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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매..보고싶다..
    이런저런 이야기 2006. 6. 10. 23:14


    할매..보고싶다..

     


     

    세월을 쉬임없이 흐른다.
    다만 변해가는 것은 사람들 뿐이다.
    올해도 작년 추석때에 없는 연립주택이 길가에 생겨서
    구포왜성 아래 솟은 미류나무의 까치집이 사라졌다.


    작년 설에 발자국을 찍었던 골목길에는
    세멘트가 사라지고 까만 아스팔트가 새로 입혀졌다.
    여름이면 까만 고무가루가 묻어나 발꼬락을 간지럽히던
    깜장고무신같은 아스팔트가 새로 깔렸다.


    올해도 아버지가 심어놓은 나지막한 동백나무엔
    두어송이 빨간 동백이 꽃을 피워내고 있다.
    작년에 없던 뒷산의 춘란이 동백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겨진것도 올해의 새로운 풍경이다.


    새로운 한해의 시작
    어쩌면 사람들에게만 새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나뭇가지 끝에 새로움이 움터는 것은
    그냥 그저그런 세월의 나이테일뿐이다.


    사람들은 세월의 칠판위에
    관념의 백묵으로 낙서하기를 즐긴다.
    그냥 죽~죽~ 금을 내리 긋고는 그은 금마다
    숫자를 매기고 이것이 세월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인생인줄 안다.


    아버지는 왜 화단에 동백을 심었을까?
    아버지는 할매가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할매는 아침마다
    감나무에 자리 튼 까치가 깍~깍~ 울면
    쪽문을 열고 면경을 앞에두고 동백기름으로 짜르르하게
    머리를 만지셨다.


    우리 엄마는 왁자하고 걸판진 장날이 되면
    닭들이 빨가벗고 누운 닭전 옆 난전에서
    100리도 넘는 먼곳에서 기차를 타고 장에 온
    삼랑진댁 아지매한테서 30원짜리
    두홉들이 소줏병에 담긴 동백기름을 샀다.


    "이거는 머할라고 샀노~"
    말은 이렇게 해도 우리 할매는 조심스럽게 갈무리를 했다.


    열여섯에 가마타고 시집와서 아들 둘 낳고
    현태탄을 건너온 할아버지의 유골상자...
    젊어서 과숫댁이 된 우리 할매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제가를 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평생동안 아버지 앞에서 숨도 크게 못쉬던 할매와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하얀 옥양목 옷을 입고 한 많은 세상을 버리시던 날
    아버지는 마침내 몇십년 참았던 섦고 섧은 울음을
    피토하듯 꺼억~ 꺼억~ 우셨다.
    반쯤 남은 동백기름보다 더 진한 울음을 그렇게 우셨다.


    세월을 쉬임없이 흐르는 가 보다.
    오로지 변하는 것은 사람들과 사람들의 흔적들 뿐
    그저 우리가 세상에 남기는 것이란
    현고학생부군신위 이거나 아니면 현비유인무슨씨신위로
    남는 몇글자일뿐.....


    올해는 유난히 동백기름 곱게 바른 할매가 그립다.


    1000원짜리 붓펜으로 지방을 쓰고 있는데 아이들이
    묻는다
    "큰 아빠! 그거 뭐예요?"
    "할배..할매 이름 아이가.."
    "할아버지..할머니 계시잔아요?"
    "너그 할배..할매..말고 우리 할매..큰 아빠..너그 아빠 할매..."
    "무슨 이름이 그렇게 길어요?"


    우리 할배..할매가 얻은 이 새로운 이름은 우리 아버지..엄마도
    얻을 것이고 결국에는 나 역시 이 이름을 얻을 것이다.
    어쩌면 설날과 추석..그리고 기제사가 필요한 절실한 이유가
    현고학생부군신위...현비유인XXX씨신위라는 길고 긴 이름에
    익숙해지기 위한 연습은 아닌지 모르겠다.


    누구나 얻게 될 이 이름이 낯설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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