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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 오뉴월(아카시아 숲) /김대근
    삼행詩 2009. 5. 18. 21:55

    아카시아 숲

     

    오가리 몸 말리는 처마 밑 얽은 그림자

    유록색 물이 들어 바람은 길 잃었다가

    월광(月光)의 길을 따라서 담을 넘는다

     

    오동 꽃 져버린 산허리 숲길 돌미륵

    유백색 향공양 취기는 석양인데

    월내(月內)는 이런 호사가 진탕이겠다

     

    오두막 지붕위로 내려 덮은 달빛에

    유향(乳香)같이 뿌려지는 하얀 옷고름

    월궁(月宮)에 항아(姮娥) 노는 듯, 춤추는 아카시 꽃

     

     

    * 오가리: 박·호박 따위의 살을 길게 오려 말린 것.

    ** 유향(乳香): 감람과의 열대 식물인 유향수(乳香樹)의 분비액을 말려 만든 수지(樹脂). 약제·방부제 등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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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며칠 만에 산야에 아카시아들이 화르륵 꽃을 피웠다. 몇 해 전까지 양봉업자들이 1톤 트럭에 벌통을 싣고 와서 1주일씩 머물고 가곤 하던 아카시아 숲에는 꽃이 풍성히 피었어도 이제는 썰렁하다. 아카시아는 식구를 동안 많이 불려서 공터 일대가 온통 아카시아 일색이다. 오동나무 두 그루가 이제는 이방인처럼 낯설다.

     

    아카시아가 식구를 불린 만큼 주변에는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다. 공장의 소음들과 공터에 주차하는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스꺼움이 밀원식물이라는 아카시아를 그저 공간을 채우는 것 이상으로 쳐주지 않는다. 지독한 녀석이기는 하다. 벌들이 찾지 않아도 부지런히 제 식구들을 불려간다.

     

    개발과 분배는 양날의 칼날이다. 어느 쪽이던 한쪽의 이데올로기는 상하게 하고 만다. 속도와 양이 생명이던 시절에 이 지독한 아카시아는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권력자에게 몇 년이면 녹화사업의 열매를 가져다줄 전가의 보도 같은 존재였다. 국토의 여기저기에 아카시아가 심어졌고 세월이 흐른 지금은 온 산천을 아카시아가 덮고 말았다. 아카시아는 밀원이외에는 쓸모가 없다. 목재로도 사용하기 힘들고 뿌리가 얕아 방재용으로도 낙제다.

     

     

     

     

    그래도 청춘남녀의 즐거운 데이트에는 가끔 쓰일 때도 있다. 아카시아 잎 한 줄기를 따서 잎 하나씩을 떼며 계단 오르기를 하거나 "사랑한다, 안 한다" 점을 치기도 했다. 특히 용기 없는 사람은 고백을 앞두고 사랑 점을 치며 용기를 얻기도 했다.

     

    한 동안 가뭄으로 메마른 산야에 꿀 같은 단비가 내렸으니 내일 아침 출근길에 만날 아카시아 가지 끝에는 진액 같은 내음을 흩뿌리며 유백색 아카시 꽃이 춤을 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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