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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開心寺), 서산의 포근한 절여행기 2006. 12. 25. 12:55
개심사(開心寺), 서산의 포근한 절
서산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국립 종우장(種牛場)이 있다. 이 종우장이 유명한 것은
그 옆에 있는 현대목장이 심어 놓은 벚나무가 봄에는 장관이어서 전국 각지에서 구경꾼이
몰려온다.
그곳에서 차로 불과 10여분이면 아늑하기로 소문난 개심사(開心寺)가 있다.
상왕산 개심사의 일주문을 만났다. 아직 단청도 안한 것으로 보아 세운지 얼마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겠다.
일주문을 지나 눈덮힌 소나무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개심사로 오르는 계단을
만나게 된다.
소나무들 마다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가 햇살에 녹아서 내려서 마치 한 여름 소낙비를
맞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길이다.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새긴 개심사 세심동(洗心洞) 입구...
보통의 절에서는 입구에 약수가 있고 세심(洗心)이라는 글자를 세겨 놓는데 이것은
절에 들어가기 전에 속세의 욕심스러움에 물든 마음을 깨끗히 씻어라는 뜻이다.
이곳 개심사에서는 여기서 부터 개심사에 이르는 기인 계곡을 걸으며 자연속에다
그 욕심을 하나둘 뱉어 마음을 깨끗히 하라는 뜻으로 세심동이라고 하는 가 보다.
계곡길의 중간에 만난 석불...
불상이 꼭 사람의 모양을 닮을 필요는 없다. 이런 바위에도 부처의 명호를 세기고
지극히 염(念)하면 부처가 되고 불상도 되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자신의 마음을 아는 공부를 하는 종교이다. 자신의 마음을 안다는 것도
어렵고 그 마음을 자신이 제어한다는 것도 어렵고 어렵다.
어느덧 개심사에 도착을 했다.
개심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외나무 다리... 특히 봄날의 경치가 좋은 곳이다.
외나무 다리에서 눈녹은 물이 떨어지며 일으키는 물결의 퍼짐~
물에 비친 거목... 헐벗은 고목들의 가지마다 단풍닢들이 어울어 졌다.
물에 비친 고목의 상은 분명 허상이다. 그러나 물에 떠있는 단풍나무의 낙엽은 분명한
실상이다. 허상과 실상이 만나서 멋진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냈다.
고목은 눈 내리는 겨울에 새로운 가을을 얻었고 떨어진 낙엽들은 안식처를 얻었다.
허상도 허상이 아니고 실상도 실상이 아닌 셈이다.
개심사로 들어가는 해탈문(解脫門) 이다. 절의 규모에 비하면 너무 좁은 문이다.
그만큼 해탈의 길은 좁아서 도달하기 힘들다는 교훈을 주고자 한것은 아닐까?
보물 제143호 개심사 대웅전이다.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14년(654)에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 성종 15년(1484)에
고쳐 지었고, 현재 건물은 고쳐 지을 당시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개심사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같이 있는 다포양식이다.
맞배지붕은 주로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양식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지붕 양식으로,
다포계 건물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맞배지붕에 다포양식인 이 대웅전은 그 구성이
특이한 예라 할 수 있으며, 다른 세부 건축수법에서도 다포양식과 주심포양식이 섞여 더욱
뚜렷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기본적인 구성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 주심포양식 건물인 강진 무위사
극락전(국보 제13호)과 비교가 되며, 대웅전 자체는 조선 전기 다포양식의 목조건물로서
귀한 건축사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당우는 중심건물인 대웅전과 심검당·음향각·관음전·산신각 등 5채의 건물로 되어 있다.
대웅전·관음전·산신각은 서쪽을 향하고 그 왼쪽의 심검당은 북쪽, 오른쪽의 음향각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비뚤한 목재를 그대로 사용했으면서도 단청을 하지않아 무척 정제된 느낌을 주는
심검당이다. 대웅전과 ㄱ자 형태로 세워진 이곳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건물이다.
심검당은 정면 6칸(16.9m), 측면 3칸(8.88m)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 기둥은
배흘림기둥이고 뒷면은 네모기둥이며 기둥 위에는 2익공 두공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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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검당에 딸린 마당...
해우소 가는 길~ 개심사 해우소도 선운사의 해우소와 더불어 운치있기로 소문나
있는 곳이다.
대웅전 옆으로 따로 있는 명부전이다. 명부전은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十王)을 모신 전각이다.
명부전 옆에 있는 건물은 흑백의 풍경화 같은 곳이다. 지금은 스님 한분이 참선중인지
댓돌위에 신발만 동그마니 있는 곳인데 칼러로 찍어도 역시 흑백의 문위기를 풍기는 곳~
명부전 옆으로 상왕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그길을 따라 오르다가
만나는 산신각이다. 산신각은 불교가 이 나라에 들어 오면서 재래의 전통적인 종교를
수용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전통적인 종교로는 칠성신앙과 산신신앙이 대표적인데 이 둘을 수용하여 대부분의 절에
산신각, 칠성각등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참선하는 스님들이 3개월동안 힘써 정진하는 동안거 기간이다.
누군가가 수행중인 작은 건물의 기둥에 걸려있는 하늘수박... 약명을 정확히 모르지만
어릴때는 하늘수박이라 불렀고 가을에는 늘 아버지가 몇개씩 따오셔서 기둥에 걸어
말리셨다.
동네에서 사용할 일이 있으면 우리집에 왔고 아버지는 아낌없이 나누어 주기도 했다.
어릴때 동네에 대학생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학생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고문끝에 거의
죽은 시체로 돌아왔는데 우리 똥깐에 담궈놓은 대나무 마디와 하늘 수박이 약이 되었다.
장독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곤장을 맞은 후유증에 좋다고 한다. 그 대학생 형은 몇년을
앓아 누웠다가 일어 났지만 정신은 결국 극복을 못해 정신병원으로 갔다.
이제는 60 노인이 되었을 텐데 잘 있는지 모르겠다.
개심사의 특징은 기둥에 있다. 반듯한 기둥을 사용한 다른 절에 비하여 개심사의
기둥들은 자연 그대로의 굽어짐을 사용했다.
이런 형태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청룡사(이 절은 남사당패의 근거지로써 유명하다.)외엔
본적이 없는데 개심사도 대웅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들이 이런 기둥을 사용하고 있다.
개심사의 건물들은 대부분이 나즈막한데 조선중기의 건물들의 특색이다. 그만큼 조선중기로
오면서 나라살림이 피폐해져서 절 건축에서도 건축 물량이 부족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버렸다가 녹은 감들.... 쭈글해져서 표면이 볼썽 사납다.
이쯤이 되면 까치도 산새들도 찾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나름의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 진리를 감나무에 열린 감 몇알에서 배운다.
또 하나 개심사 뒷뜰에는 북한에서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고 하는
약밤나무가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멸종하다시피 해버린 약밤나무는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흔했다.
가을이면 엄마는 약밤나무밑을 뒤져서 조그마한 약밤을 됫박 마련했다가 겨울에 눈이 오면
토끼몰이를 하는 동네 어른들에게 부탁하여 산토끼를 구해 약밤을 넣고 고아 먹이곤 했다.
병치레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개심사의 겨울은 따스했다. 마음이 따스해진 곳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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