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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세권에 대한 단상
    이런저런 이야기 2015. 10. 8. 10:26

    잔상(殘像)...

     

    퇴근길은 항상 막힌다. 파도가 출렁거리며 일으키는 포말이 가끔 한 두 방울 달리는 차에 튈만큼 바다에 면한 길이지만 퇴근시간에는 여지없다. 퇴근 때나 출근 때는 늘 감정이 고조와 저조의 파도를 판다. 그렇다고 일찍 출근하자니 몸에 채워진 천근추(千斤錘)를 감당할 수 없고, 퇴근을 빨리하자니 사람의 안광이 날 선 비수다.

     

    내 정신 속에 잘 갖추어진 졸갑증이 고조되는 순간 스맛폰이 울린다. 무의식적으로 받으니 전화기를 바꾸란다. 안그래도 내 스맛폰에 붙인 방탄유리에도 불구하고 몇 줄의 금이가 울화가 있는데다 아직 노예계약 기간마저 남았는데, 이런 염장질이라니… 이런 놈들은 필경 죽어서 염라부에 갔을 때 업경대를 돌리며 후회하게 되리라. 이건 악담이 아니다. 누구던지 언젠가는 죽지 않는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염라부의 일이야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인게지...

     

    확 끊어버린지 2분내지 3분... 그냥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상대성원리에 의해서... 짧은 시간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수사일 수도 있다. 다시 스맛폰이 횟대위에 올라선 새벽의 당당한 수탉처럼 울었다. 바로 끊어 버렸다. 나중에 보니 장사치 번호와는 다른 번호다. 다시 내가 걸었다. 택배아저씨다. 나보다 훨씬 젊어도 택배기사보다는 택배아저씨가 훨씬 부드럽게 느껴진다. 오늘은 물실수(物失手)가 있는 날인가?

     

    잔상효과 탓이다. 영화도 텔레비전도 모두 잔상효과를 이용하는 것들이다. 아날로그를 작게 자르면 디지털이고 작은 디지털을 모으면 아날로그다.

     

    책 3권의 단상(斷想)…

     

    아침에 출근하자 바로 경비실로 내달려 택배를 찾아 왔다.

     

    책과 마누라는 내돌리면 안 된다고 선현들이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선현과 성현에 헷갈리지 마시라~ 선현들은 앞서간 모든 사람들이다. 그래서 죽고 나면 누구나 얻는 벼슬이 현고(顯考)가 아니던가. 성현은 성(性)에 현명했던 사람들이다. 고로 성현이 되려면 자고로 고자가 가장 유리하다.

     

    내가 감성에 공복이 올 때마다 읽어보는 책 중의 하나가 김남조 작가의 “이브의 천형”인데 수년전 꼭 돌려주겠다는 사기에 속아서 친우에게 빌려주었는데 돌아오지 못했다. 초판본이라 꽤 아꼈던 책이다. 나에게는 무협지에 나오는 비전의 신공이 기록된 책에 못지않았는데 빌려 간지 여섯 달 쯤 뒤에 돌려 달라 했더니 어디로 사라지고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던지 지난주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다 흐늘거리는 나뭇잎처럼 떠 있는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복간본이고 종이의 질도 달라졌지만 요즈음 심각하게 감성의 공복기에 들어 있는 터라 얼른 구입을 했다.

     

    3,9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아직도 팔고 있다니... 그 정성이 갸륵해서 선심으로 한 권 더 구입을 했다. 미쿡이라는 옛 인디언 나라에 “딕싱”이라는 우든펜의 절정고수가 있어 늘 존경하고 있던 차에 그가 집필한 책에 눈이 갔다. 14.99달라면 우리 돈으로 17,340원 정도다. 환율이 살풀이도 아니고 밀양아리랑을 추는 시절이라 이 금액을 정한다는 게 큰 의미는 없다. 그저 어느 정도라는 개념을 잡는데 필요할 뿐이다. 아뭏던 책값이 일만 칠천 원 정도인데 수수료가 만원이다. 실제 책 구입가는 이만 칠전 원이라는 이야기다. 그저 비급 한권을 얻었는데 그 정도야… 하고 대범한척 해보지만 여전히 속이 쓰리긴 하다.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불법복사를 할까 해서 알아봤지만 대한민국 도서관에 그런 게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책을 펼치고 대충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영감이 팍팍 떠오른다. 고수의 비법들이 사진과 같이 좌르륵 펼쳐지고 있다. Tagua Nut라는 열매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난다는데 수지처리를 하지 않고도 열매의 속살을 선반이나 조각칼로 새겨야 할 정도로 단단하다고 한다. 겉은 검은데 속살은 상아의 빛깔을 가지고 있단다. 예전에는 상아를 대신한 단추 만드는데 쓰였단다. 이베이에 검색하니 야구공만한 것이 몇 만원이다. 플라스틱 시대에도 이런 열매가 값이 매겨지는 것은 플라스틱이 만적시키지 못하는 감성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저걸 사도 열매라서 통관이 쉬울까 걱정되어 고민 중이다.

