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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마지막 이벤트- 꽃 상여
    이런저런 이야기 2008. 3. 31. 15:17

     

    삶의 마지막 이벤트- 꽃 상여

     

     


     지리산 산수유 마을에서 낭패를 당했다. 원래 산수유 마을옆에 새로 생긴 짝퉁 산수유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산수유 꽃에 취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더니 배터리가 바닥을 드러냈다. 새 배터리로 갈아 왔다고 안심을 했던 것이 실수였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메모리 효과가 있어서 갈수록 수명이 떨어진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전용 배터리를 사용하는 기종들은 이런 것이 문제다.


    일단은 눈에라도 담아야 겠기에 오리지널 산수유 마을로 차를 몰았다. 마침 상여가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길 옆 진창에 차를 세웠다. 350D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핸드폰에라도 담아야 겠다 싶었다.

     

     

    상여가 나갈 때는 항상 만장이 제일 앞에 선다.

    만장이란 죽은 사람을 애도하여 지은 글을 말하는데 만사(輓詞)·만시(輓詩)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개 5언절구와 5언율시 또는 7언절구와 7언율시이다. 때로는 장문시의 글이나 4자체로 쓴 경우도 있다. 모두 세로로 만든 깃발에 시를 쓰고 장지까지 앞장을 선다.

     

    만장은 엄연한 하나의 문학이다. 망자의 삶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하거나 망자를 잃은 슬픔을 가장 짧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지극히 함축적이다. 예전에 큰 선비나 큰 스님의 장례행렬에는 만장의 행렬만 십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늘날은 그런 옛스런 멋은 사라지고 그저 몇 장의 만장에 "學生府君......"등만 간단히 적어 형식만 갖추고 있다.

     

    상여행렬의 백미는 역시 상여소리다. 요즈음의 상여는 작아서 상두꾼이 탈 수없는 구조이지만 예전에는 상두꾼이 상여에 올라타고 상여꾼들을 소리로 지휘했다. 상두꾼의 노래소리를 들으면 남이어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슬픔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 북망- 고개로 나-는 간-다
    서른- 서이- 상둣- 꾼아- / 발맞- 추어- 나아- 가세-
    (후렴)


    여흐- 여흐- 여흐- 여흐-
    / 너거나 넘-자 여흐- 넘-자 - 이제- 가면- 언-제 오나-
    / 기약- 없는- 길이- 로세- 북망- 산이-
    멀-고 먼-데 / 노자- 없이- 어이- 가리-
    -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우리네 갈길을 어-서 가자- 술로- 먹으면 넘어- 가고-
    / 가다- 힘들면 쉬-어 가세-
    - 명사- 십리- 해당- 화야-
    / 꽂이- 진다고 설-워 마라- 명년- 춘삼월 돌-아 오면-
    / 너는 다시- 피련- 마는-
    - 우리- 인생은 한번- 가면-
    /다시- 올줄을 모-르 더라- 가지- 마오- 가지를 마오-
    / 불쌍한 영감아 가지를 마소

     

     

     

    만장의 뒤를 따라 망자의 영정(사진)과 위패가 따른다. 단촐한 행렬이다. 참 좋은 계절에 갈길을 가시는 망자는 행복할 것이리라 생각 된다.

     

     

    삶에서의 마지막 이벤트다. 우리는 흔히 착각하는 한 가지가 사람의 숨이 끊어지면 산 사람과의 인연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인연은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 인연지었던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질때여야 인연이 끝나는 것인데 상여는 이제 망자의 세계로 옮겨주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지막 이벤트다. 그래서 상여는 화려한 것이다. 꽃으로 돌아갈 이여, 평안히~~

     

     

     

    산수유가 흐드러진 길을 따라 상여는 고갯길을 치 받는다. 상여꾼들의 발걸음이 더디어 진다. 더 이상은 여자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길이다. 산으로 들어서면 여자들은 따라갈 수 없단다. 그래서 일까? 여자 상주들의 애끓는 울음소리에 설움이 울컥 묻어난다.

     

    상두꾼들이 있는 행렬에서는 바로 이쯤에서 "못 가겠네- 못 가겠네- 억울해서 못- 가겠네"하며 남은 사람의 설움을 있는대로 짜내려 한다. 그래야 남은 사람들은 아주 잘 보냈다며 만족해 하는 것이다. 어차피 가버린 사람을 잘 보내는 기술을 우리 조상들은 체득하고 있었던 듯 하다. 유난히 전쟁이 많았고 정쟁도 많아 삶의 풍파가 높았던 나라, 그래서 자연히 터득한 기술일 것이다.

     

    정말 오랫만에 보는 꽃 상여의 행렬이었다. 배터리로 인해 메인 카메라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눈으로 호강한 것 만으로도 흡족하다.

     

    망자여! 부디 잘 가시고 지은 업 잘 갚으시고 다시 꽃 소식타고 돌아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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