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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兄! 봉정암 다녀왔습니다.
    수취인 없는 편지 2006. 10. 2. 17:48

     

     


    K 兄!
    요즈음은 세월이 흐르는 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립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으로 느낌이 무딘 것은 애써 세월의 흐름을 부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냥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시간도 많이 흘러서
    이제 25년의 세월이 흘러버렸군요. 세월은 그렇게 가는 것인가 봅니다.
    해 질 녘 반짝이며 조용히 흘러가던 낙동강의 흐름처럼 무덤덤한 가운데
    그렇게 흘러가서는 되돌아 오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오늘 내가 돌리고 있는 이 세월의 바늘도 눈앞에 보이는 끊임없이 새롭게
    자리를 채우는 강물처럼 새것이라는 간절함이 들지 않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삶이 권태로워지는 원인이 될른지도 모르겠습니다.


    K 兄!
    세상에 대한 희망과 염세가 함께 하던 그 스물다섯의 나이로 출가의 길을
    가노라고 말했을 때 내가 뜬금없이 했던 말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머리를 깎으면 머를 제일 먼저 하고 싶노?"


    밀가루 공장 뒤로 통일호의 느릿한 소음이 지나고 난 뒤 넝마 꾼들이 모여

    살던 수문 위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수문을 여닫는 크나큰 주물핸들을

    만지작 거리며 뜸을 들이다가 그랬지요.


    "설악산, 거기 가믄 봉정암이라꼬 있다카데. 거 가서 삼천배나 할란다."
    "아이고! 이 미친놈아...그거 하는데 꼭 머리 깍아야 되나? 가고 싶으면
    언제던지 가서 하믄 되는 거지."


    K 兄!
    그리고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25년의 공백 동안 단 한 번도 봉정암을 잊은적이
    없었습니다. 그 세월동안 참 많은 절을 찾기도 했습니다. 같이 불교청년회에서
    활동하던 인연으로 도반을 배우자로 맞이한 탓에 더욱 절집을 많이 다녔지만
    나는 절에 들릴 때마다 혹시 승복을 입은 K 兄에 대한 기대가 더 컸습니다.


    집사람이나 나나 서로 빚 갚음을 하려고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서로에게 잘해
    주려고 노력하며 살려고 하고 둘 다 절 찾기를 게을리하지 않다 보니 가만히
    살펴보면 동안 가본 절이 적은 숫자가 아니긴 했습니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늘 집사람에게 내가 좀 더 잘해주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야, 인연법에 따라서
    다음 생에도 갚을 게 있겠지요.


    집사람이나 나에게 봉정암은 둘이 안고 사는 숙제였습니다.
    나에게는 K 兄때문에 생긴 숙제였고 집사람에게는 늙음으로 인해서 봉정암을
    못 가본게 한이라는 장모님의 영향이 컸던 것일 겁니다.


    마음을 맑히면 바로 깨달음이고 처처에 부처님 안 계신곳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불뇌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니 하고 집착을 끊지 못한 것이지요.


    내가 안고 산 25년과 집사람이 안고 산 25년의 봉정암.
    꼭 머리를 깎지 않아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곳이 그렇게 먼 곳임을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사람의 마음 한자리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도 며칠 전
    신문 한 조각으로 느꼈습니다.


    K 兄!
    최근 몇년 사이에 제 신심이 참으로 많이 나약해 졌습니다. 닦고 기름치지 못한
    탓으로 낡고 헐어서 여기저기 구멍이 난 넝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저 이런저런 핑계를 대입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오욕에 빠져있으면서도 사회인으로 산다는 것으로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지요.
    그저 동물적으로 살아가는 남들과 똑같은 나를 볼 때마다 자학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마음은 물들지 않았다고 견강부회하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토요일마다 절을 찾아서 밤새 참선을 하던 팽팽함을 버리고 그저
    사진기 둘러매고 또는 등산배낭을 메고 여흥을 즐기고 나서 찾게 되는 절에서
    그저 불전함에 지전 몇 장을 넣는 것이나 기와에 화이트 펜으로 이름 몇 자 적는
    것 등으로 부처님의 제자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아파트 현관의 철제문에 자그마하게 붙여 놓은 "불자의 집"이라는 명패가
    요즈음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습니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 때는 정면으로
    보는 위치가 되어서 '오늘은 5분이라도 화두를 잡아보자'라고 다짐하며 열지만
    이미 십 년 넘게 공염불이 되고 맙니다.


    반복되어 궤적을 밟는 아날로그 시계의 시, 분, 초침처럼 남을 질시하고 망령되고
    헛된 말을 만들어내고 음란한 생각의 꼬리를 만들어 내지만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반성하는 시간이나 마음을 갖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그의 제자라는 사실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요즈음 늘 하게 됩니다.


    K 兄!
    지난 수요일에 신문 한 장이 나를 설악산 봉정암으로 이끌었습니다.
    구독하는 불교신문을 늘 의무처럼 그냥 훑어만 보다가 봉정암 기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봉정암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마음이
    가슴의 한쪽을 찌릿하게 만들었습니다.


    집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모래. 금요일 밤에 가자"
    눈이 둥그레진 집사람에게 다시 한번 오금을 박았습니다.
    "아무 생각도 말그레이..., 무조건 한 생각 났을 때 가는기다..., 봉정암에.."


