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문회우以文會友고객만당高客滿堂 (2)
    사람을 만나다 2008. 1. 22. 22:41


    이문회우以文會友고객만당高客滿堂 (2)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명자 아끼꼬 쏘냐'라는 영화가 있었다. 김지미와 이영하가 주연을 맡아 열연한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은 한국사람 명자로 태어나서 일본여자 아끼꼬로 살다가
    마지막엔 쏘냐로 살았던 멜로 드라마다. 김림 시인을 생각하니 갑자기 그 영화가
    떠올랐다. 다분히 주관적이므로 그 이유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지말기 바란다.
    다만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 김지미의 극중 이름이 헷갈린 것과 김미선이라는
    본명과 김림이라는 필명의 사이에서 죽어가는 재미에 가속도가 붙은 나의 기억
    세포가 나름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명자는 김지미의 본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김림(지금부터는 이 이름을 부르자. 본인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워
    지기를 원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한 자라도 줄이고 보자.개인적으로 나는
    외자 이름이 좋다. 연애 편지의 첫 머리를 장식할 때도 외자 이름이 그럴 듯 해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시인에게서는 6월의 상징 모란이 투영되었다.


    모란은 6월의 시어(詩語)로서 고귀한 이미지를 가진 꽃으로 알려져 있어서
    서양 꽃의 으뜸인 장미와 비견하여 동양에서는 모란을 가리킬 만큼 ‘꽃중의 왕’
    (花中之王)으로 불린다. 그러나 한국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모란과 나비를 같이
    그리지 않는데 당태종이 신라의 선덕여왕에게 보낸 모란꽃에 나비가 없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모란과 나비가 함께 등장을 하고 당연히
    화투그림에서도 모란에 붙은 나비가 있다.


    모란에는 벌나비가 앉지 않는 다는 것은 큰 오해인 것이다. 실제로 모란이 그득한
    곳에 가보면 벌도 나비도 날아들어 꿀을 따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김림 시인의
    첫 인상은 그랬다. 왠지 냉장풍(냉동풍보다는 그래도 조금 따스한 온도다)이
    불듯했다. 원래 통음(通飮)의 묘리를 깨우치지 않은 것인지 자리가 자리인 만큼
    사양지심을 발휘한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2차로 간 까페에서 그녀에
    대한 나의 관찰이 잘 못되었음을 알았다.


    화투판의 6월의 상징 '모란'에게는 오해 투성이다. 일부 지방이겠지만 그동안
    내가 교유한 행동파 화가들에 의하면 모란 대신에 '김지미'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화툿장에 유일하게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이기도 하다. 똥이나 쌍피처럼
    요긴하게 쓰이지 않지만 청단이라는 비수 하나를 숨기고 있다. 나는 모란에 붙은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좀 더 많은 향기를 피워 봄은 어떨까 싶다. 물론 향기의
    의미는 알아서 정의 하시도록......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가 세마리 그려진 일명 '팔열'이 손에 들어 오면 가장 고민이
    되는 게 사실이다. 매조나 흑싸리라도 같이 들면 고돌이라는 제법 큰 당근을
    노려봄직도 한데 달랑 요거 하나만 들어 오면 난감해지기 까지 하다. 다른 말로
    패 말리기 딱 좋은 것이다.


    솔이 김숙이 시인은 이번 모임에서 '팔열'의 이미지로 딱 박혔다. 기러기는 요즘은
    외로움의 상징처럼 되었지만 창공을 훨훨나는 자유로움에 있어서 늘 창작의 자유에
    목말라하는 문인을 닮았다. 기러기는 하늘을 날때도 땅에서 잠을 잘때도 무리로
    모여서 지내면서도 자기 영역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성향도 문인들과 판박이다.


    솔이 김숙이 시인은 이번 모임에서 서울,경기,강원지역 수장이 되었다. 옛날 같으면
    삼도절제사(三道節制使)와 같은데 도성을 끼고 있으므로 여타 절제사와 비길바는
    못 된다. 요즈음 세대들의 말로 '끗발 졸라 땡기는 자리~'인 셈이다. '팔열'의 그림이
    기러기 세마리인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네마리였으면 분명 충청도까지 먹이로
    삼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자리를 두고서 경쟁이 치열하여 엄청난 로비가 있었다는
    후문도 있다.(유비통신 1월 20일자) 그러나 평소 청계천 나들이가 잦았던 김숙이
    시인을 필적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김시인이요...그래니 그 청계천 덕을 솔찬히 밧드레요...진짜래요"
    구수한 강원남도 사투리의 조라가망님 하소연만 보더라도 이번 지명전에서
    청계천이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할 것이다.


