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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오늘의 역사오늘의 역사(歷史) 2007. 1. 23. 08:12
1월 23일 오늘의 역사
국내
662(고구려 보장왕 21) 연개소문, 사수에서 당 나라 군대에 대승
1604(조선 선조 37) 서산대사 입적(1520- )
1678(조선 숙종 4) 상평통보 주조
1851 고균 김옥균 출생
1904 대한제국, 러일전쟁의 중립 선언
1917 이기동 등, 동경노동동지회 결성
1938 일제, 중일전쟁 전략물자 조달 위해 국가동원령 선포
1961 사회대중당 김달호, 영세중립화를 위한 통일방안 발표
1968 북한, 미국의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 호 원산 앞바다에서 납북
1969 정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로 결정
1971 김대중, 연두회견에서 소련 등 동구권과 외교전개 필요 언급
1981 정부, 김대중 무기로 감형
1982 한국여자탁구팀, 서독오픈탁구대회에서 여자부 단체 우승
1983 충남 대호 방조제 완공
1995 경수로 사업지원기획단(단장 최동진) 발족
1997 한보철강 부도
1998 일본, 현행 한일어업협정 종료를 한국정부에 통보
2001 한국화가 운보 김기창 별세
해외
BC27 옥타비아누스, 로마 제정 확립
570 회교 교주 마호메트 출생
1556 중국 센시 대지진으로 85만명 사망
1783 프랑스 작가 스땅달(1783-1842) 출생
1832 인상파의 개척자인 프랑스 화가 에드와르드 마네 출생
1903 미국-콜롬비아, 파나마 운하 조약 조인
1913 터어키, 청년터키당의 쿠데타
1947 스탈린, 미-소 공존 가능하다는 성명
1964 파나마 분쟁
1973 미국-월맹, 휴전 협정 가조인
1982 프랑스, 소련의 천연가스 수입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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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승병장으로 활약한 서산대사 휴정 스님이 1604년 (조선 선조 37)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앉은 채로 입적했다.
스님은 1520(중종 15)에 태어나 9세때 모친을 여의었으며 이듬해 다시 부친이 별세하자
안주목사 이사증(李思曾)의 양자로 들어가 서울로 왔다. 그후 글공부에 매진하여 12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3년 동안 글을 익힌 다음 15세 때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했다.
낙방후 산천을 유람하다가 숭인(崇仁) 스님의 권유로 불교를 공부했다. 불교경전을 두루
섭렵하며 보내다 5년후 출가하여 1540년 일선(一禪) 스님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1549년 승과에 합격하였으며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의 직위에 올랐으나 승려의
본분과는 다름을 깨닫고 사직후 전국 각지를 다니며 선수행과 후학을 지도했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났는데 이와 연루되어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가 선조가 직접 죄인을 신문하는 국청에서 무죄가 입증되어 석방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선조가 피난길에 올랐는데 이때 선조의 부탁을 받은 스님은 전국에
격문을 보내 의승군(義僧軍)의 궐기를 촉구했다. 그리고 자신은 순안의 법흥사(法興寺)에서
1,500명의 승군을 조직하여 명나라와 합동으로 실시한 평양탈환작전에서 공을 세운다.
이에 선조가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에 임명하자,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제자인 사명대사(유정(惟政))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묘향산으로 돌아갔으나 선조가
서울로 돌아올때 다시 승군을 이끌고 나가 서울까지 왕을 호위하였다.
스님의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였으며
주로 묘향산에 머물렀기 때문에 묘향산인(妙香山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불린다.
저서로는 〈청허당집 淸虛堂集〉,〈선교석 禪敎釋〉,〈선교결 禪敎訣〉,〈심법요초 心法要抄>
,〈삼가귀감 三家龜鑑〉,〈설선의 說禪儀〉,〈운수단 雲水壇〉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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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 풍운아, 비운의 혁명가 고균 김옥균이 충청도 공주에서 1851년 출생했다.
고균은 지금의 공주시 정안면에서 태어나 차령고개 넘어 외가에서 주로 글을 배우다
일곱살때 재종숙인 김병기(金炳基)의 양자가 되어 서울로 갔다. 그는 문장, 시, 글씨,
그림 등의 부문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개화사상가인 박규수(朴珪壽)의
영향을 받아 개화당 형성에 주력하였다.
당시 조선의 상황이 자주적인 개화가 불가능 할 정도로 청나라에 의존적이였으며
개화를 위해서는 일본,미국,러시아 등의 힘을 빌어야 할 상황이였으므로 일본을 업고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켜 개화당 정부를 수립하고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만에 실패하고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중에 상해에서
1894년 홍종우(洪鐘宇)에게 암살 당했다.
김옥균의 생가와 유허 다녀온 포스트 보기
풍운아 김옥균의 생가를 다녀오다.
http://blog.daum.net/roadtour/3197970 <--- 클릭
김옥균의 유허를 다녀오다.
http://blog.daum.net/roadtour/3362692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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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보 수집함인 푸에블로 호가 1968년 원산 앞바다에서 납북되었다.
6명의 장교 등 총 83명이 승선한 이 배는 북한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에 의해 북으로
끌려갔는데 미국의 주장에 의하면 북한 해안에서 40Km 떨어진 공해상의 정상적인
정보 수집업무였고, 북한의 주장은 북한 연안을 침범하였다는 것이였다.
2월 초부터 이 문제를 두고 북한과 미국은 판문점에서 28회에 걸친 지리한 협상을
한 끝에 결국 미국이 굴복하여 영해침범 시인과 사과의 뜻이 담긴 승무원 석방문서에
서명한뒤 82명의 승무원과 유해 1구가 1968년 12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다.
배와 장비등은 몰수당했으며 지금은 평양의 대동강변에 전시용으로 사용하고 있다.'오늘의 역사(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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