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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양귀비(들마을 풍경)/김대근
    삼행詩 2015. 8. 4. 22:41

    양귀비(들마을풍경)

     

    양갈래 길 너머 마음 와 닿은 옛집

    귀목나무 저 혼자 간직한 낡은 풍경은

    비바람 켜켜이 쌓은 세월의 바람막

     

    양지뜸 산바람 아래 둥둥 떠있는 마을

    귀다래기 등위에 털어도 달라붙는 솔 그림자

    비게질 하는 동안 소소히 쏟아내린 여름 볕

     

    양떼구름 몰아온 한 떼거리 비구름

    귀룽나무 익혀가는 열매 같은 먹장 빛

    비긋는 한여름 볕살 솔숲 아래 꿈에 젖다

     

    양철집 뒤란은 초승달 빠져 죽은 못

    귀밝기 한 잔으로 세상 털고 간 양동아재

    비노리 피운 자줏빛 아지매 석 달 흘린 눈물같다

     

    양과자는 손님보다 열 걸음 앞서 와서

    귀둥이 가슴에다 무지개 칠갑할 즈음

    비탈길 넘던 그림자, 아재는 늘 그렇게 왔다

     

    양지니 달 없다 달 없다고 우는 밤

    귀마루 흘림만큼 가팔라진 세월은

    비좁은 몸에 삭혀온 추억 하나 싹 틔우다

     

    )

    -귀목나무: 느티나무의 다른 이름

    -귀다래기: 귀가 작은 소

    -비게질: 소등이 나무 등걸에 등을 비비는 것

    -비노리: 7~8월에 자줏빛 꽃을 피우는 식물

    -양지니: 됫새과의 새. 주로 숲에 산다.

    -귀마루: 지붕모서리에 있는 마루로 이 마루의 경사에 따라 지붕 곡선의 아름다움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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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 보니 벌써 2년이 지났다. 창원으로 출장 갔다가 귀로에 고속도로 사정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니 그 날 따라 공사에 사고로 여간 막히는게 아니다. 요모조모 국도에 금을 긋다가 밀양을 거쳐 언양을 넘기로 했다. 진영과 수산을 거쳐 은산이라는 곳을 스치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 거려 길어깨에 차를 세우고 길 건너 산 아래 마을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회상에 빠졌었다.

     

    마침 소나기 한 줄기가 지나간 탓에 딱 보기 좋을만큼의 안개가 마을을 무채색의 추억 여행으로 잘 이끌어 주었다.

     

    저 마을에는 외가가 있었다. 외조부는 해방 한 해전 만주로 시집 보낸 큰딸을 이념의 죽창에 잃었고 육이오사변에는 논 메러 갔다가 징집트럭에 두 아들을 떠나 보내야 했던 아픔을 간직한 분이었다. 그 지난한 삶은 노름에 탐닉 하도록 만들어 한 때 밀양에서 이름만 들이대도 알만한 노름꾼이 되기도 했다. 당신에게 나는 첫 손자 였다.

     

    방학이 되어 며칠만에 외가에 도착하지 않으면 외조부의 채근에 외숙은 삼 십리 길을 자전거로 읍내로 나와 으례 '대근래외가조부학수고대'라는 전보를 쳤다.

     

    나는 외가에 가면 외조부모.외숙과 이모들에게 최고의 귀둥이 였다. 칠 팔 십의 나이에도 어릴적 내 모습을 잘 기억하고 계신다.

     

    외가에서의 기억들이 모두 유채색의 추억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 무채색의 그런 아픈 기억도 있다. 양동아재는 그런 사람이다.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인텔리였다. 내가 외가에 있는 동안 그는 가끔씩 양복에 양과자를 들고 고향으로 왔고, 집성촌 최고의 존장이던 외조부께 문안 인사 또한 빼눟치 않았다. 그는 외숙과는 육촌 정도되는 형제여서 나는 그를 아재라고 불렀다. 그는 나를 그의 집으로 데려가 당시에 유행하던 가요도 가르치곤 했다. 칠순을 넘긴 막내 이모는 지금도 다섯살 꼬마가 해 저물녘 소달구지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유행가를 부르던 모습을 이야기하곤 하신다.

     

    초등학교(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재는 아지매와 시골에 눌러 앉았는데 그즈음 외조부로 부터 나에게 접근금지까지 같이 내려졌다. 그 이유를 알게된 것은 그 해 늦가을 이었다. 추수가 끝나면 볏짚을 엮어 초가의 지붕을 덮는데 몇 년에 한 번은 묵은 짚 전체를 들어내고 새로 얹는데 이때 굼벵이가 많이 나온다. 고단백질인 이것을 얻으려는 사람도 있다.

     

    그 날은 양동아잿집 아지매도 나무 함지를 이고 왔다. 외숙은 그 함지에 꾸물거리는 뽀얀 굼벵이를 담아 주었다.그도 잠깐, 이 십 여리 근동에서 역시 굼벵이를 구하러 온 작은 외조부(그러니까 외조부의 동생)가 거칠게 함지를 빼앗아 패대기를 쳤다. 젊음보다는 늙음이 우선이라는 논리였고 무른 아지매는 닭똥같은 눈물만 그렁그렁 떨구었다. 그때 닫혀있던 사랑방 문이 열리고 외조부의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은 정리 되었다.

     

    "아픈 사람이 먼저 아이가"

     

    나는 그때 이후 아재가 폣병(결핵)에 걸렸으며 그 병에 고단백이었던 굼벵이는 영양보조제로 그 역할이 컸던 것이다. 나에게 행여 옮기기라도 할세라 외조부는 아재에게 나에게 접근조차 못하게 했던 것이다. 아재는 정월 대보름날 귀밝기 술 한 잔을 잡숫고 뚝방을 걷다가 쓰러져 세상을 떳다. 아지매는 청상이 되어 오랫동안 밤 부엉이처럼 울었다. 아재는 산수유 꽃을 참 좋아 했는데 아재 묻으러 간 날 선산 산수유가 이르게 꽃을 피웠다. 아지매 애끊어 내는 울음에 산새들도 그날은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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