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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차로 포항으로 가는길
    여행기 2006. 4. 23. 21:30

    블로그앤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옮기는 글


    열차로 포항으로 가는길 
    2003-11-28 오전 11:26:20

     

     

     

    6:00 꿈을 꾸었다.그다지 기분이 나쁜 꿈은 아니였던 것 같았는데 생각도 나지않는
           그런 꿈을 꾸었는가 보다. 자동으로 시간이 설정되어 켜지도록 되어있는 테레비젼의
           소음으로 잠이 깬다.
           아침마다 이시간이면 딱 두가지 생각만 존재한다.
           `일어나야지..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도 많이 줍는 법인데`
           `무얼그리 빡시게 살려구 그래..한 5분 더 자도 되겠구만`


    6:30 치열하게 싸우던 두마음중에서 일어난다는 쪽이 승리를 한다.
           무지하게 치열한 한 바탕의 전투였다.


    7:20 집을 나선다. 비가 제법온다.
           옆동의 화단에 국화가 활짝피었다. 비를 맞고 있는 국화를 보아도 감흥이 없다.
           감정이 벌써 고갈이 되어 버린 것일까?
           이 시간쯤에 동동걸음을 치는 사람들이 자주 있는 듯 아파트입구에 몇대의 택시가
           기다리고 있다.
           제일 앞에 있는 택시가 제일 후지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심한 나는 그래도 그 택시를
           탄다. 그리고는 심드렁하게 이야기 한다.
           `온양역이요~~` 10여분 아무말없이 앞만 보는 시간이다.


    7:40 표를 산다. 철도카드와 신용카드를 내민다.
           현금이 하나도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나라다.
           새벽에 일찍 나온 역무원의 표정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린 고단함이 묻어난다.
           표를 받아들고 거울을 본다.
           역무원의 표정과 한치도 틀리지 않는 남자의 표정이 그곳에 있다.


    7:50 빗발이 점점 굵어진다. 영화에서 보던 프랑스의 역 풍경이 보인다.
           키가 부러운 가죽잠바에 청바지차림으로 바퀴달린 가방을 든 외국인 남자가
           우리나라 여자치고는 제법 큰키로 보이는 애인과 긴 포옹으로 이별을 나누는
           낯선 풍경에도 사람들은 무심한척 한다.


    7:55 개찰이 시작된다. 600원주고 구입한 온양온천-천안간 입석표를 개찰받고 비내리는
           플랫폼으로 걸어간다. 천막으로 둥글 게 덮어씌운 지붕에서 낙숫물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면서 400원짜리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프림커피를 한잔 뽑아든다.
           싱거운 프림커피를 먹게 만든 나쁜의사를 생각한다.
           비는 투닥거리며 계속 내린다.


    8:00 출발하느라 흔들리는 열차안에서 비어있는 아무 자리에나 앉는다.
           입석표를 사가지고 앉아서 가니 오늘 일진이 출발부터 좋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차창밖으로 수확이 끝난 배밭에 매달려있는 봉지들만 비오는 들녘의 주인이다.


    8:08 하나뿐인 선로를 두고서 열차가 서로 비켜가기위해 간이역에 섰다.
           김치로 버무려지기를 기다리는 배추들이 듬성 듬성 뽑혀져 도시로 팔려간 이웃들의
           자리를 허전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지나가는 길의 옆에는 은행나무위의 까치집이 소담스럽다.


    8:11 고속철도 아산역이다.
           저번보다 숫적으로 줄기는 했지만 역사명을 둘러싼 아산사람들의 아우성을 담은
           프랭카드가 즐비하다.
           이 동네사람들은 참 순한 편이다. 요즘에 이 나라에서 투사가 아닌 사람이 없다.
           화염병과 고무새총..그리고 몽둥이만이 통하는 시대에 기껏 프랭카드 정도이니..
           힘이 없다는 것은 오로지 약자에게만 슬픔이다.


    8:13 천안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이제 몇몇이 내릴 준비를 한다.
           남의 일인양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내리는 대열에 선다.

     

    8:20 플랫폼을 빠져나온다. 그리곤 또다른 개찰구의 앞에 선다.
           스포츠신문을 600원 주고 산다.늘쌍 별다른 읽을 거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여행길에서는 제법 돈값을 하는게 스포츠 신문이다.
           그리고 대합실의 차가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개찰을 기다린다.
           아침의 역에는 계단이나 대합실이나 개찰구앞에 늘어선 줄에서나 즐거운 표정이 없다.


