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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잔나비(산사에서)/김대근
    삼행詩 2015. 7. 9. 10:19

    잔나비(산사에서)

     

    잔기침 넘어온 담 너머 선방(禪房)

    나흗날 초승 면벽에 빠진 낮달

    비늘살 건듯 바람이 내려치는 죽비

     

    잔물결 너울너울 타고 온 상념

    나는 길 없는 길 찾는 한 조각 바람

    비안개 골짝 넘는 사이 다시 돌아온 사바

     

    잔불질 하루가 되돌이 되는 삶

    나루터 서성이던 그림자 피안을 그리다가

    비로전 처마 끝 풍경, 흔들리다 길을 잃다

     

    註)비늘살: 햇빛은 막고, 통풍은 잘되게 하기 위해 문살을 일정한 간격으로 비늘처럼 비껴 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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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감마(是堪麻)”

    우리말로 하면 "이뭣꼬?"이다.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것이 무엇인고?'하는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이뭣고?' 또는 '이뭐꼬?' 라고 하는 것이다.

     

    간화선을 종지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참선을 할 때 가장 많이 참구되고 인용되는 화두가 '이뭣꼬?'이다. 불교에서 문헌에 오른 화두가 1700여 가지인데 '이뭣꼬?' 화두 하나만 타파하면 1700 가지 화두가 일통된다는 것이다. 순간순간 보고 듣고 감지되고 느끼고 아는 그것처럼 공기처럼 같이하는 '이것이 무엇인고(이뭣고)'란 화두는 혜능 대사의 어록인 『육조단경』에 처음 등장한다.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 스님이 육조 혜능 스님을 맨 처음에 뵐 때 육조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대체 어디서 왔는고?"

    "숭산(오조홍인 대사가 중생을 제도하던 곳)에서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什麽物恁麽來〕?"

    육조 혜능과 그의 수제자 중 한 분인 남악회양 스님과의 대화에 등장하는 '습마물 임마래(什麽物 恁麽來)?'가 바로 '이뭣고' 화두의 연원이다.

     

    이 어려운 화두는 내가 20대에 부산 영주암에 주석하시던 조정관 큰스님께 수계를 받으면서 더불어 받은 숙제다. "평생 이거 하나만 참구해도~" 라는 말씀과 함께 말이다. 그때 법명을 '자명(自明)'으로 주셨는데 부처님의 마지막 법문에 나오는 自燈明 法燈明에서 따왔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는 이야기다. 내가 걸어온 배움의 길 대부분이 독학인것을 보면 조정관 큰스님의 혜안이 적중한 것 아닌가 싶다.

     

    사는게 바쁘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화두를 념하는 것 자체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이래서는 금생에 타파는 커녕 소의 뒷모습도 못 보겠다. 젊은 시절 참선에 빠져 살 때는 소의 꼬리를 잡았다는 착각을 잠깐 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다.

     

    그래도 하루에 서너 번 습관적으로 '이뭣꼬?'를 념하긴 한다. 운전할 때 끼워들기 하는 얄미움에 쌍욕을 한바가지 퍼붓다가 아차 싶어 내어 뱉듯 이뭣꼬?를 염한다. 나도 그럴 때가 있는데… 그 잘못은 보지 못하는 이 어리석은 물건은 어디서 왔는가? 그도 또 찰나… 금방 사바세계로 돌아오고 만다. 일상이 도로아미타불인 셈이다. 일상이 그러니 어쩌면 일생 자체가 도로아미타불이 될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 화두와 씨름하게 될런지 모른다. 잡았다 싶으면 십리쯤 달아나 자취도 안보이고,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고 포기하면 얼른 다가와서 눈앞에서 알짱거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역시 근기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가 다른 법인데 내 근기는 간장종지만 하다. 그런데도 바께스 만한 걸 넣으려니 당연히 무리가 될 수 밖에… 나이를 먹으니 내 근기의 크기도 눈에 들어온다. 세월을 값으로 치루고 받아낸 심안(心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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