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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혼불문학관 (소설가 최명희)
    여행기 2010. 6. 22. 16:50

    남원 혼불문학관

     

     

     


    여류소설가 최명희(崔明姬.1947.10.10∼1998.12.11)의 소설 ‘혼불’은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명작이다. 그녀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1972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1972∼81년 전주 기전여자고등학교와 서울 보성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였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혼불>(제1부)이 당선되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88년 9월부터 1995년 10월까지 만 7년 2개월 동안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부에서 제5부까지를 연재,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 연재 기록을 세웠다. 이어 1996년 12월 제1∼5부를 전10권으로 묶어 완간하였다. <혼불>로 제11회 단재문학상(1997), 세종문화상(1997), 제15회 여성동아대상(1998), 호암상 예술상(1998) 등을 수상하였다. 1998년 서울대병원에서 난소암으로 사망하였다. 남긴 작품으로는 <몌별(袂別)> <만종(晩鐘)> <정옥이> <주소> <혼불>(전 10권.1996)등이 있다.


    그녀의 삶을 기념하는 문학관은 현재 두 곳이다. 하나는 '최명희 문학관', 또 다른 하나는 '혼불 문학관'이다. 앞은 최명희가 태어난 전주에 있고 '혼불 문학관'은 그의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에 있다. 서로가 작가와의 인연이 깊음을 부각시키려 애를 스는 모습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전업 소설가의 길을 걷기전 그녀는 분명 전주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했고 작품의 대부분도 전주에서 집필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혼불문학관'은 그녀의 작품을 주로 창작했던 곳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혼불의 배경이 이곳이지만 그녀는 전주에서 출생을 하였고 그녀의 고향인 이곳에 자주 들락거리며 소설의 소재를 찾았으므로 혼불이라는 작품의 배경으로서 이곳이 중요하다라고 홍보를 했으면 좋겠다 싶다.


    소설 '혼불'의 줄거리를 잠깐 보자.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지나는 동안 남원의 매안 마을과 거멍굴을 중심으로, 매안 이씨 가문의 삼대를 이루는 청암 부인과 그 아들 이기채 부부, 손자 이강모·허효원 부부, 그리고 거멍굴 천민인 춘복이 등 주요인물들의 삶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소설은 강모와 효원의 혼례 장면으로 부터 시작된다. 둘의 결혼생활이 순탄치는 않으리라는, 예사롭지 않은 전조가 드러나는데, 실로 신부는 초야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수모를 당한다. 그도 그럴 것은 신랑 강모가 사촌누이 강실이와 상피(相避)를 범하며 비극적 사랑을 하던 터이다. 마침내 강모는 방황 끝에 만주행을 결행하고, 효원은 외로이 매안 이씨 가문을 이끌어 가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시할머니 청암 부인으로부터 이어받는다.


    청암 부인은 청상과부로서, 쓰러져 가는 가문을 일으키며 대단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인물로서, 매안 뿐만 아니라 민촌 거멍굴 사람들에게도 신임이 두텁다. 그녀의 죽음을 전기로, 반상(班常)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효원은 격동기에 퇴락해가는 가문을 되살릴 책무가 어깨에 지워지게 된다. 거멍굴 천민들을 대표하는 인물인 춘복이는 뒤바뀌는 세상을 꿈꾸며, 양반가 처자인 강실이를 사모하여 자신의 아이를 수태시키는 상징적인 행위를 행동에 옮긴다. 결국 이 때문에 강실이는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효원의 도움으로 이를 모면한다. 】


    사실 '혼불'은 미완성 소설이다. 작가는 1부~5부까지 집필하고 5부 이후 부분을 구상하고 자료를 정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난소암으로 타계하여 1996년 판이 최종본이 되었다. 소설이 미완인 상황이라 사건의 전모를 이 이상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가 스스로 ‘우리가 인간의 본원적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한다’라고 말한바와 같이 호남지방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노래, 음식 등을 생생한 우리 언어로 복원해내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혼불문학관이 있는 마을 어귀에 있는 돌로 만든 안내석

    길이 좁아 보이는데다가 대형주자장 표시가 있으니 관광버스 기사가 못 가겠다고 버텨서 걸었다. 자연을 벗하며 긋하게 걷는 맛도 괜찮았지만 일행중에 노인 몇 분이 게셨는데 힘들어 하셨다. 한번 가 본 사람이 관광버스들도 올라가드라고 했지만 기사는 막무가내 대형주차장 표시가 여기 있으니 못가겠다는 것이어서 걷기로 했다.

     

     

    기사( 관광버스 기사는 다 남자라는 편견을 깨준 여자 기사분이다.)의 고집덕에 이런 꽃과 풍광도 나름 즐겁게 보았다. 돌담과 마가렛~

    봄을 살짝 벗어난 초 여름은 꽃들이 웃기 딱 좋은 때다.

     

     

     

    혼불문학관의 조감도와 안내판이다.

    혼불문학관 주차장은 꽤나 넓었고 몇 대의 관광버스들이 주차해 있다. 일행중 한 사람이 기사를 호출해 올라오라고 했는데, 이 일로 서로 시비가 있기도 했다.

     

     

    혼불 중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실 나는 혼불을 인쇄본을 읽어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EBS의 우리소설을 통해 들었다. MP3화일로 다운받아 출퇴근이나 출장을 오가며 들었다.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들이 작품을 한껏 돋보였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혼불문학관 전경이다. 위의 사진은 문학관 전시실이다. 작가의 집필실이 재현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문확관의 사무실과 화장실 등이 있는 사무 공간이다.

     

     

     

     

    작가의 채취가 느껴지는 유물들이다. 제일 위의 것은 육필원고지, 중간은 소재록이다. 제일 밑의 것은 각종 원고지와 교정지 등이다.

     

     

     

    문학관 옆 개울에는 수련이 한창이었다. 수련에 취했는지 잠자리 한 마리가 정신을 놓고 있다. 잠깐 잡았다가 부질없다 싶어 놓아  주었다.

     

     

    혼불의 배경지였던 청호 저수지이다. 혼불문학관에서 스마트폰 GPS를 켜보니 해발은 190여미터다. 이곳에 오기전 오디체험장에 들렀는데 그곳은 해발 220미터 였다. 그런대도 이곳의 표고가 훨씬 높아 보인다. 그만큼 풍광이 시원스럽고 좋다. 뒷쪽으로는 빙둘러 산이 에워싸고 있고 앞은 탁 트인데다가 청호저수지가 앞을 버티고 있어서 그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길지라는 생각이 든다.

     

    ★ 이곳은 '혼불문학관'이고 지역은 남원이다. 처음에는 네비게이션에다 '최명희문학관'을 입력했더니 전주가 나왔다. 따라서 '최명희'와 '혼불'은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혼동하지 말 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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