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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人兄! 바람이 붑니다.
    수취인 없는 편지 2006. 2. 20. 23:36

     

    人兄!
    한 며칠 날씨가 쌀쌀해 졌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졌다기 보다는 추워졌다라는 표현이 오히려 맞는것 같습니다.
    그제 토요일 아침에는 국도변을 지나는데 수확을 하지못한 배추밭의 파아란
    배춧닢위로 하얀 서리가 내렸더군요.
    그 옆을 졸졸 흐르는 냇물 위로도 물안개가 보글 보글 피어나는 모습에서
    변함없이 돌아가는 자연의 시계바늘이 정확함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변함없이 월요일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태생이 디지탈을 동경하는듯 쉬임없이 흘러가는 자연의 시간을
    쪼개고 나누고 구분지어서 년월일시분초로 가늠하기를 좋아하는것 같습니다.
    또 그것을 묶어서 주간으로 나누고 월화수..이름을 붙여서 삶의 권태로움을
    나름대로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쳇바퀴를 오늘도 새로운 한바퀴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또 며칠 있으면 다시금 월요일 앞에 서있게 되겠지요.

     

    어제는 큰딸의 진학문제로 조그만 언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머리가 굵어졌다고 호락 호락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큰 언쟁은 아니였지만 지내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인생의 문제이니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한 흔적이 역력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부모가 이러저러해라 하는것은 단지 참고사항일뿐이고 어디까지나 내문제인
    만큼 모든것은 내가 결정한다는 식이더군요.
    어쩌면 그동안 내가 주장을 해온 교육관인데 이게 내자식의 문제에 이르면
    질 되지 않는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한참을 심호흡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보니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주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거둔셈이 아닌가하고 자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정보를 주고 조언을 하는 입장으로 돌아서려고 합니다.

     

    요즘 들어서 왜 이렇게 세월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빨리 간다고 兄에게 하소연을 하면 兄은 분명 이러시겠지요.
    "金兄도 나이를 먹었다는 게지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가 말했다지요. 20대땐 세월의 속도가 20킬로고
    50대엔 50킬로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피부로 절감하는 것을 보면 저도 나이를 먹었달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며칠전에는 회사에서 오랫만에 짭밥을 먹고 으례 그러듯이 산책을 했습니다.
    출장을 떠나기전에 느티나무 아래 평상은 그런대로 깨끗했었는데 요 며칠사이
    가을비가 한번 스쳐 지나간 이후로 낙엽들이 되어서 우수수~ 떨어져 있습니다.
    일부러 바싹거려 볼까도 하였습니다만 역시나 그대로 두는게 나은듯 싶어서
    비켜서 지나 왔습니다.

     

    동물들도 이 가을에는 외로움을 타는가 봅니다.
    우리회사 식당에서 잔반을 처리할 요량으로 개 몇마리와 타조 한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개는 원래 사람을 보고 잘 반기는 녀석이라 가까이 가기만해도
    낑낑~ 거리며 반가운 척을 바로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 놈들보다는 타조란 놈에게 더 애정이 갑니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눈망울을 굴렁거리며 벌쭘거리며 겅중겅중 뛰는다니는게
    이놈이 나에게 보여주는 애정의 표시입니다.
    그저께는 다른 날과는 달리 한참을 겅중대더니 철퍼덕 주저앉아서는 마치
    페르시아의 무희가 하듯이 기~인 고개를 빙빙 돌리며 난리도 아닙니다.
    아마 이놈도 가을을 무지하게 타는가 봅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 말못하는 동물들도 가을을 타는가 보다하고 배웁니다.



     

     

    人兄!
    오늘도 머언 포항으로 출장을 가야 합니다.
    내일부터는 구두를 벗고 안전화를 신고 안전모를 쓰고 소음이 먼지처럼 날리는
    현장에서 일종의 전투를 시작해야 합니다.
    한 며칠은 좀 고생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이 행위를 전투라고 이야기 하기를 좋아합니다.
    군인들간의 목숨을 건 전투에서도 지휘관이 앞장을 서야 하듯이 산업현장인
    이곳에서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업원들의 개인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오리처럼 목청을 돋구어서
    꿱꿱~ 거려야 되니 어쩌면 본의아닌 가면을 써야만 하는 때입니다.
    이렇게 한 일주일 집을 떠나서 있다가 오면 마지막 몇닢이 남아있던 은행나무도
    완전히 가지만 남겠지요.
    그때쯤 다시금 생각하겠지요.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라고 말이지요.

     

    人兄!
    바깥에 바람이 불어서 자그마한 감나무 잎이 흔들립니다.
    바람이 있어서 흔들리는 것인지 잎이 있어서 흔들리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色見으로 인해 흔들림을 자각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의 色見을 끊어버리면 그럼 바람도 나뭇닢도 없는 것인지...
    한 며칠 외지에 나가 있는 동안 열심히 생각해 볼랍니다.
    兄은 아마도 그 답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한번 씨~익 웃어 주실테니까 말입니다.

     

    人兄!
    바람소리 소소하게 들리는 날 다시 뵙지요. ~ 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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