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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17일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歷史) 2007. 8. 1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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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7일 오늘의 역사


    국내
      1598(조선 선조 31)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또미 히데요시 별세
      1845(조선 헌종 11)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순교
      1883(조선 고종 20)  신식 인쇄소인 박문국 설치
      1901  한성전기주식회사, 한양성 내 첫 전등 점등
      1952  서울 양동에 대화재. 300여 가옥 전소
      1964  한국기자협회 발족

      1975  언론인 장준하 사망 (등산중 실족으로 발표, 아직까지 의문사로 분류)
      1977  반월공단부지조성 공사장서 다이나마이트가 폭발, 인부 6명 사망
      1983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 탈세 및 업무상 횡령혐의로 구속
      1985  고려대 구병삼 교수팀, 국내최초로 냉동정액 인공 수정아기 출산 성공
      1992  민자당 이종찬 의원과 민주당 한영수 의원. 신당 창당 선언
      1994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 남북정상회담 제안


    해외
      1662  프랑스의 철학가 파스칼 출생
      1807  미국 발명가 풀턴, 허드슨 강에서 최초의 증기선 '클라몬트'호 시운전에 성공
      1945  인도네시아 공화국 독립선언
      1979  소련의 두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충돌, 173명 사망
      1988  파키스탄 지아울하크대통령, 비행기 폭발로 사망
      1989  폴란드, 동유럽 최초로 비공산당 주도의 정부 수립
      1990  이라크 군기지에 미국인들 억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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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극동을 전화의 불덩이 속으로 밀어 넣은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는
    원래 이름이 고자루(小猿)였는데 교토 근방의 작은 마을인 오와리국[尾張國:愛知縣] 의
    하급무사인 기노시타 야우에몬[木下彌右衛門]이 히데요시가 원숭이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준 이름이다.


    그의 나이 15세때 자신이 태어난 지방의 중심지인 세이슈(淸州)를 지나 도우미(遠江)라는
    곳에서 그 지방의 성주(城主)였던 마쓰시타(松下) 일행과 마주치면서 마쓰시타의 시종이
    되었다. 토요토미가 마쓰시타의 신임을 얻자 주변의 모함이 있게 되었고 도둑의 누명을
    쓰고 쫓겨 나게 된다.


    다시 유랑생활을 하다가 18세때에 고향사람의 소개로 그 지방의 성주였던 오다(織田)
    가문(家門)에서 조리토리(주인의 짚신을 들고 따라 다니는 일) 일을 시작하였다. 그에게는
    오다 가문의 후계자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조리토리 역활이 맡겨졌다.
    그는 충실함으로 인해서 주인의 신임을 얻게 되었는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추운 겨울
    주인의 신발을 품안에 품어 따뜻하게 하여 주인에게 신겼다고 한다.


    토요토미가 크게 인정받은 계기는 세이슈(淸州)의 성곽 축대가 태풍으로 무너질 지경이
    되어 모두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복구계획을 수립하고 공사를 벌여 훌륭하게 마무리함
    으로써 큰 신임을 얻게 되었다. 관백의 벼슬에 올라 도요토미라는 성을 썼다.


    1558년 이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휘하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모반으로 죽은 오다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음과 동시에 그 뒤를
    이어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역대 최대의 일본통일을 이룩하였다. 1587년 규슈〔九州]를
    정벌하고, 1590년 오다와라〔小田原〕·오우슈〔奧羽州〕를 평정하였다.


    통일을 이룬 그는 비대해진 무사층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부터 자행해온 왜구의
    해적질을 국가적 규모로 확대한 임진왜란을 일으켜 결과적으로는 실패하였지만 수많은
    조선의 물자와 기술, 인력과 문화를 노략질 함으로써 일본의 발전의 기틀이 되었으므로
    그의 해적질은 성공한 셈이다.

     

     

     

    장준하(張俊河, 1918년 8월 27일 평안북도 의주 - 1975년 8월 17일)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가, 공무원, 언론인, 사회운동가, 잡지발행인이다. 일제강점기에 교육 활동을 하였고 일본군 쓰가다 부대에 자원입대하였으나[2] [3] 탈출, 중국군 중앙군 준위를 거쳐 한국 광복군을 찾아가 1945년 2월부터 한국 광복군, 미국 CIA의 전신인 OSS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였다. 이후 김구의 비서로 있다가 이범석의 민족청년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1공화국에서 공무원에 임용되어 1950년 문교부 국민정신계몽 담당관, 1952년 국민사상연구원 기획과장, 서무과장, 사무국장 등을 지내고 《사상계》를 창간하였으며, 제2공화국에서는 문교부 대학교육심의회의원, 국토건설단 기획부장, 제2대 국토건설단 단장 등을 지냈다. 1967년부터는 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56년 동인문학상을 제정하였으며 최남선을 추모하기도 했다.

    제2공화국 당시 장면내각의 문교부 대학교육심의회 의원, 국토건설단 기획부장, 국토건설단장 등을 지냈고, 초기에는 5·16 군사 정변을 지지했으나[4] 군정 이후 한일회담 반대운동, 베트남 전쟁 파병반대운동에 가담했다. 6대 대선에서 윤보선의 지지 유세 중 박정희의 친일파 경력을 문제삼았다가 국가원수 모독죄로 옥고를 치렀고, 이후 신민당과 윤보선과 함께 국민당에서 활동했다.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등산 중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당시 정부는 실족사로 발표했으나, 의문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평안북도 출신. (위키백과 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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