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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 전통의 공세리 성당.
    아산소식 2006. 6. 7. 00:00


    100년 전통의 공세리 성당. 
    2004-05-06 오전 9:33:33

     


    몇년전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기전 아산만괴 삽교천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교통정체구간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특히나 삽교호는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공식행사였던 점에서 격동의 현대사를
    장식하고 있기도 하다.
    이 아산호와 삽교호가 없었을때 서해의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깊숙이 들어와서 갯마을을
    만들고 전라도에서 육지에 바짝붙어서 형성된 해로를 따라 올라온 배들이 쉬기에 좋아
    해상교통의 요지로 손꼽혔던 곳이 아산시 인주면(仁州面) 공세리(貢稅里)이다.


    공세리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인 아산·서산·한산·청주·옥천·회인 등 40개
    읍에서 거둬들인 조세미(租稅米)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에서 비롯됐다.


    또 이곳은 여러가지 면에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공세리 바로 옆동네의 분지가 밀두리라고 하는데 백제의 비류가 처음으로 터를 잡은곳인
    미추흘의 음역이 밀두라는 것이다.
    지금 다시금 조명되는 백제는 중국의 동쪽 해안가에서 배를 타고 건너와서 비류는 이곳에
    온조는 한강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동학혁명이 한창이던 때에 감당할 힘이 없었던 조정에서 중국에 구원을 요청
    하게 되는데 그 구원군이 처음으로 상륙한곳도 이곳이다.


    최초에는 창고가 없이 물길을 이용해 이 곶창에 보관하던 세곡미가 서울로 운반됐는데
    중종 18년(1523)에 비로소 창고 80칸을 건축했다.


    이 곳에는 공주목 이하 임천, 한산, 전의, 정산, 은진, 회덕, 진잠, 연산 이산(노성), 부여,
    석성, 연기 등 12군현의 세미(稅米)와 홍주목(洪州牧) 이하 서천, 서산, 태안, 면천, 온양,
    평택, 홍산, 덕산, 청양, 대흥, 비인, 남포, 결성, 보령, 아산, 신창, 예산, 해미, 당진 등
    19군현의 세미를, 그 외 청주목(淸州牧) 이하 천안, 옥천, 문의, 직산, 회인 등 6개 현의
    공세미(貢稅米) 등 39개 목·군·현(牧·郡·縣)의 것을 납고시키고 다시 경사(京師)로 수로
    500리 길을 선박으로 조운했으며 해운판관을 두었다.


    현재 해운판관비로 서 있는 것은 6개인데 비 전면은 '삼도해운판관비'라고 씌어 있다.


    지금은 곶창의 흔적은 없어지고 곶창을 에워싸면서 축조됐던 석축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현재 석축의 모습을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곳은 남벽으로 34번 국도와 연접해 있는 지역이다.


    이 곳에서 보면 성벽은 두께 30∼50㎝, 너비 80∼120㎝ 정도 되는 매우 큰 자연석을 이용해
    불규칙하게 허튼층 쌓기로 축석하고 있다.


    곶창지의 내외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어 이러한 축석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은
    남벽쪽의 불과 10m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런대로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성내에서는 곳곳에서 와편과 토기편이 발견됐는데 이것들은 역시 모두 조선시대 유물이다.


    이 지역에 사는 반디불과 친한 오정근(DS3BZE) 오엠의 말을 빌리면 오래전에 성벽에 인접
    하여 살고있던 주민이 집을 넓히려고 하룻밤새에 다 헐어버렸다고 한다.
    아침에 동네가 발칵 뒤집어지고 관에서 나오고 하니 주인이 다시금 샇았는데 그 과정에서
    석재는 뒤죽박죽이 되고하여 지금은 제대로 짝이 맞지않게 쌓여져 있다.


    이 공세곶창(貢稅串倉)은 1523년(중종 18년)에 개설됐다가 영조 때 폐지됨으로써 80칸
    짜리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성당이 들어섰다.

     

     

     

    공세리 성당들어가는 입구이다.
    점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진입로를 말끔하게 정리를 해두었다.

