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댓닢바람 그리운 기림사..
    여행기 2006. 6. 21. 22:31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옮기는 글


    댓닢바람 그리운 기림사.. 
    2004-12-01 오후 11:35:49

     


    오늘의 여행지는 기림사이다.
    기림사는 늘 그리운 바람같은 곳이다. 그리운 바람이 있는 곳이다.
    함월산 계곡을 타고 오르는 바람들이 댓닢에 부딪치면서 위로 절마당에다 뱉어내는
    소리들이 절절하게 사람의 애간장을 태운다.
    기림사는 그런 바람의 기억이 있는 곳이다.


    포항에서 귀로에 올라야 하는 날인데 하필이면 토요일이다.
    토요일 정오쯤이면 고속도로도 서서히 막혀갈 시간이므로 차라리 한 두시간 정도는
    피해서 가는것이 나을듯 싶다.
    그래서 택한 곳이 경주 기림사인데 지금은 포항에서 기림사로 통하는 신작로가 나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승원 중에서 첫 손에 꼽히는 것이
    기원정사와 죽림 정사이다.
    특히 기원정사는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23번의 하안거를 보내신 곳이다.
    그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祇林)이라 하니 경주 함월산 기림사는 그런 연유에서 붙인
    이름이다.

     

     

    사실 기림사는 해방후에도 한참동안이나 경주 불국사의 본사였다. 불국사가 기림사의
    말사였다는 이야기 이다. 절에서 본사와 말사의 차이는 크다.
    그러던것이 박정희 전대통령에 의해서 역전이 되어 지금은 불국사의 말사가 되었다.

     

     

    기림사는 광유성인(光有聖人)이 창건(創建)하여 절 이름을 임정사(林井寺)라 하였다.
    광유성인은 인도 스님으로 우리나라에 불교를 최초로 전한 스님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관련된 설화는 세종대왕이 지었다는 「월인천강지곡」의 내용과 같다.

     

    먼 옛날 범마라국 임정사에 오십 년간 수도하면서 천안통과 숙명통 그리고 타심통을
    얻은 도인 광유성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전생이야기를 했으니


    "내가 전생의 부처님의 제자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에, 파사익 왕의 세 시녀는 늘
    꿀물과 우유로 부처님과 제자 들을 공양 올렸다.
    제자들 중에는 인물이 출중한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시녀들은 부처님 다음으로 공양
    하다가 그만 공경이 사랑으로 변해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다.
    스님은 여인들의 유혹을 제도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산 속으로 들어 가 버리셨다.
    그러나 스님은 아름답고 상냥한 세 여인을 잊지 못해 번민하다가 결국 도를 이루지
    못한 채 입적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 그 스님의 도반으로서 먼저 도를 이루는 사람이 제도키로 약속을 했었다.
    내 이제 금생에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도반인 그 스님과 세 시녀를 제도하려
    하니 나와 숙세로부터 인연이 있는 이들을 누가 이곳으로 안내하겠느냐?"


    그때 승열 스님이 말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스승이시여!"
    "오 장하구나, 너는 아라한과를 얻었으니 능히 할 수 있으리라.
    그 스님은 금생의'수다라'라는 대국의 왕이고 왕후와 후궁은 전생의 시녀이니라."
    "그럼 한 명의 시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곧 왕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여기로 올 것이니라.
    수다라 왕국은 아직도 불법이전해지지 않았으므로 세명을 한번에 모셔오기 어려울
    테니 , 먼저 후궁인 월해부인을 인도토록 하여라"


    승열 스님이 수다라국에 도착했을 때 ,왕은 마침 500궁녀를 데리고 강가를 거닐다가
    숲속에서 잠이 들었다.
    산책을 즐기던 궁녀들은 좌선에 든 스님을 발견하고는 이상한 모습에 의아한 눈길을
    주고받다가 가까이 다가와서 물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
    "나는 범마라국 임정사에서 온 승려입니다."
    스님은 궁녀에게 스님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불법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었다.


    이때 잠에서 깨어 이를 목격한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소리쳤다.
    "너는 누군데 나의 궁녀를 꼬이느냐? "
    왕은 승렬 스님의 목에 칼을 대고는 인생의 참 진리가 무언지 알려주겠다며 불개미
    집을 헐어서 스님의 몸에 풀어놓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불개미는 스님의 몸을 물지 않고 모두 흩어져버렸다.
    이것을 본 왕은 크게 놀라면서 예사로운 분이 아닌 줄 알고 스님을 궁중으로 정중히
    모셨다.


