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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잔나비(해당화)/김대근
    삼행詩 2015. 7. 3. 19:55

    잔나비(해당화)


    잔솔밭 담에 가둔 섬 만한 집 한 채

    나는 떠올랐다 사그라진 입술을 보았네

    비바람 봄 하품 풀어 만드는 포말처럼...


    잔돌 밭에 달그락 달그락 바다가 닳아가고

    나그네 옷깃에 묻어와 풀어지는 먼 기별

    비릿한 갯내음 스며 저리도 붉어진 뺨


    잔물잔물한 눈가에 매달리는 그리움

    나무수국이 바다 눈빛 가려준 등 뒤

    비탈길 기대어 서서 목 빠지는 해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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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부산 출생이다.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이 ‘부산’하면 바다를 떠올리게 되는 것과 다르게 중학교 2학년이 되고 나서야 바다를 처음 구경했다. 공립중학교였던 탓에 월남 파병 용사들의 환송행사에 동원된 장소가 부산항 부두였고 손에 조그만 태극기를 들고 처음 만난 바다는 또 다른 신세계이기도 했다. 입으로는 “조-국의 이름으로 임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땅 하늘은 멀더라도…”를 부르고 있었지만 눈과 마음은 바다에 꽂혀 있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부산의 가장 끝이 구포였고 구포에서 바다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1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낙동강 하구에 있었던 구포에서는 강 자체가 바다만 했다. 바다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에게 크게 심안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은 넓다. 이 경험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급을 만들었고 고등학교 졸업식 다음날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하도록 만든 원천이리라.


    부산이라는 바닷가 동네 출신이면서도 ‘해당화’를 만난 것은 서른이 훌쩍 넘어서였다. 동해안 바닷가에서 첫 만남 이후 해당화라는 꽃은 아주 선명한 이미지로 내 가슴에 자신의 영역을 만들었다. 나는 다른 어떤 꽃보다 해당화를 좋아한다. 늦바람이 무서운 것처럼 늦은 나이에 만난 해당화를 왜 좋아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내 전생이 해당화 무더기 아래를 집으로 삼고 살다 죽은 섬 고양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회사에서 공사현장으로 파견이 되어 2년을 예정으로 집을 떠나 보령이라는 동네로 왔다. 나이를 먹고서야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주말부부의 삶을 체험중이다. 근무 중인 화력발전소 안 한 모퉁이에 해당화가 피었다. 매일이 매 순간이 전쟁터 같은 공사 현장에서 달포가량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난 주 늦게 피었던 한 송이를 마지막으로 꽃은 다 지고 간난이의 탐스러운 엉덩이 같은 열매를 맺고 있다. 이제 제대로 여름이 왔다는 알림이다. 장마라고 하더니 여전히 하늘은 건조하다. 마른장마에 마음도 장작개비 물 빠지듯 마르고 있다. 해당화가 업고 지고 가버린 봄이 다시 그리워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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