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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청암사의 깊은 가을여행기 2007. 11. 12. 16:15
김천 청암사의 깊은 가을
며칠전 서리 내린 다음날부터 회사옆 사과농장에는 수확준비가 한창이다.
서리를 맞아야 설탕같이 단맛이 드는 품종이기에 서리를 몇 번 맞고나면
사과를 따는 것이다. 아마도 며칠내로 플라스틱 사과상자 가득히 붉은 사과가
그득해 질 것이다.
추풍령을 넘어면 바로 김천에 닿고 그 김천의 가장 남쪽에 천년고찰 청암사가
있는데 이상하게 몇 번을 가본다 하면서도 가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기회가 있었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김천나들목에서 김천시내를 거쳐야 한다.
오래전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없었을때 서부 경남쪽으로 가려면 대부분
김천 나들목을 나와 김천시내를 거쳐서 함안.의령쪽 이정표를 따라야 했다.
김천을 완전히 벗어나 청암사로 가는 지방도로로 들어서자 가을 풍경이
나그네를 반겨준다.
가을은 푸른 잎들이 나무를 떠나 자연의 섭리에 몸을 맡기는 어찌보면 우울한
계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풍경들 때문에 가을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깊은 심상속에는 외로움을 참지 못하는 영역도 있지만 혼자 있기를 갈망하는
면도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가을은 혼자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무흘구곡이 시작되는 곳에서 만난 선바위(入岩)이다.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다종교이면서 종교간 반목이 그다지 극단적이지 않은건
우리나라에 들어온 모든 종교가 다신교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종교도 유일신을
주장하지만 그들도 자신의 종교를 믿어야 영생과 현세의 복이 있다고 설파한다.
우리는 예로부터 이런 선바위, 호랑이, 곰, 동네어귀의 성황당 나무등에 현세의 평안을
빌어왔고 미신을 철저히 부정하는 유교국가에서도 집안에서의 조왕신등을 믿기도 했다.
이렇게 잘 생긴 선바위라면 수많은 민중들이 손바닥이 닳도록 빌기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경상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이 김천이고 추풍령에 이르기 전에 가야산을 분수령으로
한 비교적 높은 산이 불령산 혹은 선령산이라고 하는 수도산(1,317m)이다.
불령산의 정기에 감싸여진 청암사(靑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8 교구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헌안왕 3년 (859) 도선국사가 건립한 고찰(古刹)이다.불령산 청암사의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기둥을 하나 가진 문이라는 뜻으로 불법의 진리가
둘이 아님을 나타낸다. 지금은 예전보다 기술이 떨어진 탓으로 보기 힘들지만 오래된
범어사의 일주문 같은 것은 정말 기둥 하나가 웅장하게 지붕을 버티고 있어서 옛 기술자의
균형감각이 대단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대개의 사찰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구조물이
일주문이므로 이 일주문부터 사찰의 영역이러고 보면 될 것이다.
일주문을 지나 만나는 가을풍경이다. 활엽수들이 만들어내는 가을 풍경을 어떤 화가라서
제대로 화폭에 옮길 수 있으며 어떤 시인이 있어 말에 담을 수 있을까?
그저 호흡지간에 맡기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에 심취할 따름이다.
금강문이라고도 하는 사천왕문과 탑비들이 모여있는 비각이다.
청암사 우비천(牛鼻泉)이다.
풍수적으로 청암사는 불령산에 감싸여 소 한마리가 왼쪽으로 편안히 누워있는 형상의
와우형(臥牛形)의 터이다. 그 중에서 청암사로 들어가는 개울을 건너기 전에 만나는
이 옹달샘은 소의 코부분에 해당되는 곳으로 우비천(牛鼻泉)이라고 하며 코샘이라고도
하는 곳이다.예전부터 이 코샘에서 물이 나오면 청산면은 물론이고 증산면 일대가 부자가 된다고
전해져 내려왔고 이 물을 먹으면 재복(財福)이 붙어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재물을 멀리해야 하는 수행자들은 이 샘을 지날때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청암사 입구에 닿으려면 사천왕문과 우비천을 지나 계곡사이에 가로 놓여진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에서 청암사 쪽을 보면 마치 선경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사적(寺蹟)에 따르면 조선 인조 25년 (1647) 화재로 전소(全燒)되었으나 당대의 강백이었던
벽암각성(碧巖覺性)스님이 이 소식을 전해듣고 그 문도(門徒) 허정혜원(虛靜慧遠)스님으로
하여금 재건토록 하였으며, 이에 혜원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청암사를 중건하였다.