    승열 스님은 1년간 궁중에 살면서 왕과 왕비 그리고 후궁들을 교화하였으며 수다라
    왕국의 최초의 절 범승사를 세웠다.
    그리고는 며칠 후 승열 스님은 왕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임정사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떠날 차비를 하면서 월해부인을 모시러 온 뜻을 밝혔다.
    왕은 보내기 아쉬웠으나 월해부인이 선뜻 나서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후 월해부인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물긷고 차를 다리며 열심히 정진하였다.
    어느 날 광유스님은 승열 비구에게 다시 수다라국에 가서 왕과 왕비를 모셔오도록했다.
    승열 스님이 수다라국에 도착하니 , 왕과 왕비는 물론 지난번에 귀의한 십여명의 제자와
    신도 및 백성들까지 영접하였다.
    "월해부인은 대왕이 오셔서 함께 공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이 도착하기도
    전에 도를 얻고 사바의 인연을 마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기가 막힌 듯 슬피 탄식했다.
    "오, 참으로 세상은 허망하군요. 대왕이시여! 이 세상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선지식이시여, 저를 깨우쳐 주소서!"
    "그것은 일체를 소유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자신을 아는 일이지요."
    승열스님은 자상한 설법과 함께 왕의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은 참회하면서 왕비인
    원앙부인과 함께 광유성인에게 가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왕위를 태자에게 물려 준 뒤
    임정사로 향해 길을 떠났다.


    만삭의 몸으로 길을 떠난 원앙부인은 중도에서 지칠대로 지쳐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부인 힘을 내구려. 나와 함께 도를 이루자고 하지 않았소."
    "대왕이시여! 저는 전생에 숙업인 듯 하옵니다. 저를 여기서 종으로 팔아 그 대가를 임정사
    부처님께 올려 다음 생에 다시 공부하도록 빌어주십시오. 저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죽림국의 한 부자에게 만삭이 된 부인을 팔았다.
    "대왕이시여! 아기를 나으면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을까요?"
    "아들이거든 안락국이라 하고 딸을 나으면 아량이라 하여주오."
    가슴이 터질 듯 아프고 슬픈 마음으로 부인과 작별한 왕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차 시봉을 하면서 세속 일을 잊고 정진에 몰두하였다.


    그렇게 7년이 되던 어느 날, 임정사로 한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는 원앙부인이 낳은 태자 안락국이었으니 바로 전생의 한 시녀이기도 하다.
    반갑게 상봉한 부자는 공부하며 함께 지냈다.
    수다라 왕이 도를 얻어 열반에 들자 광유스님이 안락국에게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락국아! 너는 인연 있는 곳을 찿아 가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거라.
    그 인연지는 여기서 이백오십만리 떨어진 해동국으로 그곳에는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계신 곳이다. 가서는 거북이가 물 마시는 형상을 하고 있는 산을 찾거라.
    동해바다의 기운을 들여 마시는 용이 사는 연못이 있고, 탑의 형상을 갖춘 남쪽 돌산에는
    '옥정'이라는 우물이 있으니 그 물을 먹으면서 수도하거라. 북쪽에는 설산을 닮은 돌 빛이
    흰 산이 있으니 그 산 굴 속에 부처님을 조성하여 모시거라."


    그리하여 해동 계림국에 도착한 안락국은 명당을 찾아 조그만 암자를 세워, 이름을 칭하되
    '임정사'라 하였다.
    절이 창건된지 백오십년 후 신라의 '원효대사'가 절을 확장하고 ,이름을 부처님 당시의
    최초의 절인 '기원정사'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기림사'라 개명하였다고 한다.

     

     

     

    본디 기림사에는 5군데서 약수가 솟아나왔고 물맛이 다 달랐다고 하는데 지금은 세군데
    정도만 남고 한곳은 말라버렸고 한곳은 아직 흔적을 못찾고 있다고 한다.


    이 우물도 국민학교때 수학여행길에 들렀을때는 물이 송송 솟아났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아예 말라버렸다.

     

     

     

    아직도 변함없이 콸콸거리며 나오는 사천왕문 앞에 있는 약수...
    洗心...
    맑은 약수 한잔에 마음을 씻어 본다.

     

     

     

     


    대적광전은 보물 제 833호로 기림사의 본전으로 신라 선덕여왕때 처음 지어졌으며
    그 뒤 8차례나 다시 지어졌다.
    1997년 해체공사 때 종도리에서 4종의 묵서가 발견되었다.


    이 대적광전은 문살이 아름답다. 오래전에 왔을때에는 단청으로 화려해서 보기는
    놓았는데 지금은 단청이 다 벗겨지고 나무의 본래 빛깔을 보이고 있다.

     

     

    대적광전의 내부는 흙으로 만든 소조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가운데 비로자나불 왼쪽에 노사나불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을 모셔 삼신불(三身佛)을
    이루는데, 흙으로 빚은 이 세 불상은 손의 위치와 자세만 다를 뿐 표정과 모양이 거의
    같고 옷 주름까지도 비슷하다.

