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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려진 나무 옹이에 새기는 낙관
    自作, 우든펜 만들기 2024. 11. 6. 21:11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음과 양,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항상 공존하는 법이다. 목재의 옹이도 그렇다.

    목재의 가지가 자라나는 부분이 목재로 가공했을 때 이 가지가 몸체에 뿌리 박았던 부분이 옹이로 나타난다. 옹이는 몸체와는 달리 유분이 많이 모여 있다. 소나무로 치면 송진 성분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송진이 많은 부분과 일반 목질 부분은 이 때문에 열팽창 계수같은 물리적 성질이 달라진다. 그렇다보니 목재로 다듬어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송진 부분이 일반 목질보다 수축이 좀 더 되어 나중에는 헐렁해져 구멍이 생긴다. 또 가공이 까다로워 목수들은 꺼리는 편이다. 그러나 송진을 디자인 요소로 해두면 오히려 물건의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슴속 한 곁에 옹이 몇 개 씩 가지고 있다. 마음속 옹이는 '응어리'라 부른다. 나 역시 가만히 생각을 가다듬어보니 옹이 같은 응어리가 참 많이도 있음을 느낀다.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 하나 녹여내고 있으나 그리 녹녹하지는 않다.

    회사는 납품을 위한 포장을 자주 하는데 포장용 목재를 많이 사용한다. 여름과 겨울, 밤과 낮을 지내는 나무들은 가끔 옹이를 뱉어 내기도 하고 절단 작업 중에 옹이 부분이 걸리적거려 일부러 피해서 자르기도 한다. 옹이 부분을 자르면 잘린 옹이는 좀 더 몸체에서 이탈이 쉽다. 주로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는 나는 하루에 두세 번 현장을 돈다. 그럴 때 가끔 굴러다니는 옹이나 나무 조각에 박혀 있지만 적당한 크기나 매끈한 정도나 송진의 많고 적음을 보고 골라서 가져온다.

    그렇게 가져온 옹이들은 책상 위에 그냥 방치해서 잘 마르도록 둔다. 최소 몇 개월이 지나면 다듬어 낙관 재료로 탈바꿈을 시킨다. 그 다음에 낙관면을 전하고 그 모양에 맞는 문구를 선정해서 낙관을 새긴다. 인주를 묻혀 종이에 눌러 찍는 순간 이제 옹이는 낙관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는다. 그렇게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환골탈태한 낙관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낙관을 꿈꾸는 옹이들도 10개 쯤 있다.




    자명 自明

    이 옹이는 첫째 딸 결혼 기념으로 좌탁 하나를 만들어 주었는데 나무를 정하느라 고민할때 지인으로부터 2~3백년된 자기동네 뒷산에 굿당을 허물며 가져온 마룻바닥 나무가 하나 있다고 해서 얻어 왔다. 좌탁을 만들기엔 좁아서 좌우로 참죽나무를 붙여 만들 때 여분을 잘라낸 자리에 있던 옹이이다. 오랜 세월을 거친 탓에 정말 말끔하게 옹이만 속 빠져서 정말 좋았다.

    새긴 문구는 자명(自明)이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에서 따온 내 법명(法名)이다.. 가톨릭의 세례명처럼 불교에서도 오계를 받으면 법명을 받게 되는데 나는 부산 영주암의 조정관 스님께 20대에 받았다. 부처님이 어느날 제자에게 자신의 열반을 예고하자 제자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시면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여야 합니까?"라고 했다. 부처님은 "너희는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내가 설한 진리를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는 말씀을 내렸다. 법명 탓인지 나는 독학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여여 呂呂
    이 옹이는 내가 가진 낙관 중에 가장 작은 것이다. 게 다가 이 옹이는 제 몸의 두 면을 톱날에 날려 먹었다. 작아서 잡기도 다소 불편하다. 찍을때마다 윗쪽을 확인해야 한다. 그레서 위쪽으로 가는 면에 조그마한 못을 박아 두었다.

    부처님 돌아가시며 남긴 마지막 말씀이 "세상은 덧없다/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수행정진하라."였다.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첫 걸음이 '세상은 덧없다'를 아는 것이다. 모든 말, 행위,삶 자체가 덧 없음을 알아야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가 가진 욕망, 재산, 자식... 세속적인 모든 것을 벗어나야 진정한 수행자의 길을 걸을 수 있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덧없다는 불교 사상의 핵심이다. 금강경金剛經에서 말하는  제법무상(諸法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우리말로 풀어놓으면 바로 '세상은 덧없다.' 이고 한문으로 함축한 낱말이 여여 呂呂이다. 가장 쉬운거 같지만 실상 가장 어려운 말이다.




    ​적수성연 積水成淵

    몸체에 박혀 있던 이 옹이는 크기도 작고 아담한데다 타원의 선이 살아 있어서 망치로 때려 빼낸 것이다. 보통 최소 6개월 이상 자연건조를 시키는데 이 녀석은 한달만에 새겼다. 마지막 글자인 연못 연淵은 넓은 그릇처럼 표현을 했다. 적수성積水成 세글자는 작게 새겨 연못에 빠지는 효과를 만들었다.

