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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 숭례문(숭어낚시) /김대근
    삼행詩 2008. 2. 22. 16:32

    숭어낚시


    어 낚으려고 황토 뭉쳐 들고
    례(예)닐곱 몰려간 낙동강 물 여울
    동(文童)들
    조막손에 잡힐 고기 어디…,
    갈무리 된 추억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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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어 살이었을 무렵의 어느 날 햇살이 곱게 부서져 골목마다 골고루 나누어지던
    좋은 날 동네에 잔치가 벌어졌다. 거창한 표현으로 잔치라 했지만 어른들 몇이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물금쯤에 물살이 센 여울에 가서 숭어를 잡아와 때 아닌 회의
    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몇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이 펼쳐놓은 잔치 상 주변을 어슬렁 거렸지만 딱 한 점을
    맛보여준 후로 국물도 없었다. 하긴 술안주로도 부족했을 터이니 우리에게 돌아 올
    몫을 바란 것 자체가 욕심이기는 했다.


    "아재요! 어데서 잡는데요?"
    "잇갑(미끼의 사투리)은 머로(어떤것으로) 쓰는데요?"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과 묻지 않았지만 덤으로 끼워진 정보를 종합한 결과는 이랬다.


    우선 '숭어' (송어와는 다르다)는 원래 바다에 사는 고기인데 낙동강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면 같이 들어와서 물금 부근에 물살이 센 여울까지 온다는 것이다.
    잉어나 붕어 같은 고기들이 몸이 아프면 황토를 먹어 치료를 한다는데 숭어도 황토를
    뭉쳐 미끼로 만들어 낚는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황토를 미끼로 사용한다는
    것은 황당한데 그때는 그 말이 믿어졌다. 그리고 낚시대를 담구기만 하면 금방 미끼를
    문 숭어의 몸부림을 느낄 수 있다는 말도 믿었다. 후일 머리가 굵어지고서야 낚시꾼의
    이야기에는 '뻥~'이 90%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낙동강이 지척이던 유년의 고향동네는 집집마다 대나무 낚시대가 하나씩들 갖추어져
    있었고 대부분 붕어정도는 잡아 본 경험이 있었다. 숭어를 잡으러 출전할 의병을 모으니
    예닐곱쯤 된다. 어른들이 말한 황토는 지천에 널렸으므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섯 칸 쯤
    되는 대나무 낚시대를 들고 비료포대를 반 쯤 발라서 황토를 몇 삽 담아 들었다.
    구포에서 물금을 가려면 화명을 거치고도 한참을 걸어야 한다. 족히 몇 십리는 될 것이다.
    수시로 기차가 굉음을 내며 바람을 일으켜대는 경부선 철로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님 웨일즈'가 쓴 '김산(장지락)'이라는 젊은 혁명가의 이야기인
    '아리랑'인데 당시 중국 공산당의 장정에 대한 언급이 잠깐 있다. 미래의 희망을 향해
    고통도 마다 않았던 대장정…, 철길을 따라 걸었던 이 고생스러움도 내 손으로 몇 마리의
    숭어를 잡으면 보상이 되리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도착한 낙동강 부근에는 바닥에 암초가 있어서 인지 물살이 거셌다. 하구언이
    없었던 당시에는 부산시민의 취수원이 있던 물금까지 바닷물이 밀려들어 왔다. 그 물길을
    따라 먹이를 구하러 송어들이 올라오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송어를 낚으려면 강의 중심에
    이르기까지 멀리 낚시를 던져야 하는데 우리가 가져온 다섯칸짜리 대나무 낚시대로는
    어림반푼도 없었고 대부분 릴 낚시대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릴 낚시대는 무척이나
    비싸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귀물이었다. 그곳에도 대나무 낚시대는 겨우 강의 언저리에서
    붕어나 낚으며 숭어를 낚는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포기 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강물을 퍼와서
    비료포대에 넣고 황토를 반죽했다. 숭어란 놈이 덩치가 있으니 크게 뭉쳐서 낚시바늘을
    감싸고 던져 넣었다. 하도 찌가 미동이 없어서 들어 올려보니 황토는 사라지고 낚시바늘만
    맨 얼굴을 내밀었다. '아! 숭어란 놈이 제법 빠르구나' 이번에는 찌에서 눈을 떼지 않으리라.
    다시 황토를 바늘에 뭉치는데 조용히 보고 있던 분이 뭐 하느냐고 물었다.


    숭어를 잡으려고…
    미끼를 황토로 쓴다고…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는 낚시꾼의 웃음에서 속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료포대의 3분지 1이나 되는 황토의 무거움에서 벗어난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되돌아 걷는 발걸음위로 발갛게 여문 저녁노을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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