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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행시- 고향길(숭례문) /김대근
    삼행詩 2008. 2. 12. 09:49

    숭례문

     

    고히 지켜왔던 600년 험한 세월
    초香草처럼 한 줌 재 남겨두고 사라졌네
    손이
    되어 떠난 그 자리,
    타는 가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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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숭례문의 화재전과 후의 사진(인터넷에서 새벼옴)

     


    우리들이 스스로 가장 빛나는 유산이라고 자부하던 국보 1호를 보냈습니다.
    600백년의 풍상을 몸으로 겪으며 임진왜란의 그 지독한 전쟁도, 병자호란의
    그 참담한 도륙도, 한국전쟁의 민족상잔도 버텨준 고마운 건물이었습니다.


    성문으로는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컸고 서울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중심추의
    역활을 해왔던 아름다운 건물이기도 했습니다.


    600년의 세월동안 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고 절망을 선사하기도
    했던 건물이라 숭례문은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서울을 말로만 듣던 아득한 시절 동네의 너른 마당에서 줄지어 노래를 부르여
    놀기도 했습니다.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남남남대문을 열어라"
    어린 마음에 '다음에 커서 서울가면 꼭 남대문을 볼테야' 하고 벼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한 다음날 새벽 집을 도망쳐나와 비둘기호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종일 달려 도착한 서울역에서 제일먼저 한 일이 남대문으로 불리던
    숭례문을 본 것 입니다. 나는 아직도 그 감동의 파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쉽습니다. 불이 난 초기 텔레비젼 화면에 실낱같은 연기가 오르고 있을때
    지붕의 기와 몇장을 걷어 내고 회층을 제거하고 물을 뿌렸더라면 600년을
    쟁여온 세월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남길 수 있었을 터인데......
    국보 1호여서 조심히... 조심히... 하다가 결국 길손으로 만들어 떠나보냈습니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조립식으로 만드는 우리 한옥은 불이 나면 일단 하나씩 해체를
    하면서 불을 꺼야 한다는 초보적인 지식도 없는 문화재청과 소방당국이 아쉽고
    더 많은 국보들이 소화기 몇 대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니 아쉬운 마음도 숭례문의 길 떠남에 실어서
    보내야 겠지요. 불행중 다행으로 2006년에 도면화 작업을 완성하였다고 하니
    꼼꼼히 고증하고 신중하게 복원해야 겠지요. 여론에 떠밀려 빨리 빨리에
    목매지 말고 천천히 하드라도 완벽하게 복원하기를 바래봅니다.


    복원된 숭례문에 다시 이무기가 깃들어 앞으로 600년 뒤에 우리 자손들이 벌이는
    복원 600주년 행사를 흐뭇하게 즐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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