    뜻은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쌓여 연못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빨리 급하게 이루려고 하지만 그렇게 이룬 것들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본인이 다치건 남이 다치건 생채기를 남기게 마련이다. 무언가를 하루만에 하는 것보다 매일매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가지붕을 타고 떨어져 화강암 댓돌에 흔적을 남기는 빗방울 생각하자. 연못의 근원도 따지면 물 한방울들이 모인 것이다.



    적수입해 滴水入海

    크기가 조금 있는 옹이다. 일년정도 뜸을 들인 옹이다. 특히 다른 옹이들보다 송진이 많아 새기는데 애를 먹었다. 위쪽을 단을 깎아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부위를 만들었다.

    적수입해(滴水入海)라는 문구는 없는 말이다. 원래는 적수성하(滴水成河)로 작은 물방울이 모여서 내를 이룬다인데 원전은 역시 바다 보기가 쉽지 않았던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었으니 현대에 고쳐본다면 작은 물방울이 모여 내를 이루고 강으로 흘러 최종적으로 바다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만든 말이다.  한글로 '적수입해'를 검색하면 나오지 않지만 한문으로 '滴水入海'를 검색하면 내 블로그 글이 나온다.




    지치근호용 知恥近乎勇

    발견한 옹이 중에 가장 크다. 사실 옹이가 커서 목재의 가치가 떨어져 몸체의 일부와 함께 버려진 것이다. 톱으로 잘라내고 목공칼로 쪼아내어 분리해낸 옹이다. 시간이 오래되었다면 기후에 의해 분리하기 쉬웠겠지만 생나무에서 분리해내는 작업은 만만하지 않다.

    옹이가 크니 그 만큼 전각면이 넓어서 좋다. 그래서 새기기로 한 글이 사서오경중 중용에 나오는 말이다. 비교적 최근에 새긴 것인데 요즘 세상이 어지럽다. 선거이야기다. 나라의 동맥과 같은 생산세대의 의사는 무시되고 과거를 먹고사는 비생산 세대의 의지로 나라의 지도자를 뽑게 된데 대한 비감함이다. 뽑아놓은 사람이 잘 하였다면 기성세대의 지혜라고 할터인데, 그렇지 못하니 같은 세대에 속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소시민인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나를 아는,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라도 알릴 수 밖에 없다.

    사서오경중 중용에 나오는 말이다.

    好學近乎知 호학근호지
    "학문을 좋아하는 일은 지혜의 이치에 가까우며,"
    力行近乎仁 역행근호인
    "실천에 힘쓰는 일은 어짊의 도리에 가깝고,"
    知恥近乎勇 지치근호용
    "부끄러움을 알아차리는 일은 용기의 실현에 가깝습니다."​




    ​관음보살상

    이 옹이도 제법 형태가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소 두께가 얇은 것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옹이를 덧대어 손잡이 부분을 만들었다.

    도안을 두고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달마를 새길까 하다가,석가모니를 새길까...하다가 가만히 나를 관조하다가보니 아직은 세속적인 테두리를 넘지 못한 나를 발견하고 괸세음보살을 새기기로 했다.

    종교가 불교이다보니 낙관도 불교적인것이 많습니다.  필사의 내용이 불교적일때 주로 사용한다.




    춘풍추상 春風秋霜

    금년 추석에 가족 여행으로 몽골을 다녀왔다. 러시아산 승합차인 '푸르공'을 4박 5일 동안 타고 다녔는데 달려도 달려도 비슷한 풍경... 초원의 연속이었다. 몽골 사람들 대부분이 모여산다는 울란바토르에서 250km를 가면 '어기'라는 이름의 호수 하나가 있는데 바다가 없는 몽골 사람들의 휴양지라고 한다. 이 호숫가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짐 정리하고 호숫가로 나섰다가 풀밭에서 옹이 하나를 줏었다.

    가져와서 때를 벗기고 나니 몽골의 무더위와 엄청난 추위를 몸으로 버텨서인지 껍질은 거북등 처럼 갈라졌다. 정성껏 다듬어 낙관 새길 면을 만들고 거북등처럼 갈라진 등에는 에폭시와 금분으로 메꾸어 금색 무늬를 만들었다.

    새긴 문구는 춘풍추상春風秋霜으로 명나라 말기의 문인 홍자성이 저술한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待人春風 持己秋霜  ( 대인춘풍 지기추상 )에서 따온 것이다.

    이 말은 자신을 엄격히 대하며 인격 수양에 힘쓰고 남에게 관용을 베푼다면 여러 사람에게 존경을 받게 되고 미움을 사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자기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낙관을 찍을때마다 몽골의 초원, 쏟아지던 별빛이 생각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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