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P형! 초파일입니다..
    수취인 없는 편지 2006. 2. 20. 23:40

     

     

     

    P兄!
    어제는 P兄의 생각이 많이 나기도 한 날입니다.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이즈음이면 찾고자 하신 거 찾으셨는지 아직도
    찾기위해 몸부림을 치시는 것인지 말입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서 예까지 왔지만 아직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는 兄의 칭찬과는 달리 아주 둔재이거나 전생의 업이 많은 탓이거나
    兄이 나에 대한 과잉의 칭찬을 안겨주신 것이지요.

     

    P兄!
    아마도 15년전쯤인가 우연히 길을 번화한 길을 걷다가 M으로 부터 兄과
    절친했던 人兄의 이야기는 잠깐 듣기는 했었지요.
    人兄은 전라도 어디쯤에 있는 암자로 출가를 했다가 다시 세속으로 돌아왔다는..
    그러나 P兄은 종적을 모른다고 하였었지요.

     

    아마도 살아있다면 같은 동시대라는 시간적 공간에 있음을 만족해야 겠지요.
    그곳이 어디이건 찾고자 가셨으니 그곳에서도 해답을 찾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즈음에 들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P兄은 참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삶은 또 어떠한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P兄과 나는 서로가 마음의 중요함을
    아는 사람들이라 애써 집착하지 않으렵니다.
    인연을 믿으므로 언젠가는 다시 볼수도 있겠지요.
    아니 이미 같은 時空間에 껍데기를 두고 살고 있으니 따지면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겠지요.
    아마 P兄도 이말을 하고 있을 겝니다.

     

    P兄!
    같이 출가의 길을 갔다가 돌아온 人兄의 이야기는 몇년에 한번쯤 지나는 바람결에
    전해듣고는 합니다.
    그는 지금은 교직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할때나 글을 쓸때는 이니셜을 즐겨하는데 人兄에게만은 이렇게
    사람人을 붙이는 이유는 세속으로 다시 돌아와 몇년 흘러서 다시 만나 소주 몇잔에
    불그레 해진 목소리로 " 나는 도저히 사람을 벗어날수 없더만요... " 그러더군요.
    그를 생각하면 늘 그 생각이 먼저 나서 그렇게 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장자의 蝴蝶夢에 나오는 나비처럼 꽃향기나 깨끗한 꿀을 찾아서 떠났던 兄들과는
    달리 세상의 汚慾에 너무 많은 미련때문에 떠날 수 없었던 나는 세상의 온갖 배설물에
    익숙해있는 파리...똥파리가 사람이 되어 있는 꿈을 꾸는 것일게야..그럴지 몰라....
    똥속에서 부화하여 똥물을 먹으며 살다가 날개를 얻는 날에도 여전히 똥구덩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미련스러움...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끔은 하게 됩니다.

     

    젊은 시절..샛파란 청년의 몸으로 철야정진을 떠났다 밤새 가부좌를 틀고 앉았던
    밀양의 깊은 골짜기에 있는 그 작은 암자가 기억납니까?
    나는 아직도 그 암자의 노스님이 해주시던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도 세상을 담는 그릇과 같은 것이어서 작은 그릇..큰 그릇..막사발..찻종지가
    있느니 애써 많이 담으려 하지 말고 자기가 가진 그릇만큼만 담아라는...

     

    아마 그릇으로 따지자면 P兄의 그릇됨이 제일 크고 그 다음이 人兄일 것이고
    아마도 내가 가장 작은 그릇일 겁니다.
    그릇의 크기는 결국은 용기가 아닐런지요. 자기자신을 결정할 수 있는 그러한 용기야
    말로 그 사람의 그릇크기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런지요.
    제가 가진 그릇의 크기는 찻종지만 해서 녹차우려 넣고 들여다 보면 조그만 얼굴의
    겨우 오분지일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내 등 뒤에 무었이 있는지도 보지 못하는 작은 그릇으로 세상을 살고 있으니 늘상
    번잡스럽고 혼란만 할 뿐 드러나는 게 없습니다.

     

