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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 산수유(베란다에서 봄을 맞다) /김대근삼행詩 2008. 3. 17. 10:14
베란다에서 봄을 맞다
산다화(山茶花) 피우려 베란다 활짝 여니
수밀도(水蜜桃) 바람결에 봄 소식 다디달다
유리창 넘어온 햇살, 내려놓는 산새울음
*산다화(山茶花) : 동백꽃의 다른 말 (동백은 茶나무과에 속함)
*수밀도(水蜜桃) : 껍질이 얇고 과즙이 많은 복숭아의 한 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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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은 남녘으로부터의 꽃소식에 아침 일찍 행장을 꾸려서 천안과 아산의 경계를 이루는 광덕산(光德山 : 해발 697m)을 올랐다. 일 때문에 금요일 서울에 갔었는데 산수유가 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던 탓에 봄의 기운이 스쳐갔거니 기대했었는데 정작 이곳에는 산수유가 아직 몽우리도 맺지 않았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처럼 봄도 건너뜀이 있는가 싶다.
하루 왼 종일 산을 헤맨 탓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은 탓인지 일요일은 침대를 뒹굴며 하루를 보냈다. 허리가 배겨 더 이상 누워있지 못하게 되자 거실로 나와서 베란다에 비치는 봄 햇살을 구경하다가 동백나무 화분과 눈을 맞춘다. 한 번도 꽃을 피운 적은 없지만 그래도 봄바람을 좀 쐬어주면 혹여 춘정이 일어 이번 봄에는 꽃을 피울까 싶어 베란다를 활짝 열었다. 봄바람이 코끝에 단맛을 발라 동백나무보다 내가 먼저 취한다.
뻐뻐꾹 뻐꾹~ 뻐뻐꾹 뻐꾹~
꿈인가? 내가 봄에 취한 탓인가 싶어 고개를 가로 저어본다. 두어 번을 더 뻐꾹새가 울고서야 울음을 멈추었다. 아파트에서 뻐꾸기 소리를 듣다니 아무래도 오늘은 횡재수가 있는가 보다.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金炳淵 : 1807~1863)의 問杜鵑花 (진달래 꽃에게 묻다)라는 시가 생각났다.
問爾窓前鳥 (문이창전조) 묻노니 창 앞에 우는 새야
何山宿早來 (하산숙조래) 어느 산에서 자고 아침 일찍 왔느뇨
應識山中事 (응식산중사) 산 속의 일, 너는 응당 알 테니
杜鵑花發耶 (두견화발야) 산 속에 진달래꽃이 얼마나 피었더냐
뻐꾸기는 두견새와 같은 종이다. 사촌쯤 될 것이다. 가끔 사람들이 두견이 울음을 소쩍새와 혼돈 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견이와 뻐꾸기는 주로 낮에 울고 소쩍새는 밤에 운다. 두견이의 다른 이름은 불여귀(不如歸)인데 중국발음이 '뿌루꾸이'이다. 몇 번 빨리 소리 내다 보면 '뿌루꾸', '뿌꾸' 등으로 뻐꾸기가 울음소리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두견과의 새들이 울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슬픈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얌체 같은 삶을 사는 새이다. 이른바 탁란(托卵)을 통해 번식을 하는 것이다. 다른 새의 둥지에 슬그머니 제 알을 끼워두는데 부화기간이 짧도록 진화된 본능은 부화되자말자 다른 알들을 어깨로 바깥으로 밀어내 버리고 먹이를 독식하며 자란다. 자신이 다른 종의 새끼를 키우는지도 모르는 어미 새는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새끼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가져다 먹인다. 못 먹고 못살던 시절에 부잣집 대문 앞에 자식을 버려놓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 집의 양자나 양녀가 되어 신분상승이 되든지 아니면 일꾼이나 식모가 되더라도 배는 곯지 않으리라는 모정의 발로였을 것이다.
어쩌면 제 손으로 자식을 키우지 못하는 태생적 슬픔이 슬픈 울음소리의 근원은 아닐까 싶어 가슴이 아린다. 또 다른 숲을 찾아 전전하다가 아마도 도시를 지나게 되었으리라. 갑자기 베란다에 늘어선 화분들이 생기를 되찾은 듯하다. 뻐꾸기 소리는 점점 커졌다가 디젤엔진이 내는 소음과 섞이다가 이내 작아진다. 얼른 일어나 베란다를 넘겨보니 1톤 트럭의 짐칸을 도배한 카바레 선전차가 쌩하니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네를 도는 선전차량이다. 얼마 전까지 뽕짝을 틀고 다니더니 누군가가 소음 때문에 못 살겠다고 신고를 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이제는 뻐꾸기 소리를 내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이 도시에 웬 뻐꾸기……'삼행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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