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8월 15일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歷史) 2007. 8. 16. 08:27

     

    8월 15일 오늘의 역사


    국내
      1376(고려 우왕 2) 무위소, 신무기 수차 등 제조
      1916  대종교 나철, 별세
      1924  형평사 통일대회, 대전에서 열림, 31개 단체 참가
      1926  시인 박인환 출생,  대표작: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1944  수풍발전소 송전 시작
      1945  대한민국 일제에서 해방, 여운형,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결성
      1948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
      1954  경부선 통일호 개통, 서울-부산간 9시간 30분
      1965  동양텔레비전 방송, 중앙텔레비전방송(JBS-TV)으로 상호를 변경
      1966  중앙텔레비전방송, 동양방송으로 상호를 다시 변경.
      1970  남산1호 터널 개통
      1974  박정희대통령 영부인 육영수여사, 문세광에게 피격당하여 서거
      1979  국방부, 국군방송 FM송신 시작 101.㎒
      1987  천안 독립기념관 개관 (1983년 8.15 기공)
      1989  임수경 문규현신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후 판문점 통해 귀환
      1992  범민족청년학생연합회 결성
      1995  옛 총독부 건물 첨탑 제거
      1995  김수환 추기경, 5.18 학살자 처벌해 민주질서 바로잡자는 메시지 발표
      1997  뮤지컬 `명성황후` 국내 공연사상 최초로 뉴욕 공연
      2000  북한 민항기 50년 만에 한국에 첫 취항
      2005  남북 이산가족 첫 화상상봉

      2010  조선왕실의 정문인 광화문 복원 준공

     

    해외
      1769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출생
      1886  인도의 종교가 라마크리슈나 별세
      1914  파나마운하 개통
      1945  일본,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
      1947  인도와 파키스탄, 분리하여 독립선언
      1947  인도네시아 단일공화국 선포
      1956  독일 극작가 브레이트 별세
      1975  방글라데시 무지브라 라만 대통령 피살
      1979  지옥의 묵시록 개봉
      1991  마다가스카르서 대통령 친위대가 반정부시위대 138명 학살
      1998  북아일랜드 폭탄테러로 30년 만에 최대 유혈참극 발생


    -----------------------------------------------------------------------------



    일제에 의해 조선의 국권이 침탈 당한 후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독립투사들의
    대부분이 대종교 교인이었을 만큼 대종교가 미친 민족자존의 힘은 컸다.


    당시 조선은 유교가 국교화 되다시피 되어 있었고 불교는 민중신앙으로 힘을 잃고 있었고
    어지러운 난세를 맞이한 무교는 민중을 현혹하기에 바빴지만 나철에 의해 중창된 대종교는
    민족신앙의 중심으로 큰 역활을 했다.


    나철은 본명이  인영(寅永)으로 29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33세에 이르러
    징세서장(徵稅署長)의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얼나지 않아 사퇴하고, 구국운동에 뛰어들어
    활동하였으나 한계에 봉착하자 민족종교운동을 시작하였다.


    일본에 건너간 그는 "동양평화를 위해 한·청·일 3국은 상호 친선동맹을 맺고, 한국에 대해서는
    선린의 교의로서 부조(扶助)하자"는 내용을 일본 정계에 전달하고, 3일간 금식농성을 하였다.
    그러던 중 을사조약의 체결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조약체결에 협조한 매국노를 저격하려다
    실패했다.


    그가 귀국했을 때 서울역 근처에서 백전(伯佺)이라는 노인으로부터 후에 대종교의 경전이 된
    〈삼일신고 三一誥〉와 〈신사기 事紀〉를 전해 받았고, 1908년 도쿄[東京]의 한 여관에서
    두일백(杜一白)이라는 노인을 만나 단군교포명서(檀君敎布明書)를 받으면서 대종교 중창의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그해 12월 도쿄의 어느 여관에서 이기호·정훈모 등과 함께 두일백
    으로부터 영계(靈戒)를 받았다.


    정치적 구국운동에 대한 좌절로 민족종교운동으로 방향을 돌린 나철은 마침내 1909년 1월 15일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한 뒤 단군교를 선포하였다.
    이날을 대종교에서는 중광절(重光節)이라고 한다.


    일제의 종교탄압이 점점 심해지자 국외교포로 교단을 유지하고자 만주 북간도 삼도구(三道溝)에
    지사를 설치하고 교리의 체계화에도 힘을 기울여 1911년에 〈신리대전 理大全〉을 간행했다.
    1914년에는 교단 본부를 백두산 북쪽 청파호 부근으로 이전하고 만주를 무대로 교세확장에 주력
    하여 30만 교인을 확보하는 등 최성기를 구가하였다.


    위협을 느낀 일제는 1915년 10월 '종교통제안'을 공포하여 대종교에 대한 탄압을 노골화하였다.
    존폐위기에 봉착하게 된 그는 1916년 8월 15일 구월산의 삼성단에서 일제에 대한 항의표시로
    49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5년은 광복 50주년이 되는 해였는데 정부에서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여러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날 옛 총독부 건물의 첨탑을 제거하는 것을 필두로 전국의 산정에 박혀있던
    쇠말뚝 20개를 제거하고 일본식으로 개명된 지명 129곳을 우리식으로 고쳤다.

     

    경복궁은 조선 왕실의 정궐(正闕)로 지어졌다. 그러나 경복궁은 임진왜란때 불에 타고 말았다.

    실록에는 백성들이 방화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최근의 연구로는 왜군에 의한 방화가 확실해졌다.

    그러나 정문인 광화문 만은 원형을 유지해 왔었다. 경복궁은 그후 폐허인채로 있다가 홍선 대원군이

    섭정을 하면서 다시 복원했다. 경복궁 복원을 위해 당백전을 발행하면서 인플레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일제가 경복궁과 광화문 사이에 조선총독부를 지으며 조선의 정기를 비튼다는 뜻으로 살짝 옮겨 지었다.

    625 동란때는 폭격으로 상부가 모두 불에 탔다. 그후 박정희 대통령이 콘크리트로 복원하였으나

    위치는 여전히 틀어진 대로 있었다. 그것을 20여년의 복원작업 끝에 원래 있던 자리 그대로 옮기고

    현판도 본래의 글씨체 그대로 복원하여 2010년 오늘 준공식을 가졌다.

     

    '오늘의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17일 오늘의 역사  (0) 2007.08.17
    8월 16일 오늘의 역사  (0) 2007.08.16
    8월 14일 오늘의 역사  (0) 2007.08.14
    8월 13일 오늘의 역사  (0) 2007.08.13
    8월 12일 오늘의 역사  (0) 2007.08.12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