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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 자존심(여름 小景) /김대근
    삼행詩 2009. 7. 13. 09:40

    여름 小景


    엉겅퀴

    자드락 밭 가에 낭창대는 바람결
    존객尊客 모셔다가 펼쳐놓는 볕뉘에
    심호흡, 긴 한숨 끝에 뱉어내는 보랏빛


    능소화

    자갈 담도 땡볕에는 한숨을 뱉어 낸다
    존득한 관능, 피안彼岸의 선을 넘으면
    심드렁 돌아앉았다 화들짝 안겨오는 여름


    포도

    자줏빛 여름 볕, 쟁여가는 알맹이
    존존하게 메우고 채워서 불쑥 내밀면
    심심한 가을 한 자락 그림자에 숨어 엿보다

     

    계곡에서

    자가사리 한 마리 풀 그림자에 놀라서
    존재를 숨겨보려 슬그머니 돌이 된다
    심장이 내는 파장만 물결로 남겨두고……


    자귀나무

    자귀나무 펼쳐낸 분홍빛 부채로
    존조리 설명하는 철살이 마음새
    심이心耳를 온전히 모아 기울여 보라네

     


    *자드락 : 언덕, 산의 비탈
    * 볕뉘 : 잠깐 드는 햇볕
    ** 존존 : 존존하다,  곱고 고르다
    *** 자가사리 : 통가릿과의 민물고기. 맑은 냇가의 돌 밑에 주로 숨어 산다.
    **** 존조리 : 잘 타이르는 뜻으로 조리있고 친절하게
    ****심이 心耳 : 마음의 눈
    **** 철살이 : 한철살이의 준말, 한 계절 동안의 생활


    ----------------------------------------------------------------------


    올 한 해는 바쁘다. 시쳇말로 x 누고 x볼 사이도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사람이란게 가끔은 들에 나가 푸릇한 냄새도 좀 맡고 해야 사람내가 좀 없어져서 기가 사는 법인데, 요즈음은 너무 사람과 컴퓨터 사이만 오가니 사람내는 피부의 모공으로 침습을 했고 눈가에는 전자파가 먼지처럼 쌓여 다크서클이 되었다.


    자주 하던 아침 산책도 언감생심焉敢生心 인지 오래고 문학서적이 반경 10킬로미터 정도로 물러나 앉았다. 그 자리를 파고든게 성격심리학이니 상담심리학 같은 누군가의 이름을 지겹게 외어야 되는 책들이거나, 생리심리학같은 의학에 가까운 책들이다. 특히 외우는 분량들이 많아서 유연성이 떨어진 뇌가 늘 버거워 한다. 자연 글 쓰는 일이며 고요히 생각하는 일이나, 산책길에서 자연을 벗하며 대화를 나누는 일도 까마득 해지고 말았다.


    이래서는 내가 사이보그가 되는게 아닌가 싶어 점심후에 10분만 시간을 내보자 하고 지난주 부터 실천했다. 산책 코스라는게 회사의 가장자리에 접한 숲길을 잠깐 거니는 것인데 회사가 시골에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중에서도 회사에서 가장 외진 곳에는 환경정리 담당 직원의 눈에 뜨이지 않아 잡초들의 천국이다. 지난 주에는 보랏빛 엉겅퀴를 만났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버지도 감성이 꽤나 여렸던 분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면서 그 학비로 팔아버린 밭이 산비탈에 있었는데 밭두렁에 잡초를 베시던 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겨 놓았던 한 포기가 활짝핀 엉겅퀴 꽃이었다. 밭 고랑의 작은 돌을 줏어내던 엄마는 잔소리를 했지만 아버지는 딱 한마디를 했다. "보기 좋구마는…". 세월은 아버지도 비켜가지 못하는 모양으로 병원에 자리 보전을 하고 누우셨다. 치매끼도 가끔씩 보이신다. '두레문학' 서울경기지역 모임에서 세미나를 가진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낡은 이발사"라는 자작시를 낭송하다가 갑자기 밀물처럼 아버지 생각이 밀려와 눈앞이 뿌연 안개로 덮혀졌다. 목이 메이고 손이 떨렸다. 낡은 이발사의 손등에 솟아난 혈관들이 아버지의 것이 되어 나를 마구 눌러와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제서야 나는 느꼈다. 아버지는 내게 여린 성정도 물려주셨구나.


    회사 식당 옆에는 파고라가 만들어져 있다. 등나무로 뒤덮인 이 파고라에 이방인처럼 자리 잡은 한 그루의 능소화가 흑백그림에 찍힌 붉은 점처럼 도드라진다. 분홍빛인 능소화가 송이송이 피어나는 여름, 금방 먹은 오이냉국의 한기가 더욱 차가워 지는 느낌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식사후엔 반드시 들러가는 곳이 되었다. 모두들의 마음에 하나씩의 사막이 있음이리라. 이곳은 그들에게 맑은 샘물이 쏫아나는 오아시스같은 곳이다. 파고라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하늘을 올려 보면 뭉텅뭉텅 생겨나는 샘물들, 둥둥 떠다니는 능소화 꽃 송이들……


    퇴근길에는 늘 코스를 두고 망설인다. 가장 단거리는 붐벼서 시간이 더디간다. 중간쯤되는 거리의 코스는 시골과 도회가 함께 스치는 풍경이 되기는 하지만 도회 구간을 통과할때 유난히 신호를 자주 받는다. 가장 긴 코스는 시골의 논들 사이를 지나 다시 강을 지나고 작은 개울을 2개나 지난다. 작은 개울에는 금방 우르르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콘크리트 다리를 지나야 한다. 그것도 저쪽에서 진입하는 차가 보이면 먼저 가야하는지 양보를 해야 하는지를 두고 조금 머리를 쓰긴 해야 한다. 이 긴 코스를 통해서 퇴근을 하면 10분 정도 시간이 더 걸린다. 중간에 서로를 스쳐보내기에 신경을 써야하는 탓에 잘 이용하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삶이란게 늘 나이외의 다른 사람과 서로 스쳐지나가거나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게 귀찮아서, 번거로워서 피한다는 것이니 내 가슴속의 사막이 제법 영역을 넓혔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 길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마지막 개울을 넘는 낡은 다리 앞에서 내가 양보하기로 했다. 건너편은 대여섯대가 한꺼번에 기다리니 혼자인 내가 양보하는게 낫겠다 싶었다. 왜가리 한 마리가 천천히 비행을 하며 개울로 내려 앉는다. 갑자기 마음속에 푸른 바람 한 자락이 분다. 차를 길어깨 넓은 곳에 세우고 개울로 내려갔다. 일기예보가 계속 비가 오겠다고 하지만 여전히 기미는 보이지 않음에 약이 오른 탓일까?. 자귀나무 한그루가 피워낸 분홍빛 부채를 개울에 담궜다. 상류에 인가가 없어서 인지 물이 맑다. 손을 담그기가 미안하다. 자가사리 한 마리가 놀라서 바위밑 제 둥지로 숨어 든다. 몇 마리의 피래미들은 숨기는 커녕 오히려 호기심을 채우려는듯 자귀나무 꽃 그림자에 모여든다. 오분간의 호사가 내 마음속 사막을 축축히 젹셔 놓았다.


    며칠 비가 줄창 내렸다. 오늘만 조금 빤하다. 숲이 좀 더 진하게 화장을 했다. 오늘은 달맞이 꽃 모여있는 동네로 마실을 다녀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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