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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절은 속임없이...
    이런저런 이야기 2006. 8. 12. 12:09

     

    계절은 속임없이...

     

     

    계절은 사람만큼 간사하지를 않아서 묵묵히 세월의 초침을 돌린다.

    입추(入秋)라는 인간의 기준으로 정해진 절기를 넘긴지 며칠이고

    말복(末伏)이라는 더위의 기준도 이미 지났건만 여전히 햇살은 따갑고

    5분만 태양아래 서있어도 정수리가 익는 것 같다.

     

    누구나 아이구~ 지겨운 여름을 외친다.

    이러다 불현듯 아침 저녁으로 추움을 느낄때나 방 한구석에서 귀뚜리가

    울어대야 사람들은 마침내 가을이 온 줄 안다.

     

    그러면 사람들은 금방 가을에 빠져서 또 허우댈것이 분명하다.

     

    휴지에 잉크방울이 조용히 스며들듯 이 성하의 계절에도 가을은 오고있고

    또 이미 온것도 있다.

     

    코스모스도 피었고 빨간 고추잠자리도 몇 마리 보인다.

     

    계절이라는 것이 오직 인간들의 기준에 의해서 만들어진 구획선 같은

    것이지만 자연은 그런 구획선을 인정한적도 없다. 다만 인간들의 시각과

    후각, 그리고 촉각이 만드는 기준에 따라 자연을 여기 나누고 저기 쪼개서

    날짜도 만들고 한해도 만들고 계절도 만든 것이다.

     

    어제는 퇴근을 하면서 모처럼 만에 들길로 차를 몰았다.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는 공장들과 콘크리트 구조물들로 부터 해방되는

    이길은 출근시간에는 엄두를 내기가 힘들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늘 출근시간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는 앞에서 빌빌대는 운전자를 만나도 짜증부터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퇴근시간은 비교적 여유가 있으므로 큰 길을 피해서 조금만 수고를

    할라치면 논들 사이로 난 농로를 통해서 자연을 즐길수 있다.

     

    어쩌면 이 길은 기계소리 둔탁한 공장과 불빛 휘항한 도회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연결하기도 하고 단절하기도 하는 완충지대 같은 곳이다.

     

    완충지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지 모를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들 삶에도 완충지대는 있는 것 아닐까?

    부부간에는 아이들이..친구간에는 공유하는 추억이..낯모르는 사람끼리도

    우리동네,우리나라같은 관념이...그런 것들이 완충지대가 아닐까?

     

    계절간에도 "늦"과 "이른"이 그 완충의 역활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늦 여름과 이른 가을은 여름을 보내는 아쉬움을 조금 희석해 줄것이고

    다가올 가을을 미리 예감하면서 가을의 단어를 모아보게 할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즈음 들판에는 가을과 여름의 구획이 어느 정도 이루어 지기는 하다.

    이르기는 하지만 들판에 벼가 익어가는 것을 본다는 것은 역시 가을을 예감하는

    것이어서 논둑하나로 가을과 여름을 느끼기도 한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여물은 벼를 보는 기분은 기쁨보다 착잠함이 앞선다.

    벌써 또 한 계절이 가버리는 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이제는 가을을 이야기하고

    또 며칠 있으면 겨울을 예감하게 될것이다.

    그러면 나도 또 한살이라는 나이테를 내 삶에 이어다 붙이게 되리라.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그다지 흥겨워 지지 않게 되었다.

    한때는 술집에서 처음보는 사람에게 기죽기 싫어서 한두살쯤 얻어서 허풍을

    치기도 했는데 이제는 한두살쯤 덜어서 허풍을 치고싶은 나이가 된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등을 떠밀려 이제는 내가 그토록 욕했던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지금...내가 했던 그 욕지꺼리를 등뒤로 들어야 하게 되었다.

     

    주름살에 좋다는 크림을 발라도 즐거운 마음은 동안(童顔)을 만든다고 해서

    즐거운 마음을 가질려고 웃음을 지어도 역시 눈가의 주름은 자꾸 늘어간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계절의 시계는 오늘도 여전히 째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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