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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북도 익산의 고찰, 숭림사[崇林寺]
    여행기 2007. 9. 21. 12:00

     

    전라북도 익산의 고찰, 숭림사[崇林寺]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들어가는 길이 아름답고 앉은 자리가 아늑한 절이라면
    역시 명찰이라는 반열에 올려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늘 명찰이라고 하면 이름난 절을
    떠올리게 되지만 나는 명찰이라는 개념을 사람이 적게 오면서도 아름다운 진입로와
    가람이 있는 곳의 자연과 어우러짐, 그리고 역사를 꼽는다. 단지 대찰(大刹)이냐 아니냐
    하는 것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대찰이라고 해서 반드시 명찰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가본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함라산에 있는 절, 숭림사도
    명찰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만 하다고 생각이 된다.

     

     
    숭림사로 들어가는 길은 어느 골짜기에 비해서 손색이 없다. 다만 단점이라고 한다면
    숲길의 길이가 다소 짧은 것인데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되는 여늬 대찰들에 비하면
    조용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상쇄될만 하다.

     

     

     


    숭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려 충목왕 원년(1345년)에
    창건하였으며 숭림사(崇林寺)라는 이름은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인 보리달마(達磨) 대사가
    허난성[河南城]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 동안 면벽좌선(面壁坐禪)을 했다는
    고사(故事)에서 따왔다고 한다.


    조선중엽 임진왜란을 맞아 이곳 역시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순 없었고 그때 보광전(普光殿 :
    보물 제825호)만 빼고 모두 소실되었는데 10년 뒤에 우화루(雨化樓)만 재건되었다.
    그뒤 별다른 기록이 없어 보광전과 우화루만 남은 조그만 사찰로 명백을 이은 것으로
    보여진다. 1923년에 이르러 나한전과 영원전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절 입구에
    일군(一群)의 부도군이 있다.

     

     

    숭림사 우화루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우화루이다. 우화루라는 이름은 여기서도 그리 멀지 않은 완주군에
    있는 고찰 화암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절입구의 문 역활과 루(樓)의 역활을 같이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층 루각에서 비오는 모습을 보노라면 잠깐 구름사이로 내어민 햇살이
    비치면서 빗방울들을 반사시켜 마치 꽃비가 내리는 듯 한데 여기도 아마 그런 연유로
    우화루(雨花樓)라는 멋스런 이름이 붙었지 싶다.


    이 우화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집으로 전하는 『우화루중수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석덕 스님이 창건한 후, 1819, 1855, 1964, 1992년에 각각 중건되었다.
    다른 건물에 비해 특이한 점은 건물을 밖에서 보면 짧은 동자주를 받친 이층의 누각형식
    인데 안쪽은 중정과 높이가 같은 단층으로 개방되어 있는 점으로 아마도 이곳의 대지가
    협소하고 경사가 완만한 편이어서 전면 누각을 높게 만들면 보광전이 완전히 가려져 버리는
    것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으로 불태워졌다가 10년뒤에 새로 지었다.

     

     

     
    숭림사 보광전 (보물  제825호)


    숭림사의 가장 중심건물이다. 주불로써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비로자나 부처는
    지혜의 상징으로 온 세상을 지혜의 빛으로 비춘다. 보광전은 17세기 이전에 지은 건물로
    추정되고 있으며 기록에 임진왜란때 보광전을 제외하고 모두 탔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건물
    의 연혁은 훨씬 오래전이었을 것이다.


    보광전의 크기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 형식을 채택 하였다.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넣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은 보 끝에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고, 기둥 윗부분의
    부재들은 연꽃, 용의 몸, 용 앞발이 여의주를 쥐고 있는 모양 등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 보광전은 법식과 기법이 특징인 조선 후기 건축물로 건축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중요
    자료로 주목받는 문화재로 보물 제8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숭림사 보광전 목조 석가여래상


    비로자나 불이 주불인 보광전이지만 오래된 석가여래좌상이 한 구 있다. 1613년에서 1614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불상은 원래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함께 있는 삼세불이었으나 1986년에
    도난당하여 지금은 석가불만 남은 상태이다.


    『숭림사재산대장(崇林寺財産臺帳)』 「보광전석가모니불상복장기문(寶光殿釋迦牟尼佛像
    腹藏記文)」에 의하면 1613년(광해군 5) 겨울 초파일에 조성하기 시작하여 다음 해인 1614년 봄
    초파일에 완성했으며, 왕과 왕비, 왕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해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불상의 복장에서 나온 기록에 의하면 시주자와 당시 주지등 조성불사에 참여했던 스님들의
    직급과 명칭이 나열되어 있다.


    이 불상은 매우 큰 규모로 안정감이 있고 중후한 느낌을 주는데 17세기 불상의 전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전체높이 110cm로 나무로 만들어 졌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이다.

     

     

    숭림사 영원전


    숭림사의 북쪽 화산 기슭에 퇴락한 성불암(成佛庵)의 칠성각을 1926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자연석 두벌대의 기단에 막돌초석을 얹고 원기둥을 사용하여
    다포를 올린 모습의 이 건물은 조선 숙종 23년 (1697년)에 건립되었었다.


    영원전이라는 이름은 명부전, 지장전, 시왕전의 별칭으로 다른 절의 명부전과 같이  목조의
    지장보살상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다. 영원전의 불상들은 조각수법으로 볼 때 조선 인조 12년
    (1634년)에 지장보살상이 조성될때 같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한상은 옥구 보천사
    (普天寺)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숭림사 정혜원


    이 건물은 스님들이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는데 보광전 마당의 서쪽에 있다.
    『정혜원상량기문(定慧院上梁記文)』에 따르면 159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중건한 것이라 한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건물로, 부엌 쪽에 한칸반을 덧붙여 퇴칸을 구성한
    특이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숭림사 찾아가는 길

    1) 서해안 고속도로 군산I.C.→724 지방도→나포→웅포→숭림사

    2) 호남고속도로 논산I.C.→강경→23번 국도→용안면→711번 지방도→성당리→맹산리→숭림

    3) 호남고속도로 익산I.C.→ 미륵사지→함열읍→함열리 방향 724번 지방도→숭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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