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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 오뉴월(오디) /김대근
    삼행詩 2009. 6. 9. 11:47

    오디


    오월이 떠나며 남겨놓은 하늘 귀퉁이
    유두는 검게 물들어 꼬부랑 진 길 하나
    월커덕 열리는 빗장, 번져드는 장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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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5시 30분쯤의 퇴근길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회사에서 나와 용도 폐기된 철로를 지나면서 요동친 의자의 쿠션이 사그라지기 전에 다시 삼거리를 만난다. 이 삼거리에서 선택을 잘 해야 한다. 직진하면 거리는 짧으나 정체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같은 시간대라도 막힐 때가 있고 시원하게 통과할 때도 있다. 그 막힘이 짜증나 다른 길을 선택하면 시골길을 좀 돌아서 가야한다. 오월이 차지해왔던 자리를 유월에 내주고 물러가는 물리적 시간대의 접점에서는 둘러가는 길을 택하는 일이 많다.


    종일 번잡한 업무에 시달린 머리에 청량감을 불어 넣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골길에는 요즈음 모내기가 한창이다. 모발이식한 대머리처럼 듬성하게 심겨진 모 사이로 겅중겅중 걷는 왜가리며, 아직 수확하지 않은 싯누런 보리밭 가운데 듬성 주저 않은 자리를 보며 묘한 상상을 하는 재미도 솔솔 하다. 오래된 못가에 느티나무는 허리가 굽어 사람으로 치면 100세 노인이고 잎 새의 숫자만큼 전설을 간직한 채 세월의 파수꾼으로 서있다. 건너편 낚시꾼이 던진 파문 하나가 바람으로 일어나 느티나무 가지들이 일렁댄다. 이런 풍경들과 느낌들이 아주 약효 좋은 안약 같다.


    이 길에서 만나는 뽕나무 두 그루는 이 땅의 오십대 같다. 한때는 포도나무 자리에 심어졌던 수 많은 뽕나무들과 함께 보냈을 이들은 새로 노선이 나면서 버려진 철로처럼 밭둑에 자리 잡은 덕에 뽑힘은 면했다. 이 두 그루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햇살로 익히며 살아간다. 개발시대 산업역군입네 뭐네 하며 써먹다가 이제는 넘겨진 페이지가 된 세대가 이 땅의 오십대다. 새로운 시대의 선두라 자부했지만 결국 기성세대의 막내로써 단물만 빨리고 만 세대이다. 한때 각광받다가 이제 쓸모없는 나무가 되어 버린 뽕나무, 동병상린의 아픔을 느낀다.


    가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잘 익은 오디 몇 개를 입에 넣고는 하는데 올해는 하얀 진딧물 같은 것이 먼저 주인이 되었다. 이 녀석들은 욕심도 게걸스러워서 아예 나무 전체를 덮어 버렸다. 조금 높은 쪽에는 아직 멀쩡한 오디가 윤기 나는 피부를 내보이며 유혹을 하지만 발돋움을 양껏 해도 닿지 않을 거리다. 딸 셋의 합창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아빠 키가 어디 남자 키야? 난쟁이 똥자루만 겨우 면한 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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