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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잔한 기억과 불편한 편의점-독후감
    이런저런 이야기 2023. 1. 13. 10:26

     

     

     

     

     

     

    아산시도서관에서 독후삼 공모전이 있었다. 그 책중에서 '불편한 편의점'을 골라서 읽고 독후감을 써냈는데...

    정말 운좋게 일반부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세상에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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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잔한 기억과 불편한 편의점 (전문)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절반을 넘길 무렵부터 등장하는 알코올성 치매로 기억을 잃어버리고 말도 어눌한 노숙자 독고氏는 알코올정신병원 보호사로 1년 넘게 근무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알코올정신병원의 겨울은 떠돌던 노숙자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오는 회귀처와 같았다. 한 철 영어의 몸이 된 그들로부터 그 바닥의 생활들을 이모저모 귀동냥을 했지만 막연하고 모호한 것들이 이 책의 독고氏를 통해 확연하게 다가왔다.

     

    이야기는 편의점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각 개인들의 시간을 중첩적으로 보여준다. 초반에 애하던 이야기들이 후반부로 가면 마치 하나의 네트워크 속의 가지들처럼 서로 연결된다. 우리가 알코올중독자나 노숙자에게 투사하는 선입견들이 독고氏를 통하여 조금씩 부서져 나간다. 그 부서지는 속도는 독고氏의 회복속도와 발을 맞춘다. 사실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문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단지 그 문을 자유롭게 여닫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질 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도 스스로 열기 힘든 마음속 문을 가지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열 수 없는 마음의 문은 독고氏가 건네주는 열쇠로 열게 되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가 불편한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다.

     

    가끔 타인을 무시하고 공중도덕을 버린 사람들을 보면 마음으로는 응징하고 싶지만 실상 직접 나서지는 못하는 것은 현대인의 일반적인 성향일 것이다. 독고氏가 지하철 안에서의 응징장면은 작은 카타르시스를 일으킨다.

     

    나이를 먹으면서 막연한 느낌이었던 것이 책 속의 몇 마디 “노인은 권력이 없다.”는 말로 인해 또렷하게 늙어가는 자신을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의 뒷모습을 거울 없이 보게 되는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독고氏에게 독고라는 이름을 물려준 늙은 노숙자의 죽음이 아리다. 나는 온전하게 나의 정체성을 물려줄 사람이 있는가? 아마 자식도 온전히 물려받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과연 노숙자나 알코올중독자를 내려볼 수 있는가? 이 책을 읽은 지금부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나의 흥미를 끈 이야기는 전직 경찰이었던 흥신소 최씨 이야기다. 경찰이었던 자신에 대한 자만을 적당히 가지고 있고 불의를 정의인 것처럼 행하는 그는 마치 우리 보통사람들의 자화상 같은 사람이다. 이런 그가 독고氏를 쫒다가 발견하게 되는 자신과 부서지는 자존감을 세우고자 가짜 신분증을 강물에 던져 자신을 찾는 것은 비굴함에서 당당함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멋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을 제대로 온전하게 보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독고氏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도 눈여겨 볼만하다. 애초 범상하지 않은 과거를 지녔을 것이라고 짐작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애초에 짐작했던 사업가였을 것이라는 내 짐작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의료사고로 애써 자신을 스스로 잊혀진 사람이 된

    독고氏의 독백 “신분증을 만드는 순간 나는 살아야 할 것이고, 제대로 살게 된다면 또다시 고통받을 것이 분명했다.”은 한번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일이 얼마나 힘든 자신과의 싸움인지 짐작할 수 있다.

     

    독고氏는 이제 입장이 바뀐 편의점 후배 흥신소 최씨에게 해주는 조언은 평균적인 우리 모두에게 주는 울림 같다. “가족에게 손님한테 하듯...하세요.” 정말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 부분에서 잠시 책을 덮고 나를 조용히 관조해 보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했던 많은 일들이 떠 올랐다. 이번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이면 가족이라는 이유로 얕게 생각하고 쉽게 행동했던 것들을 사과하리라 다짐해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젊을 때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관조할 수 있는 것이리라. 관조한 후에 잘못된 것을 스스로 고칠 줄 아는 것도 큰 용기이다. 이제 나도 용기가 부족했음을 인정해야겠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만든 마음속 불편한 편의점을 독고氏처럼 정리하고 다듬어야겠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수많은 모순들은 지금이라도 독고氏가 되어 해결해 가야겠다.

     

    내 마음속의 독고氏가 빨리 자신을 찾아가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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