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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의 목화 시배지..산청
    여행기 2006. 4. 12. 00:12


    최초의 목화 시배지를 찾아서.. 

    우리나라 최초의 목화시배지..


    우리나라의 땅덩어리는 지금의 지도로 그대로 보면 대륙에 어정쩡한
    자세로 매달려 있다. 그러나 거꾸로 놓고보면 대륙의 머리로서 일본을
    방파제로 이용하고 있는 세계진출을 위한 최요점의 지점이다.


    이곳에 우리민족이 살기 시작한 까마득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몇번의
    혁명적인 문물의 도입이 있었는데 첫째는 기마민족으로 이땅에 처음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받아들인 벼농사이며 두 번째는 철기문화이다.
    세 번째가 한문의 도입이며 네 번째가 바로 목화의 도입이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너무나 뚜렸한 곳이다.
    여름에는 더워서 헉헉대다가 겨울에는 또 얼마나 추운가 말이다.
    추위와의 싸움이 그 민족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면 목화의 도입은
    일반 서민이 겨울을 따듯하게 보내며 겨울에도 왕성한 노동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고려가 저물어가던때에 중국은 목화의 유출에 극도로 민감했다.
    만약에 목화가 이민족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 민족의 경쟁력이
    배가되어 나중에 큰 화를 자초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공민왕 12년(1363) 문익점은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밭을 지키던 노인이 말리는 것을 무릅쓰고 목화 몇 송이를 따서 그 씨앗을
    붓통에 넣어가지고 왔다.
    목화씨를 외국으로 가지고 가다가 잡히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형을
    시키는 것이 법도인지라 목숨을 내어건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익점은 결국 한반도로 이 씨앗을 가져오는데 성공을 했다.


    지금은 통영-대전간 고속도로가 바로 옆을 지나가는 산청군 단성면
    바로 이곳이 고려 후기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다.


    장인 정천익과 함께 시험재배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재배기술을 몰라 한
    그루만을 겨우 살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3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성공하여 전국에 목화재배를 널리 퍼지게
    하였다.


    이곳 문익점이 태어난 곳인 배양마을은 지금까지도 목화재배의 역사를 간직해오고
    있으며, 지리산으로 향하는 길가 오른쪽에는 낮은 돌담으로 둘러싼 백여 평의
    밭이 있다.
    밭 옆에는 기와지붕을 한 비각 안에 ‘삼우당선생면화시배지’라는 제목의 비석이 서 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문익점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옛터에 밭을 일구어
    해마다 면화를 재배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의(衣)생활의 혁명을 일으킨 목화꽃이다.
    만져보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나이론 솜이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최고의 내한용품인 솜이불의 솜이
    목화솜이였다.


     

     

     

    문익범 선생의 목화시배지 기념관이다.
    입장료 500원..
    작은 돈이었지만 느낌은 아주 크게 받아 왔다는...
    만약 고려말에 목화도입이 안되었더라면 아마 몇백년은 우리 민초들이 추위에
    오돌 오돌 떨었을 것이다.


     

     

    기념관 앞에 있는 목면시배유지(木綿始培遺止) 안내판

     

     


    단성현(丹城縣) 원당면(元堂面) 배양촌(培養村) 앞에 홍무(洪武) 16년(계해(癸亥) 1383)에
    문익점(文益漸)의 비(碑)를 세운다. 1563년에는 비각(碑閣)을 세운다.
    1623년에 비석(碑石)을 중건(重建)하고 효자리(孝子里)라는 석자를 새기고 따로
    (전중현대부지(前中顯大夫知) 청도군사문익점위모려묘삼(淸道郡事文益漸爲母廬墓三)
    년시방해구집심불역(年時方海寇執心不易) 홍무십육년계해이월일정표안염사봉상대부
    고성군(洪武十六年癸亥二月日旌表按廉使奉常大夫固城郡) 사최복인육십육자
    (事崔卜麟六十六字)) 를 썼다고 읍지(邑誌)는 기록하고 있다. (산청군 홈페이지에서...)


     

     

    문익점 선생의 영정..기념관에 들어가자마자 있다.
    후인은 향대(香代) 일천원 한 장으로 감사의 묵념을 올리고 나오니 마음이 다소 개운타.

