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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 자존심(달맞이 꽃 언덕)/김대근
    삼행詩 2009. 7. 22. 11:27

    달맞이 꽃 언덕

     

    자작하게 하루가 졸아드는 저물녘

    존귀한 손님 맞으려고 온 동네 들썩인다

    심겨진 봉선화 꽃대, 덩달아 마음이 달고……

     

    자드락 길섶 헤치며 아슬히 오신 임

    존존하게 펼쳐주는 빛 갈래 올마다

    심 돋군 촛불 하나 마음마다 금빛 물들고……

     

    자규子規 긴 호흡 서산西山을 넘으면

    존류存留는 미망이라 내리치는 바람 죽비

    심드렁 내려놓은 맘 그제야 다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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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境界, 이 말은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우리와 늘 함께 숨쉬고 생활하는 삶과 같은 것이다. "나"라는 것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남"이라는 말이 필요하다. "남"이라는 이 말이 없다면 "나"라는 존재 역시 없는 것이나 같다. "남"이라는 말에는 사람 뿐만이 아니라 모든 유형, 무형의 것들이 포함된다. "나"와 "남"을 구분짓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계境界이다. 하루를 곰곰히 생각해보자. 매일매일 순간 순간 우리는 경계를 끊임없이 만들고 허물며 그렇게 살아간다. 가령 내가 퇴근시간에 가끔하는 행위중에 길어깨에 느닷없이 차를 세우고 길섶에 쪼그리고 앉아 풀, 나무 등을 사는 세상을 넘어보는 일인데, 그냥 지나칠때는 없던 경계가 "아! 풀쐐기-"라고 하는 순간 "나"와 "풀쐐기"와의 사이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경계가 생기는 것이다. 도道가 통通한다는 것이 어디 별거던가? 바로 이런 경계를 마음에서 몰아내는 일이다. 불가에서 번뇌를 끊어 윤회에 빠지지 않는다함도 결국은 이런 경계를 마음에서 몰아내고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함이다. 그렇게 따져 보면 역시 세상의 모든 번뇌, 부조화, 갈등은 결국 경계境界에서 첫 출발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나'와 "나 이외의 것"들을 구분짓는 경계는 심리적 경계이다.

       

    물리적 경계도 있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수많은 물리적 경계와 마주치며 살아간다. 먼길을 여행중일때 네비게이션의 하단에 변해가는 경계의 표시를 보는 것도 여행의 잔재미이기도 하다. 재래시장의 좁은 길에 한평도 안되는 자리를 펼치고 풋고추 한 무더기, 작년 가을걷이 였을 참깨 한되를 소졸하게 진열한 등굽은 노인도 자신만의 경계를 가지고 있다. 그 노인에게는 한평도 안되는 경계가 삶의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 늘 그렇듯 심리적 경계와 물리적 경계의 크기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물리적 경계만으로 단정지으려 한다.

       

    회사에는 이질적인 세상을 서로 연결하는 경계가 하나 있다. 공장의 동쪽에 구획된 경계가 박씨네 사과밭이다. 윙윙거리는 기계음, 끝없이 깡깡거리는 망치소리, 치치직 튀는 용접소음 등과 같은 소란스런 세상과 소리없이 잎마다 가지마다 듬뿍 내리붓는 햇살, 금방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 사과 알맹이, 그 사이를 헤집는 바람의 풍성함을 가진 목가적 세상이 철망하나를 경계로 서로의 살을 잇대고 있는 것이다. 환경정리의 일환으로 심어놓은 봉선화도 이제 꽃을 피웠다. 제법 많이 심었는데도 잡풀들이 많은 곳이어서인지 처음 심은 것의 십분지 일도 안되는 숫자만 자라나 꽃을 피웠다. 사람의 손길이 머무는 화단에 적응한 탓인지 자연환경에 노출된 봉선화는 왠지 꽃대도 꽃도 부실해 보인다. 그 봉선화와 철조망 사이의 완충공간으로 작은 언덕이 있는데 어디서 날아 왔는지 달맞이 꽃이 군락을 이루었다. 올해는 개망초도 몇 송이 보금자리를 틀었다. 개망초가 자리를 튼 이상 봉선화와 달맞이 꽃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개망초의 번식력이 좋다는 것이다. 이 작은 언덕에도 귀화식물의 위세가 드세지고 있다. 현재는 강물처럼 뒷물에 의해 밀려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처럼……

       

    달맞이꽃은 개망초꽃과 더불어 귀화식물임에도 이제는 친숙한 이웃처럼 잘 적응했다. 우리도 나름 잘 받아주어 개망초는 약재로, 달맞이꽃은 차의 재료로 우리몸에 적응을 시켰다. 달맞이 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한껏 오무리고 있다가 밤이 되면 활짝 피어난다. 그래서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아메리카의 칠레가 원산지라고 하는데도 그리스 신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다소 믿음이 가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믿어보기로 하자. 그리스에 달을 사랑하는 님프가 있었다. 님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위의 많은 여성신들의 통칭이다. 다른 님프들이 제우신에게 달을 사랑하는 님프를 일러바쳤다. 달의 여신 아데미스와 제우스가 특별한 관계였던지 제우수는 노했고, 이 님프를 달도, 별도 없는 곳으로 추방을 하고 말았다. 이를 뒤늦게 알게된 아데미스는 매일 밤 높이 떠올라 님프를 찾았다. 그러나 속좁은 신, 제우스는 구름과 비를 동원해 이를 방해했다. 한편 쫒겨난 님프는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님프가 죽은 자리에 꽃 한송이가 피어 났는데 이 꽃이 바로 달맞이 꽃이었다. 달맞이 꽃의 꽃말은 '기다림', '말없는 사랑'이다.

       

    그리스 신화의 꽃이 남미 원산의 이 꽃과 동일한 것인지에 대한 학문적 지식도 없거니와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해가 어스름 서산으로 넘어가고 나면 사르락 톡톡- 달맞을 준비에 분주한 작은 언덕의 즐거운 소음에 귀를 적시고 싶다.

       

    어제도 퇴근에 임박해 현장을 둘러본다는 핑계로 찾아간 언덕에서 귀를 기울여도 적시지 못한건 아마도 내 마음속 경계를 몰아내지 못한 탓일게다. 항상 문제는 경계境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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