    표현을 바꾸자면 兄에 비하면 나는 참으로 소심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그 소심함이 평생의 장애가 되어서 삶에 끄달려살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도
    그 소심함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소심함이 멈추고 싶을때도 멈추지 못하고 가고싶을 때 가지못하고 무언가 하고싶을
    때도 몇십번을 망설여서 결국 때를 놓치고 마는 옹렬함으로 내 삶을 치장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참 이상도 합니다.
    同年輩...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니고 같은 시기에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최루탄을 마시고 같이 눈따가워하고 같은 색깔의 소주를 마신 그런 인연이 제법
    깊은 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세상의 수많은 동년배들 중에서 학교..가정..사회..동네...이런 작은 테두리에서
    인연을 맺었던...그렇군요..知人...그 지인들 중에서 네사람이나 출가를 했군요.
    그 중에 한사람인 人兄은 다시 똥구덩이 속세로 돌아 왔지만 2~3년마다 만나보는 그는
    사는게 나와는 좀 다릅니다.
    연꽃같이 산다고나 할까요..그러니 그도 출가를 한거나 다름이 없을 겁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동기동창중에서 둘이나 그 길을 갔습니다.
    하나는 학교위 엄정골절이라 불리던 곳에서 양육되어져 졸업과 동시에 머리를 깍은
    여자애가 있었는데 스무살 초반에 비구니의 모습을 조금은 멀리서 마주쳤었지요.
    국민학교와 중학교까지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내가 고등학교 졸업후
    역맛살이 기어 서울로 가출을 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만났었지요.
    승복을 깔금하게 입은 승려의 모습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그 친구의 손에 이끌려 낙동강이 빤히 바라보이는 엄궁동의 암자...
    모친이 혼자의 힘으로 몇십년의 역사끝에 창건된 그 절..외동아들인 그 친구는
    모친을 위해 이 길을 가게되었노라 말하더군요.

     

    그리고 사회 초년생의 꿈많던 시절에 만난 P兄...

     

    P兄!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 온 초파일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하고 특별히 인연지어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절을 찾았습니다.
    이런 날이면 일부러 3개의 절을 찾기도 합니다.
    혹시나 인연이 또 다시 닿는다면 그곳에서 P兄을 볼수도 있을것 같아서 말입니다.
    올해는 아주 조그만한 암자들로만 골라서 다니기도 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와이프는 이왕이면 경치도 좋고 사람도 많이오고 구경거리도 많은
    큰 절로 가보자고 했습니다.
    그저 "오늘 같은 날은 사람들이 덜 오는 곳에 가서 등하나 달아줘야~~"라면서
    궁색하고 겸연쩍게 미소지었습니다.

     

    P兄!
    저는 이제 아침마다 거울앞에서 로션을 얼굴에 바르면서 오늘 저녁에는 염색을
    좀해야 겠네라고 합니다.
    이태전까지만 해도 귀밑머리가 하얗다고 했는데 이제는 머리의 상하좌우고저를
    불문하고 아무데나 하얘지고 있습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또 염색같은 것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맙니다.
    아직도 P兄이 산속 토굴에서 무었을 찾고 계신다면 거울보고 아침마다 시름에
    잠기실 필요는 없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래도 얼굴의 여기 저기에 잔주름 생기고 똥배도 좀은 나오고 비오려는 날
    여기 저기 쑤신다고 해주시면 같이 늙어가는 처지니 위안삼으렵니다.
    아직은 얼굴맞댈 인연을 닿지 않으니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전해주십시요.

     

    P兄!
    아마 달포는 넘었을 겁니다. 포항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안동과
    예천을 거쳐 문경의 김룡사에 잠깐 들렀었지요.
    是堪磨...이 세글자를 새긴 나무편액을 보고 한동안 멍했었읍니다.
    스무몇살때 처음으로 수계를 해주셨던 큰 스님이 내려 주신 話頭...
    "수만가지 공안이 다 필요 없는 기라..니는 이거 하나만 평생 풀어바라~" 하시던
    그 말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는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세상살이라는게 양파보다 더 자독한 겹겹입니다.
    양파는 까면 갈수록 속이 하얘져 가는데 세상의 일이란 까면 깔수록 살면 살수록
    제각각이라 종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아주 가끔씩은 운전하다가 뜬금없이 "이뭣고?...이뭣고?"하고 화두를
    잡기도 하는데 겨우 하루에 1~2분...길어도 하나..둘..셋..해서 백도 못셀겁니다.

     

    P兄!
    사람이 확실히 나이를 먹어면 생각이 많아지고 공연히 마음이 심란해 지는 듯
    한것도 같습니다.
    생각 없애는 공부...如夢幻泡影...세상 모든일 덧 없는 거품이라는 이 철리를
    아직 짐작도 못하는 게지요.

     

    P兄!
    올해도 나를 위한 연등..나의 가족을 위한 연등..그 목적으로만 연등을 달고
    나 아닌 남을 위한 것은 하나도 달지 못했습니다.
    낡은 찌꺼기..
    버려야 할 汚濁한 마음만 지전 몇 장에 묻혀서 복전함에 넣고 돌아 왔습니다.

     

    그저께 피었던 모란은 지고 그 앞에서 작약이 꽃을 피우고 있더이다.
    모란이 빠른 것입니까? 작약이 느린 것입니까?
    그 소식도 바람에 실어서 한번 슬쩍 보내주십시요... ~ 喝..

     

    '수취인 없는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K兄! 봉정암 다녀왔습니다.  (0) 2006.10.02
    인형! 껍데기 간수 잘하시길..  (0) 2006.03.01
    人兄! 바람이 붑니다.  (0) 2006.02.20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