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 제일의 전망, 양주 운길산 수종사여행기 2006. 8. 20. 22:53
동방 제일의 전망, 양주 운길산 수종사
지난 토요일에는 남쪽에서는 태풍 '우쿵'이 올라온다고 난리였는데 다행히 태풍의
크기가 자그마했던 탓인지 이쪽에는 가을날씨다.
시흥갯벌로 탐사를 겸해서 출사나 갈까 했더니 옆지기가 얼마전에 텔레비젼에
나온 양수리의 '두물머리'가 보고 싶다고 한다. 텔레비젼에 나온 두물머리의 경치는
좀 평면적이다. 두물머리의 경치를 제대로 조만하려면 역시 운길산 정상부에 위치한
수종사가 제격이다.
토요일의 양수리 가는 길은 그야말로 거북이 걸음이다. 아산에서 늦어도 두시간이면
가는 길을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차 두대가 교행이 불가능한 산길을 한참 올라가서 중턱쯤에서 한곁에 주차를 했다.
절기는 이미 가을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숲에는 아직 여름이 온전이 남아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한 신록이 있다.
딱다구리가 집을 짓느라 구멍을 팠다. 간간히 차들이 다니는 길가에 집을 지었으니
오늘처럼 번잡스럽고 사람들 왕래가 많은 날에는 차라리 어디론가 피하는게 상책일터..
그래도 자연에 젖어드니 귀한 딱다구리 둥지도 보는 행운을 얻었다.
한참을 꼬불거리며 가파르기까지 한 산길을 올라서 만난 일주문..
이제부터 사찰의 영역이므로 오로지 일심(一心)으로 부처님의 법만을 생각하라는
표상이다.
일주문을 지나 첫 구비에서 만난 미륵불...
미륵불은 미래, 즉 다가올 세상의 혼탁함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부처님이다.
지금은 도솔천에서 열심히 수행중이신..
미륵불은 신라와 고려..그리고 조선에 이르기까지 서민들이 가장 기대고 싶어한
부처님이다. 삶이 고달플수록 미래에 대한 희망..내세(來世)에 대한 바램이 크지는
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내 수종사의 절문에 해당하는 계단옆 석벽
그리고 나무아미타불...아미타부처님은 사람들의 죽음뒤에 오는 극락의 부처님이다.
살아서는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죽어서는 아미타불의 가피를 염원하는 것이 예전부터
우리 민족의 기저에 내려오는 전통이였다.
조선은 참으로 이중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억불숭유하는 선비들도 자신들의 아내를 시켜서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불전에 기도를
시키는 이중적 사고가 특히 많았다. 박물관등에서 조선시대의 장군들의 투구를 자세히
보면 만자(卍字)가 투각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할매는 무슨 일만 생기면 "나무아미타물 관세음보살~"을 연호하셨다.
어릴적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알듯 하다.
《동문선》 《필원잡기》등의 저자로 알려진 조선 전기의 유명한 문신이자 학자였던
서거정 [徐居正, 1420~1488] 이 어느날 지금의 양주에 있는 운길산 수종사(水鐘寺)에
올라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일명 두물머리의 풍광에 한눈에 들어오는 것에 반해
'동방의 절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극찬한바 있는 수종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1458년(세조 4)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여 왕위에 올라 안정을 이룬 세조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가, 이수두(二水頭: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피곤함에 겨워 깊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가
들려 잠을 깬 세조가 부근을 조사하게 하자, 뜻밖에도 바위굴이 있었고, 그 굴속에는
18나한(羅漢)이 있었는데, 굴속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와 같이
울려나왔다 하여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는 유래가 전해진다.그후 조선 후기에 고종이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요문화재로 보물 제259호인
수종사부도내유물(浮屠內遺物)이 있는데, 석조부도탑(石造浮屠塔)에서 발견된 청자유
개호(靑瓷有蓋壺)와, 그 안에 있던 금동제9층탑(金銅製九層塔) 및 은제도금6각감(銀製
鍍金六角龕) 등 3개의 일괄유물이 그것인데 우리나라 사찰 출토 보물들의 대부분과 같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세조가 수종사를 세우고 기념으로 심었다는 은행나무는 이제 540년의 연륜이 되었다.
수종사는 경치도 경치이지만 다인(茶人)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다산 정약용이
57세때 유배에서 풀려나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고향집인 양수리 부근으로 돌아오자
평소 그와 친분이 있던 다인들이 많이 모여들게 되었는데 근동에서 물맛이 좋고 경치가
좋은 수종사가 그들의 모임처가 되었다. 그들은 초의선사나 추사 김정희,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등 우리나라 차문화를 꽃 피운 인물들이였다.
정찬주씨의 '茶人기행' 중에서 수종사와 관련된 시 2편을 읽어 보자.
홍현주는 "望水鐘寺"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다만 종소리는 맑은 세상에 남아 있고
공교루 그림자 찬 강물에 떨어지네
행장 속에 산중 물건 아직 남아 있어
들고 온 작은 옹기항아리에 차 달여 마신다.
초의선사는 "水鐘寺懷古"에서 수종사의 추억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꿈에서 깼는데 누가 나서 산차(山茶)를 줄까
게을리 경전 쥔 채 눈곱(眼花)를 씻는다네
믿는 벗이 산 아래 살고 있어
인연을 쫓아 수종사까지 왔다네.
이런 차(茶)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수종사에서는 차실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운영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너무 늦게 찾아간 나그네는 차맛은 보지 못했다.
아쉽다. 다음을 기약할 따름이다.절입구에 있는 이 약수의 물맛은 참 좋았다. 차인들이 이곳을 특별히 물맛이 좋은
곳으로 추천할 만하다 싶다.
마침 물을 한바가지 먹는데 예쁜 새한마리가 쪼로옹~ 댄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한데 다른 사람이 물먹으러 가니 포로롱~
숲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갑자기 그 새가 나와 친한듯 기분이 새로와 진다.
비가 오락가락했다. 우산도 없이 올라온 탓으로 불안하다.
보통때같으면 비쯤이야 맞으면 그만이지~할터인데 최근에 DSRL 카메라를 구입해서
들고 다니는 터라 비가 오면 사람보다 카메라 걱정이 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은 늘 걱정거리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븐 마음으로 돌아 내려오다가 좀 높이 있는 전각을 한 컷 담는데 한 젊은 커플이
그지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서쪽 하늘을 보고 있다.
나도 돌아보니 아!!!!! 너무도 오랫만에 보는 무지개다.
좋은 경치에..이름모를 산새와의 교감..그리고 무지개까지...
다실(茶室)에서 차한잔 못마신 아쉬움을 100%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자연의 선물에
돌아오는 몇 시간을 내내 행복했다.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잠사 박물관을 다녀와서.. (0) 2006.08.21 경기도 시흥 갯골 생태공원 (0) 2006.08.21 명승 제3호, 완도군 정도리 구계등 (0) 2006.08.11 장보고의 청해진, 장도 유적지 (0) 2006.08.11 드라마 해신의 신라방(新羅坊) 촬영장 (0) 200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