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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발을 세번 구르고..
    이런저런 이야기 2006. 4. 23. 22:16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옮기는 글


    왼발을 세번 구르고.. 
    2003-12-05 오후 7:58:47

     


    2003년의 마지막 한달도 벌써 십분지일을 까먹었다.
    12월 3일 수요일 안개낀 고속도로를 달린다.
    안개의 행렬은 아산을 출발할 때부터 바짝 붙어서 추풍령을 넘을때까지
    끈질기게 따라왔다.


    200미터 앞과 빽미러로 보이는 200미터의 뒤만 빼꼼히 보이는 고속도로를
    짧게 스치는 상념들과 같이 달린다.


    보이지 않는 300미터 앞이나 400미터 뒤에는 무었이 있을까?


    우리는 이렇게 앞도 뒤도 모르면서 겨우 코앞에 보이는 것들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주나들목을 지나며 놀고 있는 왼쪽발을 세번구른다.
    옥천의 금강을 가로 놓인 다리를 지나면서도 왼쪽발을 세 번 구른다.
    오늘은 왼쪽발을 세 번구르는 일이 두 번씩이나 있는 특별한 날이다.


    이렇게 왼쪽발을 세 번 구르는 일은 장의행렬을 만날때다.
    20년 넘게 습관이 되어 이제는 장의행렬만 보면 자동적으로 세 번 굴러진다.


    20년전쯤에 스승으로 모시던 한분이 계셨다.
    신 바우스님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으로도 불렸던 申慧星스님인데 법화종이라는
    불교종단의 종정까지 한때 지냈던 분이다.
    부산의 양대언론으로 유명세를 누렸던 야당성향의 국제일보에서 논설주간도
    역임하셨던 분인데 이분의 박학다식하심은 한마디로 경이롭기까지 했다.


    각종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인 물론이려니와 특히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깊은 식견과 지식에다가 한학에 특별한 경지를 이루신 분이다.


    이 분이 큰 어른으로 대접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대처승이라는 것 때문이였다.
    일제때 출가를 한터라 倭色불교가 이땅에 빌붙기 시작한때라 18세의 어린나이에
    스승의 강권에 결혼을 하게된 것이 해방후 불교계에 밀어닥친 정화의 열풍에
    통도사에서 밀려나신 분이다.


    어쨋거나 이런분을 잠시나마 스승으로 모신 것도 반디불의 큰 복이리라..


    이분이 가르쳐 주시기를 옛날부터 우리 민간에 내려오는 습속에 상여나 상가를
    지날 때는 죽은이를 위해서 地神에게 망자를 잘 인도해달라는 뜻으로 왼발을 세번구르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해주라고 배웠다.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라는 뜻이니 사람이 죽어면 간다는 세계가
    곧 아미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 붙이셨다.


    전혀 인연이 없어 보이는 남이지만 이 땅에 이 시대에 같이 호흡하고 산것만으로도
    따지고보면 큰 인연이 아니고 무었이랴..
    남을 위해서 왼발 세번 굴러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듯이 보이나 이것이 많이 싸여야
    자네마음에 자비가 쌓이는 것이니 작으나마 마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 생각하라..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남이 먹은 이야기나 그림으로 아무리 보아도 먹지 않으면 배가
    부르지 않는 것처럼 자비의 실천도 경전에서 백번 천번 읽고 아는 것은 아무 소용없어..
    마음 공부한다고 생각하라....고 말씀을 주신후 왼발을 구르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우리들이 일년에 몇 번씩 지내게 되는 祭事..또는 茶禮라고도 불리는 이 행사에서
    최고의 백미는 음복(飮福)인데 제사에 사용한 술을 자손들이 나누어 마시는 행위이다.
    이렇게 해야 조상들이 도와주는 음덕(陰德)을 입는 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마음의 한구석에는 낯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극락왕생하라고 빌어주는
    왼발 세 번 굴러주는 행위도 음덕(陰德)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개를 떨쳐 버리고 추평령을 넘는다.
    곧 김천을 지나고 구미가 나올 것이며 그곳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인동을 거쳐서
    효령의 좁은 길을 지나서 신령과 영천으로 해서 포항이라는 목적지로 갈 것이다.


    우리 삶에서도 이렇게 목적지가 보이고 경유지가 보였으면 좋겠다.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넣고 다니다가 펴볼 수 있고 내가 살아온 삶의 행로에
    빨간줄을 그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정말 좋을까하는 의문도 같이 드는 건 또 .....쩝..쩝..)


    또 어디선가 장의행렬이나 상가를 지나게 되면 반복할 일이다.
    내가 그렇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다는 안도감이며
    아직 살아갈 희망이 있다는 확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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