     

     

    인주면 공세리성당은 1894년 천주교 선교사들이 처음 상륙해 선교를 시작한 첫
    선교지임을 기념하기 위해 동네 한가운데 가정집을 성당으로 개조한 것으로 전한다.
    몇년뒤에 공세곶창을 매입해서 건물들을 헐고 성당을 신축하였으나 예로부터 곶창의
    일꾼을 위해 그늘로 심어놓은 나무들은 그대로 두었던 탓에 지금은 오히려 많은
    득을 보고있다.

     

     

    아산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을 단으로 처리해 다양한 외부공간이 조성돼 있는
    공세리성당은 1895년 성일륜(애미리오) 신부에 의해 지어졌다.


    현재의 본당 건물은 초대 주임을 지냈던 드비즈 신부가 1920년부터 짓기 시작해 1922년
    10월에 완공한 건물로 개화기에 서양식 건물로는 처음 도입된 고딕과 비잔틴 양식을
    절충한 건물이다.

     

     

    건물 외양이 크고 화려해 건축 당시 아산 지방의 명물로 멀리서까지 많은 구경꾼이 몰렸던
    현재의 성당 건물은 드비즈 신부가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건축 기술자들을 불러 지휘·
    감독하면서 지었다고 한다.


    특히 사제관은 지붕을 기와로 처리함으로써 전통적인 건축에서 근대 건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성당의 서측에 위치한 사제관은 2층 벽돌조 건물로 정면에 팔자(八字) 계단으로 2층에
    진입하며, 계단 아래에 1층 입구를 설치했다.


    공세리성당은 충남 최초의 본당으로 여기에서 공주본당(1897), 안성(1901), 온양(1948),
    둔포 본당(1976)이 분할됐다.

     

     

    성당과 사제관은 1998년 7월 충청남도 기념물 144호로 지정됐다.
    또 경내에는 130평 규모의 본당과 사제관, 회합실 등이 있으며 수백년된 느티나무와 각종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어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성당 구내에는 이 지역 출신이며 1867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박의서·원서·익서 삼형제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이후 이 지역에서는 박해를 통해 수많은 순교자가 탄생했다.

     

     

     


    건축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해 온 성당 옆에는 1680년경 심어진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높이 31m에 둘레 5.5m 규모의 이 느티나무는 공세리본당의 오랜 신앙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해 주고 있다.


    그 나무밑을 걸어오고 있는 여인이 무소유다...
    나무 크기를 짐작이나 하시라고 반디불이 의도적으로 설정한 샷이다..

     

     


    동굴처럼 생긴 건물이 있어서 가보니 성체배합실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어렴풋이나마 그 용도를 알수 있게 해주는 건물...

     

     


    여기가 곶창지였음을 알려주고 있는 비석...

     

     


    입구에서 만난 성모마리아 상...
    왠지 경건해지는 마음이 생긴다.
    사실 반디불과 무소유 둘다 불교신자라서 성당을 와볼 기회가 없었다.
    어릴쩍에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는 두어번 가본적이 있는데 사찰의 조용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런데 이곳 성당은 어찌보면 사찰의 조용한 분위기가 닮아있다. 나만의 생각일까..

     

     

     

     


    내부가 궁금해서 무릅쓰고 들어가본다.
    왠지 단아하고 엄숙한 분위기이면서도 아늑하다.
    사실 카톨릭하면 생각나는게 고백실(영화에서 많이 나오는...)이 였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찾지를 못했다는...


    무소유는 지폐 몇장을 꺼내서 헌금함에 넣었다.
    그러고보면 종교는 서로가 통하는것 같다.


    모두가 인간사의 일이니 아마도 공통분모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종교적인 부분으로 인해서 성당은 참 오기힘든 곳이다.
    이렇게 역사를 찾아서 오는 일이외에는 일부러 들리기는 어려운 곳인만큼 그래도
    흔적 하나는 남겨야 한다.
    그래서 남기는 흔적....


    <일부 내용은 대전일보 기사에서 참고하여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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