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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13일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歷史) 2007. 8. 13. 10:28

     

    8월 13일 오늘의 역사


    국내
      1467(조선 세조 13) 청년장군 남이, 이시애의 난 평정
      1615(조선 광해 7)  조선시대 명의 허준 별세, 저서: <동의보감>, <언해구급방>
      1652(조선 효종 3)  금군에 관마 주어 기병대 조직
      1841(조선 헌종 7)  조선말 학자인 간재 전우 태어남
      1897(조선 고종 34) 독립협회, 개국 505회 기념절 기념식 독립관 거행
      1909  조선고서간행회 설립
      1912  토지조사령 공포
      1933  대동군에서 석회종유동굴 발견
      1935  심훈의 <상록수>, 동아일보 현상소설에 당선
      1951  국회, 한국조폐공사법 통과
      1952  근로기준법 국회 통과(53.5.13 공포)
      1955  성전환 제1호, 적십자 병원서 수술
      1956  서울특별시의원 및 전국 각도의원선거 실시
      1959  일본과 북한, 재일교포 북송협정에 조인
      1960  윤보선, 제4대 대통령에 취임
      1965  국회, 야당 불참 속에 월남파병동의안 통과
      1979  인천 대동창고회사에 화재
      1980  김영삼, 정계은퇴 발표
      1981  안양시 보신탕집서 프로판가스 폭발. 10명 사망, 20명 부상
      1989  배용균 감독, 제42회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서 최우수작품상 수상
      1993  강원도 태백시 한보에너지 통보광업소 탄광 매몰
      1997  조순 서울시장, 대선 출마 선언


    해외
      1868  페루와 에콰도르에 지진, 4만여명 사망
      1910  백의의 천사 영국의 프로렌스 나이팅게일 별세
      1927  쿠바 수상 카스트로 출생
      1946  영국의 사상가 웰즈(1866-1946) 별세
      1949  서독, 제1차 총선거 실시
      1960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독립
      1961  동독, 베를린장벽 구축
      1978  베이루트의 PLO본부 폭파로 150명 사망
      1979  중국, 산아제한정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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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 장군은 조선시대 비운의 장수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는 남달리 빠른 출세 가도를
    달렸는데  17세로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고, 병조판서까지 지냈으나
    한명회, 신숙주 등에 의해 밀려났다가 28세인 예종 때에 유자광의 무고를 입어 역모의
    주모자로 처형당했다.


    그가 출세의 가도를 남달리 빨리 달린 이면에는 태종의 외손자이며 당시 세도가인 좌의정
    권람의 사위였다는 배경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천하의 모사꾼이라 칭하여
    지던 한명회가 권좌에서 물러나 절치부심 하던 중이었는데 복귀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희생양이 필요했고 남이장군이 여진족 토벌 때에 지었던 시를 고쳐서 증거로 삼았으니
    이른바 필화(筆禍)사건이었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에게 먹여
    없애네, 남아 20에 나라를 평안하게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라고 하여 자신의 기개를 읊었는데,
    `未平國'을 `未得國'으로 고쳐서 역모라고 무고하여 사형당하게 하고 많은 정적들을 제거해
    마침내 한명회는 영의정에 복귀하여 훈구파가 득세하게 된다.


    남이 장군은 영양, 포천, 철원, 제주 등의 도적들을 무찔렀으며, 그 때마다 신통한 능력으로
    도적패를 소탕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여진족을 토벌하여 요동까지 진격했으며, 북관에서
    이시애 등이 난을 일으켰을 때는 토벌군으로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하여 공신
    으로 책봉되었던 그가 무고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자 그에 대한 민중의 안타까움이 이야기가
    돼 전국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연려실기술>의 국조기사에 수록된 남이의 혼인설화는
    남이장군에 대한 당시 민중들의 기대와 안타까움을 엿볼 수 있다.


    “남이가 어릴 때 큰길에 나가 놀고 있었는데 하인이 보자기에 무엇을 싸서 지고 가는데 그 위에
    귀신 하나가 올라앉아 있었다. 따라가 보니 하인은 권람의 집으로 들어갔는데, 곧 집안에 곡성이
    나서 물어 보니 권대감의 딸이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었다. 남이는 자신이 죽은 딸을 살리겠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재상 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남이가 들어가 보니 처녀의 가슴
    위에 아까 본 귀신이 앉아있는데, 남이를 보자 곧 도망을 가고 죽었던 처녀가 살아났다. 그러나
    남이가 방을 나오자 처녀는 또 숨을 거두자 다시 그를 청하자 이번에는 마당에 있는 복숭아 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들어가 귀신을 때리며 호통을 치자 마침내 귀신은 물러갔고 처녀는 다시 살아
    났다는 것이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권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점쟁이를 불러 남이의 사주를 보았
    는데 오래살지 못할 것이라 했고 권람의 딸 역시 오래 살지 못하리라 하므로 둘을 혼례시켰다"


    지금도 무속과 관련하여 남이장군이 자주 등장하기도 하는데 귀신을 본다던가 복숭아 나무가지
    를 귀신쫓는데 이용했다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민간신앙으로 수용되어 만들어진 신화인 듯 하다.


    오늘은 청년장군 남이의 출세길을 열어주었던 이시애의 반란이 남이에 의해 진압된 날이다.



    조선의 왕들중 유일하게 북벌을 주장했고 이를 실천에 옮기려 한 군왕은 효종이었다.
    그는 활을 만들기 위해 수양벚나무를 심게하고 무기를 만드는 장인들을 모으기도 했다.
    그가 북벌에서는 무었보다 기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금군에 관마를 하사하여 기병대를
    만들도록 했다.


    창궐한 사대사상가들의 득세로 결국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북벌을 유일하게 추진했던 유일한
    군왕이 사대의 나라 조선에도 있었음은 알아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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