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서리 내린 날
두런 두런
웅성 웅성
오늘 밤
박씨네
사과밭
밤새 시끄럽겠다.
들뜬 사과들
밤 늦도록 신열 앓겠다.
첫서리 내린 날
오늘밤에는
박씨
얼굴도
사과만큼 익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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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아침에 출근전 잠깐 본 신문에서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날임을 인지합니다.
하루가 바뀌는 것일 뿐인데 왠지 마음은
시월의 마지막 날이란것에 천착을
하는 것을 보니 역시나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확실히 되버린듯 합니다.
제 출근길은 참 운치있는 길입니다.
회사가 조금은
시골이라고 해도 좋은 위치에 있어서 출근과 퇴근길은 항상
김밥 싸들고 소풍을 가는 그런 느낌을 주는 길이니 행운이라면 행운인
셈입니다.
그리 생각하면 돈벌러 나오는 길이 조금 가볍기도 하지요.
5분의 콘크리트로 조형화된 사막을 빠져나오면 이내
논들을 만납니다.
거의 대부분 추수가 끝나 버린 논에 하얗게 첫서리가 내려 있습니다.
그냥 살짜기 스쳐가는 눈발이 잠시 머물러 햇살이
달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올해 첫서리가 눈에 가득히 들어옵니다.
그 다음에 만나는 풍경이 연밭입니다.
부근에 있는
사찰에서 운영을 하는 제법 큰 연밭을 지나야 하는데 사시사철
변해가는 연밭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지금은 역시나 말라 비틀어진 연닢과
연대들이 삭막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멀쭉히 서 있는 미류나무 한 그루의 그림자가 연못을 조금은 채워줍니다.
그리곤 이어서 자그만 호수를 하나 만나게
되지요.
어느듯 철새들이 날아와 적응훈련을 하는지 군무를 추고 있습니다.
물안개가 조금씩 피어올라서 마치 동양화 전시장의 액자를 보는
듯 합니다.
세상의 모든것이 마음에 있다는 옛선인들의 말들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느낍니다.
잠깐이였지만 나는 선경을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스레트로 허름하게 지은
짜장면집이 있습니다.
짭밥에 지치면 한번씩 들르는 곳인데 면발이 참 맛있는 집입니다.
짭뽕은 너무 짜게 만들어서 나는 이집에 가면
항상 짜장면만을 먹고 맙니다.
삼거리를 지나면 조그만 언덕으로 이어진 길을 만나는데
넓은 잔디밭이
있는데 이 집의 잔디는 금잔디라는 아주 고운 잔디입니다.
봄이 되면 전국으로 팔려나가는 아주 유명한
잔디밭입니다.
그때에 좋은 값을 받으려고 오늘도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는 주인도 보입니다.
건널목을 만납니다.
마치 몇십년전 앨범을 넘겨보면
만나는 풍경인듯한 이 건널목을 참 좋아합니다.
간수도 없이 저 혼자서 오르낙 내리락하는 차단봉하며 땡땡땡.....하며 즐거이
울리는
종소리하며...
이 건널목은 가을이 좋습니다. 안개가 조금 끼인 가을에 철길 건널목 앞에서
스쳐가는 소음들은 모두 살아서 펄펄 뛰기
때문에 좋습니다.
그리고 회사로 들어가기 전에 만나는 또 다른 풍경이
박씨네 사과밭입니다.
이 사과밭은 회사의 철망담하고 잇대어 있어서 박씨가 가지치기를 하거나
농약을 뿌리거나 하는 모습이 그대로 들여다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박씨도 자전거를 타고 안전모를 쓰고 현장을 도는 내가 그대로
들여다 보이겠지요.
가끔은 일부러 철망 가까이로 가서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 과수원의 낙과는 대부분 우리 회사사람들이 사먹습니다.
이번 추석때는 낙과가 아닌 것으로 달라고 했더니 박씨가 이렇게
말했지요.
"사과란놈이 말이유~~ 이게 서리를 맞아야 맛이 제대로
드는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