그후 숙종의 정비(正妃) 인현왕후가 서인으로 있을 당시 이곳의 극락전에서 기거하면서 기도
하였던 것을 인연으로 하여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불령산 적송산림은 국가보호림으로 지정되었고 조선시대말기까지 궁중의 상궁(尙宮)들이
내려와 신앙생활을 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말기 청암사는 불교 강원(講院)으로서 크게 알려졌는데 청암사 강원의 효시는 조선
시대 대 강백이며 선사이신 회암정혜(晦庵定慧)(1685~1741)이다. 회암스님은 화엄학에
정통한 교학(敎學)의 대가였고 당시 운집한 학인수는 300명을 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지방 유형문화재인 석탑위에 내려 앉은 가을햇살이 단풍잎을 달구어 놓았다.
달구어진 마음 붉어진 단풍이 바람의 힘을 빌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보지만
이미 햇살은 기와의 치미를 넘어 서쪽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아마 내일 아침 새로운 해가 떠올라 이곳을 찾을때까지 마음조리며 말라 갈 것이다.
단풍은.....
우리 나라의 가을은 기와나 초가와 궁합이 잘 맞다.
우리 나라에 기와와 초가가 발달한 까닭은 옛 선조들이 자연에 잘 맞추어
집을 지었기 때문일 것이라 억지를 써본다.
그냥 버리기에 너무 아까운 청암사 계곡의 숲들과 물길...
가을은 이렇게 청암사의 골 바람에 떨어져 계곡이 물길을 따라 떠내려 간다.
자연은 다시 돌아 제자리에서 출발하겠지만 우리는 늘 이렇게 끝자락을 잡고
아쉬워 한다.
작년에 절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2박 3일을 지내 보았다. 홀가분 할 것 같지만 오히려
세속의 일들이 옥죄어 왔고 텔레비젼 같은 물질문명의 독이 깊게 스몄음인지 무료하고
권태롭기도 했다.
스님이 차를 한잔 대접하면서 내어 놓은 곶감 하나의 감미로움은 그냐말로 그동안
감미료에 길들여진 내 혀에 또 다른 감동을 주었었다.
이곳 청암사는 비구니(여스님)들의 수행처이다. 곶감을 깍아놓은 섬세한 자국에서도
느낌이 와 닿는다. 가을볕 한 올이라도 더 부여잡으려는 안타까움으로 곶감은 말라간다.
시레기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오롯히 말렸다가 세상이 꽝꽝어는 겨울날
뜨거움을 뱉어 내어 놓는다.
절의 앞마당을 지키는 석탑의 보살들에게 잘 익은 낙엽 한 장은 풍요로운 공양이다.
바람이 올리는 이 공양을 기꺼히 받은 보살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가을에는 잎맥의 수분을 남김없이 나무에게 주어버리고 자신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 버리는 것의 미덕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준다.
지붕위에 소담스럽게 떨어벼 내린 저 낙엽들 덕분에 노린재같은 작은 생물들은
또 얼마나 따스한 겨울을 보내게 될것인지....
청암사의 가을
김대근
바람은 청암사의 가을 만드는 장인이다
한 올 가을햇살을 잡으려 애쓰다
제 풀에 자꾸 말라가는 감
그 까칠한 피부 쓰다듬어 그슬기도 하고
잘 익은 단풍 한 잎 골라 석탑에 공양 올리고
얻어낸 보살의 미소를 날라서
대웅전 문살틈을 메우기도 한다
청기와에서 미끌어진 불령산 그림자를
등에 지고 산문을 나와설랑
우비천에 몰래 단맛으로 풀어 놓기도 하는 것이다
이 가을이 지나고 나면
무료한 청암사 바람은 풍경의 가슴을 만져
땡땡땡~ 놀라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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