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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 희망곡(삼강주막三江酒幕) /김대근삼행詩 2008. 3. 31. 09:34
희망곡- 三江酒幕 /김대근
희끔한 새벽길 나그네로 닿은 곳
망각의 봉인 풀고 다시 선 삼강주막三江酒幕
곡절(曲折)들 몇백 년 품은 회화나무 아래 초가삼간
희우(喜雨)에 늙은 농군 궁둥이 들쑤시는 봄
망연히 앉았다가 막걸리만 축내었다
곡우(穀雨)날 다시 찾아가 시 한 수 건져야지*희우(喜雨): 농사철에 알맞게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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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 외교의 명수였던 광해군을 몰아내고 보수세력이 세운 인조는 청나라의 침입으로
남한산성에서 버티다가 결국 항복하고 삼전도에서 아홉번 머리를 조아려 절 함으로써
군신의 관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광해군은 서자의 몸으로 임진왜란때 세자로 책봉되어
왕이 도망다니는 동안 몸소 삼남(三南)지방을 돌며 전쟁을 지휘한 뛰어난 지도자였다.
그러는 동안 그는 조선의 비극이 고루하고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우물안의 개구리같은
보수 세력임을 깨닫고 즉위후 이에 대한 개혁을 하려다가 결국 좌절한 임금이다.
인조가 즉위한 후에 청나라가 벼르다가 겨울에 침공을 감행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길'이다.
조선은 산이 많고 험한데다가 이어진 길들이 대부분 강에 막혀 있어서 강이 얼어 붙는
겨울이어야 대포같은 신무기와 군병의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길들은 강을
건너지 않고는 어느곳과도 연결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도강을 위한 나루터는 교통의
중심지였고 혈관이 서로 교차하는 중요한 곳이었던 것이다.
이런 나루터에는 으례 나그네의 발길을 쉬게해주고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주막이 있었다.
주막에 가면 온갖 세상의 정보들이 돌아 다녔다. 양반들은 서신을 통하거나 관아를 통해
최신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상민에게 일체 흘리지 않았고 상민들은 이런 주막을 통해
바깥세상의 소식들을 귀동냥해 들을 수 있었다.
외지에서 온 장사치들은 현장에서 일꾼을 구하기 위해서 주막을 이용했으므로 자연스럽게
인력시장이 서기도 했던 곳이다. 일꾼으로서의 능력을 시험하는데는 '힘'이외에 무었이
있겠는가? 그저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얼마나 쉽게 드는가, 아니면 힘들게 드느냐에 따라
일꾼의 능력을 평했고 품삯의 단가가 결정되었다.
농한기인 겨울에는 나그네도 뜸했으므로 주막에 삼삼오오 모여 투전을 했다. 딴 사람의
기쁨과 잃은 사람의 아쉬움이 교차 되던 곳, 주막酒幕……
경북 예천은 심심산골이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사통팔달하게 되었지만 예전엔
제법 깊은 골이었다. 바로 옆 상주는 신라때부터 백제로 가는 물산들의 교통요지여서
상당히 발전하였고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가 근거를 세운 곳이기도 하다.
상주에서 보은으로 통하는 곳은 산이 낮고 길이 넓어 신라때부터 중요한 교통로 였으므로
물길을 따라 잇닿은 예천의 풍양면은 2개의 큰 강이 합수하여 상주로 흘러가는 곳으로
작지만 제법 번성한 나루터였을 것이다.
1900년경에 세워진 이곳의 주막이 그동안 버려져 있다가 이번에 새로 보수하여 문을
열었다. 500년은 묵은 회화나무가 그동안 이곳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곡절들을 모두
가지에 하나씩 걸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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