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자리에서 비 맞고 눈 맞고 몽골의 어마무시하다는 추위를 견뎌왔는지 몸통이 거북등처럼 갈라져있다. 아마도 여기 게르촌을 건설하면서 반입된 목재에서 떨어져 나온 것인가 싶기도 하고 송진 성분이 많은 테두리가 이렇게 갈라질 정도면 생각하는것보다 더 오래 초원을 지켰을 수도 있겠다 싶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는 갈라진 흠 몇 개였는데 1차로 샌딩을 하고 솔로 문대어보니 그야말로 등판의 대부분이 큰 갈라짐, 작은 갈라짐의 무늬가 덮고 있었다. 낙관을 새길면을 전하고 고운 사포로 연마하니 속살은 상하지 않았다, 송진의 양이나 조밀한 조직등으로 볼때는 북방계 나무인 잣나무 계통이 아닌가 싶지만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두가지, 하나는 어떤 문구로 낙관을 새기면 좋을까였고 또 다른 하나는 갈라진 등을 어떻게 하는가 였는데 사포로 전체를 깎아낼까 고민하다가 오히려 무늬를 살리면 좋겠다 싶었다. UV에폭시에 가지고 있던 금분(金粉)을 섞어 골고루 바르고 자외선으로 말린후 다시 손을 보자 나름 괜찮은 모양이 되었다. 몽골 초원에서 금은 권능을 나타낸다. 징기스칸이 어려울 때 지금의 테를지 부근에서 금채찍을 얻어 초원의 권능을 얻었음을 만천하에 고했다. 그 자리에는 징기스칸의 동상이 서있다.
두 번째 문제는 잘 해결했고 어떤 문구를 새길지를 두고 여행후 내내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문득 신영복 선생의 책이 생각나 다시 뒤적이다가 그의 서예작품중 春風秋霜이 눈에 들어왔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의 출전은 중국 명나라 말기 때의 문인 홍자성(洪自誠)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하고,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뜻의‘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에서 유래한다.
채근담(菜根譚)의 저자인 홍자성의 본명은 홍응명이다. 자성은 그의 자이다. 이 책은 경구 풍의 단문 350여 조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중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국과 일본에서는 널리 읽혔다.
서양과 동양의 문제의 본질을 보는 방법의 큰 차이는 어떤 문제나 관점을 안에 두드냐 바깥에 두느냐에 있다. 동양은 대부분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그 원인을 자신의 안에서 찾으려고 한다. 많은 동양고전들의 공통적인 부분이다. 자신에게 문제를 귀결시키는 동양의 이런 교훈들은 많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존심(存心)」 편에는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책망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以責人之心 責己 以恕己之心 恕人).”라는 표현이 있다.
또한 공자는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편에서 “자신을 엄하게 책망하고 남을 가볍게 책망하면 원망이 멀어질 것이다(躬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矣).”라고 하고 있다.
홍자성이 살아내었던 명나라 말기는 부패한 권력과 바닥난 국고로 민심은 이반하고 흉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시대였다. 그런 절박한 시기에도 호의호식하는 부류가 있게 마련이고 그 부류중 일부가 식자(識者)층이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늘 반복되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 같은 식자(識者)층에 소속되어있던 홍자성이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는 확연했으나 정작 중국에서는 사장되다시피 했었다. 오히려 한국과 일본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전각면을 모사해 그 위에 글자의 배치를 정했다. 이번에는 음각으로 할것인지 양각으로 할것인지로 한 동안 고민하다가 춥고 외로운 초원에서 제 몸을 삭히고 삭혔을 옹이에 양각이 잘 맞게다 싶었다. 그리고 또 며칠 글자체 고민으로 보냈고 결국 편류육서통(偏類六書通)체로 결정했다.
그리고 또 며칠, 마침내 새김이 완성되었다. 옹이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더니 손에 쥐기가 쉽지는 않다. 뭐 어떠랴~ 내가 조금 불편하면 되는 것을...하고 생각하니 편해졌다. 낙관을 찍을 때 그 모양 때문에 쥐는것도 누르는 힘을 가하는것도 불편하지만 그만큼 또 조심조심할 수 있으니 글의 내용과 지극히 잘 어울리는 것 아닌가 견강부회牽强附會 해본다.
일전에 만든 딥펜대와 이번에 만든 낙관은 쓸때마다 아마 초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自作, 우든펜 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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