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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자정과 눈 그친 정오이런저런 이야기 2006. 12. 18. 16:31
눈 내리는 자정과 눈 그친 정오
눈이 왔다. 눈오는 토요일밤...
詩人들의 모임이 있어 고속버스로 서울을 다녀왔는데 막차의 압박으로 모임자리에서
일찍 나왔음에도 아산행은 매진이라 천안으로 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집에 왔을때는 11시를 넘겼다. 천안과 아산의 중간쯤에서
조금 흩날리는 듯하더니 잠잠했는데 집에 도착해서 옷 갈아 입는 사이에 폭설이 내렸다.
도시... 인구 20만도 채 안되는 이 작은 동네를 도시로 불러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늘 창문을 열면 도시의 소음과 도시의 색깔들이 와그륵~ 밀려 들어온다.
집에서 뒷쪽으로는 터미널이 멀지 않은 탓에 모텔과 병원, 신축한 고층아파트들이 뿜는
각가지 색깔들이 현란한데 이 불빛을 늘쌍 바라 보며 공부하는 고1 둘째는 아름답다고 한다.
하긴 아이는 늘 도시의 불빛으로 자라난 탓에 그러리라 생각한다.
먼곳이다. 망원렌즈를 300mm의 임계점까지 땡겼고 삼각대도 없이 손각대를 이용해서 찍으니
역시 흔들렸다. 내심 저 나무와 가로등 뒤로 기차가 지나가 주었으면 하고 바랬지만 이미
자정을 넘겨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지금은 무리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150미터쯤 되는 이곳으로 지나는 기차의 소음이 제법 성가신데
그나마 필요하니 그도 그리워 진다. 하긴 지방선을 자정에 지나야 할만큼 급한 손님도 기차도
없을 것이니 괜스레 어둠만 탓해본다.
옆지기도 아이들도 모두 창문밖만 간절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런 날은 그저 야식이 최고다.
내 제안에 아이들은 환호한다. 눈오는 밤에 간식은 작은 컵라면이 최고라는데 모두들 동의해
컵라면 구입을 핑계로 길을 나선다.
걸어서 1분거리의 24시간 편의점 나들이인데도 모두들 중무장한 뽄세로 보아 최소한 30분
정도의 나들이는 되리라.
눈오는 밤에 가로등을 올려보는 것은 낭만적이다.
자정을 넘긴 거리에서 깔깔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행복감도 눈이 주는 선물이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연인이 지나친다. 몇몇 사람들이 어디선가 나와서 왁자함을 토해
어둠을 일시에 몰아내 버린다.
눈은 모든 색깔들을 덮어서 단일색으로 만든다. 까만차도 파란 트럭도 오늘밤은 모두들
하얀색으로 지세우게 될것이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눈앞에서는 동심만이 남아서 겅중대는 것처럼~
아이도 옆지기도 중무장을 했다. 하긴 춥기도 하다.
그래도 라면 몇개를 핑계로 하는 자정의 눈밟이도 꽤나 재미있다. 요즈음은 디지탈 카메라와
같은 기기들이 너무 많이 너무 빨리 발달을 해버려서 좀체로 무었을 마음에 담을 수 없다.
사진기가 아니면 핸드폰에라도 담아 두어야 안심이 된다.
요즈음은 가끔 내가 백치가 되어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때가 많다. 다음에 블로그를
운영하게 되면서 여기 저기 까페들에서 초청이 오고 마음에 드는 까페는 가입도 하게 되는데
가입시에 보안을 위해 묻는 간단한 질문인 76-59 같은 문제도 암산이 안되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것도 암산을 못해서 책상에 있는 공학용 계산기를 찾거나 핸드폰의 전저계산기 기능을
이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것이다.
현대는 조금씩 백치의 늪으로 나를 끌어 당기고 있다. 한발만 내어 딛고 나서면 되는데도
어쩌면 백치의 늪으로 스스로 빠져 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로등을 참 좋아 한다. 골목의 어귀에 세워진 가로등이야 말로 삭막한 도시의 밤을
따뜻하게 만드는 열원(熱源)같은 것이다. 밝은 전등불이 소원이였던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가난한 살림은 석유호롱불에서 나오는 시큼한 냄새와 껌정 아래서 만화가의 꿈을 키우느라
안경잽이로 만들었고 결국 만화가도 못 되었다.
늘 밝은 전등불은 염원이였고 그 염원은 중학교에 가서야 겨우 이루어 졌다. 나는 그날
똥싯간에서 눈물을 적셨다. 15촉 조그마한 알 전구밑에서....
그래서 다 자라서 50을 눈앞에 두고서도 아직 가로등의 불빛이 너무 좋다.
가로등 아래 놓여진 의자 하나... 작은 빌라의 담장에 붙여 놓은 이 의자에는 할아버지 한분이
수시로 나와서 어떤때는 종일 앉았다가 가는 곳이다. 가끔씩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아이들이
주문한 택배를 받거나 (맞벌이 부부라 시간이 조금 자유로운 내가 받는다.) 무언가 잊고 출근해
가지러 올때 늘 만난다.
이 자리에서는 농협슈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다. 아마도 그 노친내는
사람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는게 취미인듯 하다.
사람이 그립다는 것...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 모르겠다.
내일 아침이면 그녀들과 같이 알쌈하게 목젓을 타는 커피를 날라야 할 오트바이들...
이들도 오늘 밤만 잘 참고 견디면 내일 아침이면 펄펄뛰는 생선같이 싱싱한 그녀들의
체온에 행복해 하리라... 오늘밤만 지나면....
걱정되는 건... 그녀들이 눈길을 잘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밤이 지나 갔다. 정오가 되기 전 바깥은 여전히 눈빨이 날린다.
일요일 오전에 무리할 필요가 없는 탓인지 도로에도 차들이 없다. 그저 눈만..내리는 눈만
세상의 주인인양 내린다.
무협지에서는 이렇게 눈빨이 날리는 장면의 뒤로는 늘 음모가 뒤 따른다.
눈은 세상의 착하고 아름다운 것들뿐만 아니라 가증스러움 조차도 덮어주니 말이다.
그리고 정오...신기하달 정도로 눈이 딱 멎었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다시 올 것이다.
눈이 오건 비가 오건 사람처럼 시간을 정하고 오고가는 것은 아니다. 아니다 사람도
오는 날짜야 정해져 있지만 가는 날짜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서양에서 최고의 예언가로 꼽는 노스트라다무스도 자신이 가는 날은 모르지 않았는가.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죽는 날에 한발 두발 접근하는 것이다. 다만 그 가는 날을 모르니
삶이 절박하지 않을 따름이다. 만약에 태어날때 너는 몇년 몇월 몇일 몇시에 갈것이다라고
정해준다면 그야말로 하루 하루가 천금같은 것일텐데 말이다.
녹슨 접시 안테나는 늘 한곳을 바라 보고 있다. 지금은 용도 폐기 되었지만 자신이 아직은
쓸만하다고 여기는 것일게다. 철거비가 만만치 않으니 어쩌면 저 접시 안테나의 운명은
서서히 비에 녹슬고 눈에 조금씩 거죽을 벗기우고 바람에 산화피막을 날려갈 것이다.
풍장(風葬)...
그는 지금 풍장중이다.
창문에 붙었던 눈이 마지막 한방울 물로 변했다. 그리고 조금후엔 그마저도 증발해 사라졌다.
우리들의 삶이란 것도 이처럼 부질없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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