    각설하고
    김숙이 시인은 '팔열'을 잘 움켜쥐고 기러기들이 날아 가지 않도록 지켜야 할 事~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 염색부족!!!'
    화투판에서 종종 듣는 탄식이다. 홍단을 할 양으로 칠월의 상징인 홍싸리를 잔뜩
    기다리고 있다가 뒤집은 패가 흑싸리일때 터지는 안타까움의 비명이다.
    우성식 시인이 바라 보는 세상은 모두 흑싸리 한 판이다. 그는 차례로 돌아가며
    인사하는 순서에서 "시인이라면 순수해져야 한다"는 일성을 뱉어냈다. 바로 옆에
    혜관 이상태 선생님의 두터움이 막아주는데도 그 말 한마디는 관운장의 언월도가
    되어 시퍼른 날을 번쩍이며 가슴을 갈랐다.


    그렇다. 그의 말대로 시인이라면 순수해져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나는 괜히
    오금이 질렸다. 어떻게 하면 순수에 가깝게 가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을 굴려도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아 내린 결론은 순수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에 순수함이 존재
    할 수 있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전도(轉倒)된 세계에 사는 우리들......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던 어느 시인처럼 껍데기와 알맹이를 구분하는 절대적 기준은
    무었일까? 인간의 이성으로 규정되어진, 또는 관습으로 옭매어진 그런 잣대로
    너는 껍데기, 나는 알맹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진 것은 아닐까?


    우성식 시인을 왜 흑싸리에 투영하는가 하면 흑싸리야 말로 48장의 동양화중에서
    가장 전도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가 흑싸리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등나무다. 또 대부분 보리로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화투의 원산지인
    일본 원판에 따르면 확실히 등나무의 표현이다. 쥐는 방법도 그렇다. 싸리 또는
    보리라는 생각에 잎이 위로 가게 쥔다. 그것은 '사열'이라고 하는 새가 그려진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새가 나는 위로 가지가 내려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등나무와 함께 그려진 새는 두견새다. 봄에 처량하게 우는 새가 두견새다.
    갑자기 拙詩 한 수가 생각난다.


    사불산의 봄/김대근

     

    문경땅 사불산四佛山 정상에
    진달래 늦게 피는 이유
    나는 알지, 그 사연
    봄바람 나 마실간
    두견이 때문이지
    사하촌寺下村 두견이 구구구 울 때마다
    몽실몽실 가슴이 가려운 진달래 봉오리들
    목 빠지게 넘겨 보지만
    코도 눈도 뭉그러진 채
    사리 빠진 자리마다 흉터 생긴 돌부처가
    자꾸 눈앞 가려 졸이는 마음
    길 잃은 벌 한 마리 마침 지나다
    내일이면 오겠지, 두견이 말이오


    사불산에 올랐는데 밑동네는 활짝 핀 진달래가 산정에는 아직 꿈쩍도 않는지라
    기온차인가 했는데 아랫마을에서 두견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하~ 진달래란
    두견이란 놈이 실한 남정으로 찝적여줘야 피는구나 했다.
    나는 참 순수하지 못한 생각을 많이 한다. 길가에 뿌려진 060-으로 시작되는
    삐라속의 여인들에게서도 색욕을 느낀다. 나는 시인이라는게 부끄러워 진다.


    우성식 시인이여! 부디 내 몫까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외가쪽으로 먼 친척 누이가 있었다. 내가 국민(초등) 5학년쯤에 그 누이는 시집을
    가야할 나이였으니 차이가 많았다. 그때는 만화그리기에 빠져 있던 때라서 그림을
    좀 그렸다. 본인이 좀 그렸다고 표현을 하면 좀 부끄럽지만 뭐 자기 아이큐가
    400이 넘는 다는 사람도 있는데 다들 이해 하리라 생각된다.


    겨울 방학을 맞아 외가에서 지내고 있는데 오지게 추운 어느날 밤 30리 길을 걸어
    누이와 그 친구가 찾아 왔다. 요지는 오랫만에 서울에서 친구들이 와서 화투를
    치려는데 두장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의 화투는 가운데 회가 들어가 있어서 잘
    부러지기도 했다. 그냥 놀려니 영 재미가 없어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소문이 나
    데릴러 왔다는 것이다. 외할머니는 영 마뜩찮아 하셨지만 예술가란 모름지기 팬이
    있는 곳이라면 가야만 하는 것이기에 따라 나섰다. 30리 밤길을 더듬어 가는 동안
    누이는 내 손을 잠시도 놓지 않았다. 그 따스하던 기억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도착을 해서 떨어져 나간 앞 면에 달력을 오려붙이고 이장에게 나라에서
    특별히 준다는 흑적청색의 모나미 볼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삯으로 노름판
    데라(이말은 일본말인데 우리말을 모르겠다.) 뜯어 모은 이십원을 받았다.
    그때 그린 그림이 풍열과 홍싸리와 멧돼지가 그려진 '칠열'이었다.


    윤혜숙 시인에게 단풍 아래 사슴이 있는 '풍열'을 헌정한다. 따스하게 30리길을
    잠깐도 놓치지 않고 내손을 꼭 잡아준 누이 같아서 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