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상기한 옛 글에 술은 조시구釣詩鉤라
표고 주 한 병으로 시호詩湖에 마음 담그다
권커니 잣거니 하며 혼자 노니 창밖 달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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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니 몸 담은 여러 곳에서 행사들이 많다. 지난 토요일은 오전에 회사 체육대회가
있는터라 흙먼지를 바지 가랑이에 잔뜩 묻혔다가 점심후 대충 툴툴 털고 지인의 혼사에
봉투 하나 디밀고 냅다 서울을 향해 달렸다.
결국 거나하게 먹을 수 있는 점심을 다 놓친 채 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으로 때웠다.
서울에서는 한국불교문인협회의 정기총회와 년간지 20주년 기념호 발간기념식이 있었는데
웬만해서는 오너를 하지 않는데 시간이 급박하여 차를 가져갔더니 시골 사람에게 서울은
교통지옥에 다름 없다. 아산에서 서울 입구까지 간 시간보다 서울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이
서너 배는 더 소모되었다. 이런 지옥에서 매일 훈련을 하는 서울 사람들이니 전국 어디를 가도
시골사람들 혼을 빼 놓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은 밥복이 없는 날이다. 서울에서 행사가 끝난 오후 5시, 저녁식사도 행사의 연장이지만
잡는 문우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다음 행사가 있는 조치원으로 달려야 했다. 결국 저녁도
휴게소에서 해결 할 수 밖에 없었다. 간간히 바쁠 때는 이렇게 밥복이 얇은 날도 있다.
촌놈은 그저 배 부른게 최고라는 신념을 가진 나에게 이런 날은 왕재수다. 제길~~~ ㅠ_ㅠ
조치원 행사는 이미 늦었지만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되어 무리를 한 덕에 서천에서 온 지인이
밥복에 술복도 빈한한 하루를 걸머진 나에게 '한산 소곡주 韓山素穀酒' 한 병을 건넨다.
행사장 주변에는 복사꽃이 만발하여 가로등 불빛에 더욱 요염해 보여 농익은 삼십대 여인의
젓가슴 같아 오가는 술잔속에 시의 조각들이 조롱조롱 매달릴 것 같았지만 酒醉運轉의
압박이 여간 무겁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그는 '집에 가서 어부인과
마주 앉아 개다리 소반에 올리시게'라며 슬쩍 찔러 주는 것이다. 슬며시 찔러주는 이런 류를
나는 무척 좋아하는데 이번 선거 기간 동안 내 옆구리에 찔러 주는 인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사회에서 나는 정치적으로 실패한 인간인가 싶기도 하다. 받았다는 놈도 많더만~~ ㅠ_ㅠ
늦은 시간 집에 오니 아내는 대상포진으로 입원한 친구를 면회 갔다가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어야 한다는 처방이 내려졌다며 환자를 끌고 곱창집을 전전하고 있다 하고 큰 아이는
동아리 일로 늦는 단다. 고3인 둘째는 방문까지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이고 남은 막내는
텔레비젼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한 올의 여유도 남겨주지 않는다.
이런 때 사용하는 말이 '셀프서비스'란 건가? 냉장고를 뒤적 거려 볶아 놓은 멸치 한 보시기,
쥐포 한 보시기를 꺼내 혼자서 권커니 잣거니 한다. 갑자기 옛글 하나가 생각이 났다.
당송(唐宋)8대가 소동파(蘇東坡) 는 술에 대해 "마땅히 조시구(釣詩鉤) 라 부르고 또한 소수추
(掃愁推)라 칭하리" 라고 읊었다. 술이야말로 시상(詩想)을 떠올리게 하는 낚싯바늘이요 시름을
쓸어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싯구 하나를 건지기도 전에 술이 떨어졌다. 두홉들이 작은 병을 건네준 지인이 원망스럽다.
오늘은 정말 먹는 복이 없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