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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의 숨어있는 고찰..용문사..
    여행기 2006. 6. 13. 08:55


    남해의 숨어있는 고찰..용문사..

     

     

    업무중에 중간 중간에 짜투리시간을 내야 하는데 어떤때는 먹는 일도 시간을 요하는
    일인지라 그것마저도 생략을 해야 할때도 있다.
    거제도에서의 출장 마지막날도 그랬다.
    묘하게도 출장이 거제도와 광양으로 정해졌는데 거제에서 너무 늦게 끝이나다보니
    혼자서 야간 운전은 사실 좀 괴롭다.
    그래서 택한 길이 변화가 많은 국도를 택하여 고성-삼천포-창선대교-창선면-남해대교를
    택하고 창선읍내에 왔을 즈음에는 제법 밤이 이슥해진 시간이였다.


    할수없이 읍내에 여관에 찾아들어 고단한 하루를 녹였다.
    시설은 낡았지만 창문만 열면 창선교와 죽방렴이 빤히보이는 위치좋은 방이였다.
    예까지 왔으니 아침을 걸러고 부지런히 설치면 다랭이 마을을 보고 갈수도 있겠다 싶어서
    핸드폰의 알람을 5시로 맞추어 두었다.


    다음날 5시...
    부지런히 울리는 알람에 따라 본능적으로 일어나서 머리부터 찬물에 감았다.
    정수리로부터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타고 전기처럼 짜르하게 흐른다.
    옷입고 소지품을 챙겨서 차에다 두고 걸어서 5분거리의 창선교를 한번 건너갔다가 왔다.
    그리고 출발해서 다랭이 마을로 들어갔는데 처음 생각과는 달리 아직은 벼를 심을때가
    아니라서 논마다 마늘아니면 자운영의 밭이 되어있다.
    두배미 정도에 물이 차 있었는데 딱 보기좋은 때는 한 두어주쯤 뒤가 될것 같다.
    그래서 전망좋은 곳에서 둘러보고 남해대교로 길을 잡고 움직였다.

     

     

    안개도 조금...햇살도 조금....
    시골길을 달려서 가는데 저쯤에 용문사라는 간판이 나온다.
    밤색의 이정표는 어쨋던 역사가 있는 문화제 축에 드는 곳이다.
    남해의 절하면 상주의 보리암밖에 생각할수 없었던 나는 다랭이 마을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벌어놓았던 1시간을 여기서 쓰기로 한다.

     

     


    여행중에 만나는 이런길은 왠지 사람을 들뜨게 한다.
    산을 굽이돌아 들어가는 저 뒷편의 풍경을 상상하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빨개진다.
    아마도 이것이 여행중독증후군은 아닐런지......
    용문사라는 간판을 보고 무작정 핸들을 꺽어서 한참 들어오니 마침내 아스팔트의
    비릿함은 사라지고 또 다름으로 가는 길만 보인다.

     

     

     

    용문사는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에 있다.
    호구산(虎丘山)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창건연대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신라의
    원효대사가 금산(錦山)에 세웠다는 보광사가 뒤에 이곳으로 이전을 하여 지금의
    용문사가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사찰이 불타버리고 나서 여러차례 중건하였다고 한다.
    조선 숙종(1675~1720 재위)때에는 임진왜란 당시 이곳의 승병들이 활약한 공으로
    인해 수국사(守國寺)로 지정되어 왕실의 보호를 받았다고 한다.


    용문사의 대웅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인데 정면 3칸,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 건물이다.
    그러나 다포계 팔작건물치고는 지붕이 크고 웅장하다.
    특히 대들보에 돌출된 용의 모습은 그 자연스러움이 압권이라고 소문이 났다.
    아마도 조선시대 나라의 보호를 특별히 받던 곳이라서 중건에 있어서도
    국가의 재정보조가 많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대웅전 아래에 부끄럽게 피어있는 수국(水菊) 한 무더기...
    봄은 겨울을 저버리고 이곳에 와서 수국의 그림자에 숨어있다.
    건들거리는 여름의 프로포즈를 기대하며....

     

     


    아담한 대웅전의 풍경...
    삼배올리고 고두례로 최상의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잠깐 앉아서 내가 놓아야할 마음을 찾아보지만 늘 그렇듯이 기인 한숨만
    남긴채 물러나온다.

     

     


    우리가 밥을 먹고 살면서도 밥의 중요성을 못느끼는 것처럼
    번뇌속에 살면서도 번뇌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어리석은 중생의 참 모습인지도...
    저 방석의 주인공은 한알 한알 굴리는 염주마다 얼마나 많은 번뇌를 묻혀서
    세상으로 내보냈을까....

     

     

    경상남도 문화제자료 제 151호인 명부전은 조선현종(서기 1662년)에
    건립된 정면3칸, 측면2칸의 겹처마 맛배지붕의 건물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8호인 용문사 석불은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용문사를
    재건할때 경내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한다.
    본래는 화강암 석재로 앉아있는 보살을 조각한 것이였는데 나중에 흰색의 회를
    덧칠하여 본래의 모습이 손상이 되었다.


    이 불상은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다 상체는 어깨가 좁고 왜소해 균형을 읽고있고
    상체에비해 하체를 너무 간략하게 표현한 점등으로 고려시대불상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조각의 수법으로는 고려중기의 작품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문화재의 학문적 고찰에 문외한인 나에게 이런 설명이 붙은 안내판은 그야말로
    우이독경(牛耳獨經)이다. 그래도 읽는 사람을 위해 옮기는 것쯤은 해야지..

     

     


    나는 절집에 갈때는 걸어서 계곡을 오르기를 고집한다.
    우리나라의 절들은 빼어난 경치의 계곡을 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휑~ 올라가면 시간도 절약되고 좋을지는 모르지만 정작 보아야 알것은
    못보는 경우가 더 많기때문이다.


    또 하나 눈여겨 보는 것이 뒤란이다.
    화려하고 정돈된 앞마당보다 뒷마당이 정갈한 경우가 많다.
    뒷마당은 참선하던 스님들이 단골로 산책을 하는 곳이 많기때문에 고느적하고
    예쁜 정원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용문사의 뒷마당이다.
    절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소각하는 뒷마당이라고 보고 싶지 않은 멋진 곳....

     

     

     


    불교에 유교에 좇겨서 산속으로 들어간 이후에 대표적인 양반들의 절에 대한 박해의
    수단이 종이의 징발이였다.
    일부에서는 말 여물통으로 알고있는 저런 나무 함지가 왠만큼 큰절에는 하나씩 있는데
    관에서 절에다 종이를 바칠것을 요구하였고 절에서 쓰는 종이를 자체 조달하기 위해서
    닥나무를 불리던 것이다.
    여기도 이것이 있다는 것은 이전에 제법 많은 대중들이 기거를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용문사는 좋은 계곡과 산책로를 가진 곳이다.
    절앞의 나무의 울창함으로 뒤덮힌 산책로인데 왼쪽에는 제법 튼실한 계곡물의
    소리가 콸~콸~ 들리는 멋진 곳이다.

     

     


    용문사의 부도전....
    부도는 스님들이 열반에 들면 화장을 해서 유골을 모셔두는 것이다.
    우리 세속으로치면 납골당이 될터인데 이 부도도 시대별 유행이 있는지라
    역사연구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남해여행....
    보리암..상주해수욕장...창선대교..충렬사..이충무공전몰유허..남해대교..창선교..죽방렴...
    다랭이 마을...등을 거쳐서 이제 용문사까지 대충 들러보았다.
    나그네가 바쁘고 잰걸음으로 들러본 것이라 수박겉핥기는 아니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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