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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 이미지(이제는 보냅니다) /김대근
    삼행詩 2009. 8. 24. 09:15

    이제는 보냅니다


    이렇게 쟁여두면 금빛 날까 했지요
    미어지는 가슴에 길게 난 갈라짐
    지금껏 깊디깊은 골 채우기 힘들었지요


    이만큼 지둘려도 여전히 멀기만 해서
    미치도록 사무친 사연은 멍이 들어
    지나온 발자국마다 패여 질척입니다


    이제는 보냅니다, 고이 새겨온 모습
    미리 알기는 했지만 여전히 남는 아픔
    지난한 지난 세월은 섬광 한 줄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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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전이다. 장거리 출장으로 무릎이 제법 빡시게 굴어 첫 출장지에서 자고 다음날 다음 출장지로 갈까 하다가 무리를 하기로 했다. 두번째 출장지는 전라도 순천과 가까워서 내심 시간을 아껴 순천만의 갈대밭을 보아야 겠다는 욕심이 앞섰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인과 연에 의해서 움직인다. 이것을 인연이라 하는데 좋은 인연도 있고 나쁜 인연도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인연타령을 하는 것은 주인과 인연을 잘못 맺어 고생중인 무릎생각 때문이다. 왠만하면 첫번째 출장지에서 여독을 풀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스스로의 채찍으로 자신을 들볶아대니 어쩌면 내가 강박증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할 때도 있다.


    무리는 또 다른 무리를 낳게 마련이다. 두번째 출장지로 가는 길에 겹친 시간적 공간이 퇴근시간이다. 자연 길은 더딜것이 분명하다. 시원하게 내어 달려도 무릎의 짜증이 전해져 오는데, 체증으로 더디 가다보면 무릎이 파업을 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간을 인식하는 우측 대뇌를 최대한 자극하여 지름길 루트를 만들고 그 길을 달렸다. 소도시 하나를 빙둘러 우회하는 길은 한산했다. 고속도로가 지근거리여서 다들 고속도로의 편함을 찾아 갔나보다. 예전에는 제법 번잡했던 이 길…


    예전의 이 길을 떠올리는 순간 가슴에서 무언가가 쩡~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명치 끝 오목한 곳에 작은 통증이 밀려왔다. 괜스레 이 길을 택했는가하는 자괴감도 육월을 하늘에 뭉치는 먹구름처럼 뭉글거렸다. 심박수가 갑자기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증가했다. 길 옆에 작은 간이 매점이 파란색 지붕에 매달려 있었다. 지붕공사만 새로 했는지 낡은 매점에 유난히 지붕이 돋보였다. 차를 세우고 냉장된 사이다 한 캔을 사서 단숨에 비우고 나서야 심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라지는게 아니라 잠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없이 숨어있다가 적당한 습도가 되면 여지없이 고개를 쳐들고 독니를 세우는 바이러스처럼 그렇게 숨어사는 것인가 보다. 만난것도 아니고 그저 옆을 스치다 먼산 아래 동네가 편린처럼 눈에 들어온 그 잛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 상처…


    간이매점에서 내어 놓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생각을 정리해보니, 옛 사람들의 말대로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아팠던 상처가 이제는 사이다 한 캔의 냉기로도 식혀지는 구나 싶다. 30년의 세월이 사이다 한 캔으로 축약되어 버린 현실앞에 잠깐 당황했다. 가만히 마음을 챙겨보아도 숨어 있을 만한 자리도 없어 보인다. 세월의 치유효과가 제법 있었구나 싶다. 어쩌면 오늘이 이 행로가 바이러스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놓는 길이 아니었을까?


    다시 길을 떠난다. 누군가도 이 순간 자신의 길로 떠날것이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소유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우리들…,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인연들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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