    시간을 자기 맘대로 쓰지 못하는 월급쟁이라 밤 7시나 되어 출발해서 백담사

    아래에 자정이 다 되어 도착을 했습니다. 미리 전화를 해둔 탓에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고 새벽같이 길을 나섰습니다. 집사람은 두고온 아이들 전화로 깨워서

    이것 저것 지시하고 살피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속세의 삶이란 번잡한 것이지요.


    K 兄!
    저잣거리에 사는 삶은 이렇습니다. 어젯밤 고속도로를 오는 동안에도 늘 아이들과
    전화를 해서 안부를 확인하고 보살펴야 합니다. 마치 보금자리의 새끼를 보살피는
    다람쥐처럼 삶의 전부가 자식들에게 맞추어져 있는듯 합니다.


    참으로 멀기는 하더군요. 육신이 감당해야 할 거리가 말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는 사실 마음의 길이에 비하면 조족지혈의 크기도 아니지요.
    한 마음먹고 나서면 되는 것을 왜 이리 멀고 멀었던 발걸음인지 모르겠습니다.
    늘 입에 올리는 핑계가 생활입니다. 백담사 앞 버스정류장에서도 집사람은
    노파심이 생겨 다시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지각하는

    시간이 된지라 신경이 쓰인 게지요.
    "엄만 내가 어린앤줄 알아? 내가 다 알아서 한다구..."


    세월이라는 것은 늘 우리를 앞질러 가는 것 같습니다.


    K 兄!
    사실 요즈음 무릎이 안 좋아 한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장거리 출장이 많은 탓에
    워낙 운전을 많이 한 탓에다 운동을 싫어하는 선천적 체질이 자꾸만 육신을 나약히
    만들어 산에만 다녀오면 조금 고생을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번이 아니면 자꾸만
    힘이 들듯 싶어서 아무 생각도 없이 달려왔습니다.


    참 많이도 걸었습니다. 걷고 또 걷고 걸었습니다.
    단풍들이 제법 물이 들었더군요. 사람도 나이가 들면 자꾸 빨간색이 좋아진다고
    하더니 나뭇잎들도 그런지 자꾸만 빨간색으로 치장을 하는 듯합니다.


    K 형!
    마침내 도착해서 해 질 녘 불뇌사리탑 앞에 도착했을 때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젊은 시절 K 형과 닮은 체형인 �은 스님의 뒷모습에 세월의 흐름은 생각하지도
    않고 얼른 다가가 옆모습을 보기까지 했습니다.


    참 어리석지요? 강물도 세월도 늘 흘러서 가버리고 현재 時点과 視点은 분명히
    다른 것임에도 잠깐 환영(幻影)속에 빠져 들었으니 말입니다.

    금강경 속에 나오는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 꼭 이럴때 쓰이는 말이군요.


    108배를 하려고 흙 위에 방석을 깔았습니다. 그러나 삼배만 하고 말았습니다.
    5시간 운전에 7시간을 걸었던 무릎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더군요. 정신이 육신을

    지배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게 하였습니다. 정신과 육신이 따로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어쩌면 25년 전쯤에 지금 하심(下心)의 삼매에 빠져있는 젊은 스님처럼 그 모습으로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답은 또 우리가 서로 살아있는 동안에라도
    들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K 兄!
    인연이라는 고리가 아직 한 개쯤 남아 있어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묻고 싶습니다.
    봉정암에서..., 불뇌사리탑 앞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느꼈는지...


    나는 탑도 보고 바람소리도 들었지만 무었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행복이 충만합니다. 밤새도록 방석 하나만 한 공간에서 염송을 하고
    찰나 같은 화두를 잡고 놓고 했지만 내일보다는 오늘, 내년보다는 올해, 이순간에
    여기 왔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K형!
    오늘 퇴근하면 우선은 조그맣게 종이에 몇 자 적어렵니다.


    살생중죄금일참회 투도중죄금알참회
    사음중죄금일참회 망어중죄금일참회
    기어중죄금일참회 양설중죄금일참회
    악구중죄금일참회 탐애중죄금일참회
    진에중죄금일참회 치암중죄금일참회


    한동안은 "십악참회"라도 그저 5%라도 지켜보렵니다. 우리가 불교청년회 활동을

    한다고 얼려 다닐 때 수계를 주신 스님이 기억나십니까?


    저에게는 자명(自明)이라는 自燈明法燈明에서 따온 법명을 주셨지요. 그리고 나서
    "이뭣고"라는 화두를 주셨지요.
    지금 생각하니 저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화두요 법명인듯싶습니다. 스스로 밝힘을
    가지라는 뜻이지만 천만분의 일도 근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두도 그릇의 크기가
    간장종지 만한 저에게는 너무 넘치게 커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K 兄!
    가을이 왔습니다. 도탑게 입으시고 껍데기 육신이라도 잘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후일 남은 인연의 고리가 우리를 만나게 했을때 눈 어두운 제가 알아보지요.


    K 兄이 스쳐갔을지도 모르는 그 자리..., 봉정암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혹시 솔잎에 걸어놓은 바람소리가 있었던지 제 가슴을 메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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