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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2일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歷史) 2007. 1. 2. 00:27

     
    1월 2일 오늘의 역사


    국내
      1410  태조실록 편찬을 시작(1413년에 완성)
      1886  조선, 독일회사 세창양행으로부터 은 10만량 차관
      1946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중앙위, 반탁 결의문 발표
               조선공산당, 3상회의 결정 지지 선언(신탁 찬성)
      1956  민정당 발기(최고위원 이범석, 장택상)
      1957  유엔 총회 정치위, 한국문제 우선토의 가결
      1991  정부, 소련 진출 5대 사업 선정

     

    해외
        757  양귀비의 내연남, 안록산 아들에게 피살
      1484  플루타크 영웅전, 이탈리아의 인쇄업자 니콜라 젠손에 의해 출판됨
      1746  페스탈로찌 출생
      1905  일본군이 여순을 점령
      1920  미국의 생화학자이자 SF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 출생
      1950  소련, 중국과 공식적인 동맹관계 인정
      1959  소련, 최초의 달 탐사선 루나 1호 발사 성공
      1975  영국, 희극배우 챨리 채플린에 기사 작위 수여
      2001  중국과 대만, 52년만에 직항로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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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궐족(투르크) 출신으로 당나라의 고위직인 절도사에 올랐던 안록산이 특유의 익살스럽고
    호탕한 성격으로 현종과 양귀비의 마음에 들어 권세를 누렸다. 외형적으로 양귀비의 양자가
    된 안록산을 입궐하면 밤을 세우는 일이 잦아 양귀비와의 스캔들이 파다했다.


    범양 절도사로 근무하던 그는 그의 정적 '양국충'을 토벌한다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으며
    파죽지세로 낙양을 점령하고 장안의 입구 요충지 동관이 함락되었다. '양국충'은 양귀비의
    사촌오빠였는데 안록산과 양귀비의 밀착에 불만을 품어 사사건건 안록산과 충돌해왔다.


    마침내 현종은 양귀비와 황족, 대신들을 이끌고 피난길에 올랐으나 수행하던 군사들이 모두
    양귀비를 벌하라고 압력하는 바람에 결국 양귀비에게 자살을 명하기에 이른다. 안록산은
    계속 승승장구하여 양귀비가 죽은지 10일후 장안도 함락했다.


    반란을 일으킨지 2년만인 757년 1월 2일에 자신의 아들인 안경서에 의해 암살당했다. 안록산은
    적자인 안경서를 두고 애첩의 아들인 안경은을 후계자로 정하여 했기 때문이였다.


    안록산이 죽자 반란군도 지리멸렬하게 되었고 당나라는 다시 장안을 재탈환했다. 반란군 잔당은
    패주를 거듭하다가 763년에 모두 평정되었다.

     


    해방정국에서 친일파에서 한순간에 반공투쟁의 공로자로 인생역전을 이룬 사람이 있었다.


    그는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으로 그의 아버지는 대구의 악질적인 친일부호 장승원이였는데
    장승원은 당시 유림의 대가인 허위(許蔿)의 도움으로 경상북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당시 벼슬값
    20만냥을 주려고 했으나 허위는 "가지고 있다가 훗날 나라가 위태로워 지면 쓰자"고 했다.


    나라가 기울자 허위(許蔿)는 의병을 일으켰고 그의 부하인 박상진이 뒷날 대한광복회의
    총사령이 되었는데 단원들을 시켜 장승원을 찾아가 허위에게 주려던 자금을 기부하라고 했다.
    그러나 장승원은 이를 거부하고 일본 경찰에 밀고를 하여 대한광복회 조직이 드러낙 박상진은
    체포당해 사형을 당했다.


    1917년 1월 격분한 광복회원들에 의해 장승원은 사살되었고 해방후 장택상은 자신의 부하인
    노덕술(해방전 일본의 고등계 형사로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검거하고 고문했던 인물이다.)을
    시켜 자신의 아버지를 사살한 독립투사들을 좌익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검거했다.


    특히 부산경찰서, 밀양경찰서,식산은행,동양척식주식회사등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대장
    다나카를 피격하는가 하면 도쿄의 일본 황궁에 폭탄을 던지는 등으로 투쟁해온 의열단 단장
    이면서 임시정부 군무부장(국방장관)을 역임한 약산 김원봉을 노덕슬을 시켜 검거하기도
    했다. 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한 대한광복회 간부인 황상규가 김원봉 열사의 고모부였기에
    앙심을 품은 탓이였다.


    그는 친일로 불린 부친의 재산으로 편안히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 유학을 하다가 돌아와
    해방을 맞아 영어를 잘 하는 관료가 필요했던 미군정청과 미국에 빌붙은 이승만에 의해
    발탁되었다. 그야말로 그의 영국 유학이 그의 삶을 바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1950년 칠곡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비록 제2 여당이였지만 대한민국 정당의
    최고위원에 까지 올랐으니 개인적으로는 행복에 겨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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