     

     

     


    목화가 들어오기전에는 동물의 가죽이나 삼배가 일반 서민대중이 옷으로
    비단은 고관이나 특권계층의 옷으로 사용되었으나 가죽을 제외하고는
    방한으로서의 역할이 다소 떨어졌다.


     

     

    목화가 들어오기 전에 삼베를 꼬는 모습..

     

     


    목화가 들어오면서 생활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씨앗을 뿌리고 나서 꽃이 피기가지는 23주가 소요된다고 한다.
    생육과정을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어릴적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게 만든 화로..
    외할아버지는 저 화로안에 재를 조금 휘젓어서 두터운 비료포대를 조각내서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누글누글해진 비닐을 손에 올려두고는 침을 뱉으면서
    경단을 굴리면 동그란 구슬이 되고는 했었다.
    도시에 살던터라 시골아이들과 구슬치기에서 당할 수 없었던 나는 낮에 다잃어버려
    시무룩한 외손자를 위해 밤새워 몇십개씩 만들어 주시곤 했다.


    나중에..아주 나중에 그때 생각이 나서 연탄불인가에 비닐을 올려서 외할아버지가
    하셨던 똑같은 방법으로 해본적이 있는데 너무 뜨거워서 포기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언제 외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밀양으로 한번 가보아야 겠다.

     

     


    옛날의 다림질 모습...

     

     


    물레...10여가지의 물레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동국세시기에서는 중국의 물레보다
    우리 물레가 성능이 훨씬 뛰어았다고 적고 있다.

     

     


    전시관에서 목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 설명에 따르면 열대지방이 원산이라고 한다.

     

     


    목화가 다 지고난 겨울에 들린 여행객을 위해서 벽에 전시되어 있는 만개한
    목화밭..누구의 노래였던가..목화밭~~목화밭~~~ 하는 노래가 갑자기 생각났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그 노래가....

     


     

     

     

    기념관에서 만원을 주고 문익점붓을 하나 샀다.
    붓에 문익점필이라고 각인되어 있다.
    제일 뒤에 있는 까만 꼭지를 열면 목화씨가 하나 들어있다.


    조만간에 저 붓으로 병풍글씨에 한번 도전해볼 생각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남자는 가슴에 늘 몇자루의 비수를 품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또 다른 하나의 비수를 품어본다.

     

     

    *********************************** 댓글 ***********************************


    반디불  2003-12-07 오후 10:09:18    
    산사랑님~~ 좋은 휴일 보내셨는지..오늘 처럼 동네목욕탕 다녀온것 외에는 집에
    온전히 있어본날이 많지 않은데 그동안 무리를 했는지 쉬었습니다.. 
     
      반디불  2003-12-07 오후 10:17:14    
    산사람님도 좋은 밤 되시기를.. 
     
      너사랑안에  2004-01-31 오후 6:24:36    
    울 친정아버지 생각나요. 딸이 혼기가 차니까 이년동안 목화농사를 지으셨답니다.
    목화꽃은 접시꽃 처럼 생겨서 참이뻐요.그리구 열매가 맻혀 애기 조막만해지면 깨물면
    단물이 나와서 단물 먹는재미루 따먹기두했구 잘여물어 햋볓 좋은날이면 열매가
    터져 ㄴ눈송이같은 솜이 몽글 몽글 피어 오르면.. 먼지묻지 않게 잘발라내서 ..
    재여놓았다가.나 시집올때 이불 해주셨는데..아 그리워라..아버지 ..그리고 그시절 목화밭,. 
     
      반디불  2004-02-01 오후 12:20:29    
    너사랑안에님~~그래요..목화에서 단물빨아먹는 다는 말 어머니한테 들은적이 있지요..
    목화농사는 안지어 봐서...그립겠네요..소중한 추억입니다.. 
     
      다운이  2004-02-01 오후 12:26:20    
    아하 목화. 저두 저거 먹던기억밖에 없네요. 
     
      반디불  2004-02-01 오후 12:27:44    
    다운이님~~ 집에 계시는 모양이네요..저는 양산휴게소입니다..목화는 피었을때만
    만져보았는데 단성목화시배지에서 많은것을 배웠답니다.. 
     
      다운이  2004-02-01 오후 12:32:43    
    어제 얼음낚시 댕겨 왔다가 오늘 늦자믈 자고 이제 일어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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