     

    고민 같은 건 하나씩 이레이저 해야 할 나이에 자꾸만 생기니 이일을 우짜노~~

     

    사은품대신 달라고 했던 ‘월간 채널예스’는 좋은 책이다. 책쟁이들이 책소개를 위해 글쟁이들이 쓰는 책이니 책에 대한 이야그 들이 전부다. 이것도 사실은 매체에 의한 대중의 마음을 조작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정말 좋은 책임에도 매체를 타지 못하면 그냥 서가에서 쓸쓸히 생을 다하고 종국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헐값 책이나 파란색 천막지 한 평 위에 무더기로 쌓여져 천 원씩에 팔려가는 신세가 된다. 그렇다고 매체의 도움없이 좋은 책을 만나기는 더 어려움이니 이런 책을 볼 수 밖에 없다.

     

    오늘의 권력을 잡은 이들이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것은 이런 매체의 속성 때문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이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선진국으로 가고 있고, 획일성이 강조되는 사회는 후진을 면치 못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선대의 친일을 감추고 독재를 미화하려면 매체권력을 갖는 것이 어쩌면 지상의 과제일 것이다. 찌질하다. 더 찌질한 건 그들을 아비가 없어 불쌍해서 밀어주고, 인물이 없어서 밀어주고 하는 우리들 자신이다. 아~ 시파... 생각해보니 나도 찌질하다.

     

    주루루 책장을 넘기다 딱 눈이 멈춘 책, 제목이 멋지다. “전기 없이 우아하게”…

    일본사람 사이토 겐이찌로가 쓴 책이다. 현대인이 과연 전기없이 우아하게 살 수 있을까? 책의 리뷰는 없다. 다만 광고일뿐이데 호기심을 사정없이 밟아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은 전기적이고 화학적 동물이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뇌에 전달하고 온 세포로 옮기는 시냅스는 화학적 작용이다. 심장의 펌프질은 여전히 기계적이지만 생체전기라는 것이 그 원동력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생체전기라는 것이다. 밥을 먹는 것은 생체전기 발전소를 가동하기 위한 것이고 커피를 마시는 것은 뇌의 화학공장을 가동하는 재료다. 대충 그렇다는 것이다. 과학적 해석과 증빙을 요구하지 마시라. 그걸 할 수 있었다면 올해 노벨상을 2개쯤 받아 오천만 민족에 전율을 선사했을 것이다.

     

    며칠 전 소식에 의하면 미쿡의 유명한 대학 연구진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남기는 것 중에 뇌에 남아있는 20와트의 에너지가 있다고 한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서 이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지만 죽지 않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20촉 전구를 1초간 밝힐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육신은 곰팡이 같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고 뼈만을 남겨 조금 더 흔적을 연장하지만 20와트의 에너지는 영원히 공간속을 떠돈다는 이야기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아뢰야식이라고 해서 윤회를 하는 기본적인 힘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현대과학과 불교의 윤회관이 서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우째든동 사람은 전기적 내지 화학적 동물일진데 전기없이 산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 여기에서는 인공적 발전을 통해 인터넷도 돌리고 형광등도 깜빡이고, 백주부가 요리하는데 사용하는 레인지나 오븐도 돌리는 그런 전기를 말함일 것이다.

     

    전기가 없으면 노안이 온 요즘이라면 양초불을 서너개 밝히면 될테고, 백주부는 가스렌지를 쓰면 될터인데… 인터넷은 어떻게 하나? 주말이면 깎는 목공선반에는 예전에 엄마가 열심히 밟아 노루발을 말달리게 하던 재봉틀 같은 장치를 붙여야 하는 것인가?

     

    꽤 재미있을 만한 책이다. 한 권 달랑 시키기에는 낯이 간지러우니 또 다른 책을 고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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