     

     

    진남루는 남방을 진압한다는 뜻으로 여기서 남방은 일본을 가리킨다.
    임진왜란 당시 기림사는 전략요충지로서 경주지역 의병과 승병 활동의 중심
    사원이었으며, 이 지역 다른 사원과 달리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경주부 관아에 보관되어 있던 [영부안선생]이나 [호장안]등 수많은 문헌들은
    당시 호장 최락에 의해 기림사로 옮겨져 잘 보관 된 결과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됐다.
    이때 이 진남루는 승군의 지휘소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건물 형태는 익공계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상부 구조 수법이 돋보이는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기림사 홈페이지에서 퍼옴..


    보물 제415호인 건칠불이다. 처음에 이 불상을 보고 받은 감동은 이루 말로 하지
    못할것 같다.
    보살상의 하대상면(下臺上面)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의해 조선 연산군
    14년(1501)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보기 드문 건칠불(乾漆佛)이다.


    건칠불은 옻칠을 입힌 종이 부처님이다.
    보살상의 머리에는 상투를 올리고 그 위에 따로 만들어진 2단 구조의 보관을
    썼는데, 관의 표면에는 아름다운 당초문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둥글고 풍만한얼굴에다 눈, 코, 입등이 단아하게 묘사되어 보살의 특징있는 얼굴을
    만들어 준다. 귀는 짧고 목에는 삼도가 없다. 자세는 왼손을 대좌에 짚고, 바른 다리는
    대좌 아래로 내린 반가좌이다. 어깨는 좁지만 가슴은 당당한 편이며 ,천의는 양어깨를
    내려와 대좌 아래까지 흐르고 상의자락 역시 다리에서 그냥 아래로 내려온다.


    이번 걸음에서는 마침 박물관을 수리하느라고 보지를 못했다.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르겠다. 12월말까지 수리를 한다고 하니 그 이후인 내년에나
    다시금 볼수 있을듯 하다

     

     

    천수천안을 모신 관음전이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은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의 보살인데
    상황에 따라 또는 마음먹기에 따라 구원을 행한다는 뜻이다.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약사전이다.
    약사전에 모신 약사불은 인간이 가진 각종 병고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보살이다.

     

     


    명부전과 기림사 3층 석탑...
    이곳 기림사 명부전은 우리나라 3대 명부전의 하나이다.
    그래서 나이가 많으신 신도들의 순례처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염라대왕...태산대왕등 사람의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신장을 모신곳이다.

     

     


    기림사 뒷편에는 깊은 계곡이다.
    함월산을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던 바람들이 이쯔음에 이르러서 기림사 뒤 언덕의
    댓닢들을 우수수~~ 흔들어서 바람난 승냥이처럼 날뛰게 만든다.


    이 바람소리를 들으면 심장의 제일 밑바닥에서 손끝의 모세혈관까지 순식간에
    혈류가 증가한다.
    나는 늘 이 바람소리를 그리워 해왔다.

     

     

    그냥 스쳐버리기엔 아까운 풍경 #1


               이름도 종류도 모르지만 보라빛 색깔이 너무 이쁜 야생열매....

     

     

    그냥 스쳐버리기엔 아까운 풍경 #2


                  파란 하늘과 아직은 가을이 아쉬운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

     

     

    그냥 스쳐버리기엔 아까운 풍경 #3


              산수유...빨간 산수유는 슬프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하늘이 자꾸 깊어질수록
              어디론가 돌아가야 할
              빨간 산수유는 슬프다.

     

     

    그냥 스쳐버리기엔 아까운 풍경 #4


                절에 매달린 풍경은 두가지의 용도가 있다.
                세상을 잠들게 하는 것과 세상을 깨우는 일...
                가끔씩 세상의 세파에 지쳐갈때는
                뎅그렁~ 풍경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뎅그렁~ 풍경소리를 들으며 잠깨고 싶다.

     

     

    그냥 스쳐버리기엔 아까운 풍경 #5


               지금은 대숲을 흔들던 바람도 잠깐 숨을 죽인다.
                 인간의 세월보다도 더 많은 세월을 스쳐온 이 부도는
                  지금...
                  2004년 몇월 몇일이라는 세속적인 지금...
                  지금 默言修行중이다.

     


    그리고 하나 더...기림사는 여기에 있다!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산 도비산 산행기  (0) 2006.06.21
    남당리 대하구이...  (0) 2006.06.21
    동서를 가로질러 34번 국도따라..  (0) 2006.06.21
    여행의 기준점..도로원표  (0) 2006.06.21
    대호방조제에서...  (0) 2006.06.2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