    8:28 개찰을 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기계음이나 아릿따운 여자의 목소리가
           아닌 걸걸한 남자의 육성이 반갑다.
           마음이 바빠지는 개찰구를 지나서 비오는 플랫폼의 철로변에 섰다.
           닳아서 맨지러해진 레일의 상면부에 빗방울이 떨어져서 표면장력을 뽐내듯 방울진다.


    8:31 정확히 기차가 떠난다.
           통로쪽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펼친다.
           2003년 11월 27일[목] 7호차 38호석
           병사의 군번표처럼 4시간 30분동안 나의 인식표이다.
           지금부터는 7호차 38호석 손님으로 통할것이다.
           펼쳐든 스포츠신문은 모두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뿐이다.


    8:36 철로변 야산에 하얀 범선이 돛을 펴고 있다.
           바다 구경도 못해본 콘크리트와 철골재와 빨갛고 파랗고 노란 전구들이 범선의 뼈대를
           갖추고 까페라는 이름을 빛내고 있다.
           실상은 바다와는 멀고 먼 개념의 조작이다.
           홍익회 아가씨가 리어카를 몰고 온다.
           `음료수..커피..그리고 이어폰 있습니다!`
           밀감과 삶은 계란을 외치던 풍경은 이미 흑백으로 낡은 옛사진이 되었다.
           비내리는 초겨울의 바깥은 안개의 세상이다.


    8:42 옷걸이에 벗어 걸어두었던 상의에서 갑자기 휴대폰 생각이 나서 꺼내든다.
           아마도 세상과 단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모양이다.


    9:10 스포츠 기사와 연예인등 이야기.그리고 여행이야기도 그저 심드렁하게 훑는다.
           만화는 제법 꼼꼼하게 읽어본다. 스포츠신문을 사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장을 넘기니 정치판 이야기다...개자식들..두말없이 신문을 덮어서 의자포켓에
           버리듯이 넣는다.


    9:12 열차는 대전역에 도착한다.
           우리회사에서 만들었던 화차생각이 난다. 신례원이나 주포역에서 시운전을 시작하면
           다섯시간만에 도착하던 종착역..시운전내내 긴장했던 정신이 풀어지는 종착지...
           그래서인지 항상 대전역은 밝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비는 아직도 추적대며 차창을 때리고 있다.
           열차가 진행하는 반대방향으로 방향성을 가졌던 빗방울들이 이제는 수직으로 내리고
           있는 것이 유일한 差異다.


    9:14 내리는 몇사람의 뒤를 이어서 새로 탄 몇사람이 자기자리를 찾아서 두리번 거린다.
           정차역 차내 풍경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이 이렇게 시작되기는 하지만 다들 무심한 표정이다.


    9:35 벼르던 책을 한권 넣어왔다.
           시와 평론에 대한 책인데 수면제같던 책이 오랜만에 여행의 동반으로 되니 어쩐일인지
           읽을만 해지는 것이다. 생각하기 나름인가보다 한다. 생각의 씨앗 하나를 줍는다.
           오른쪽 차창으로 넓은 강이 나왔다.
           여전히 바깥은 야산들마다 안개를 머리에 잔뜩 이고 있다.
           강의 풍경이 좋아서 여기가 어딘가 하고 고개를 빼서 여기저기 살펴보니 심천(深川)이다.


    9:41 프로이트에 대해서 읽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다시 스포츠신문을 편다.
           잠깐 스쳤던 문구..`우리의 삶이란 어쩌면 잠깐 스치는 간이역 같은 것`이라는 선전문구가
           시선을 끈다. 광고다. 남자와 여자를 부정하게 맺어주는 요지의 전화광고다.
           아이러니하다. 참으로 딱 적절한 삶의 표현인데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10:22    한숨 깜빡 잠이 들었다
               옆사람이 내리는 바람에 잠이 깨였다.
               구미다. 구미역은 공사중으로 주황색으로 칠해진 방청페인트가 오늘같이 우중충한
               날씨에 오히려 원색의 엑센트이다.


    10:24    열차가 다시 출발한다.
               이제는 서서히 하늘이 맑아지고 있다.
               종일토록 가져온 접이우산이 짐이 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사람은 간사하다.
               새로운 여행객이 옆자리를 채운다.
               서로 시선의 교환도 없는 새마을열차 풍경이다.
               왁자하고 낯모르는 사람과도 소줏잔을 나누던 비둘기호 열차가 그리워 진다.


    10:32    정현종 詩人의 `푸르른 풋시간이여`를 읽고 있는데 홍익회 판매원의 리어카가
               지나간다. 지나가보아야 더 이상 갈곳이 없다. 마지막 칸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리어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맑은 얼굴에 마음이 동했는지 700원을
               치르고 바나나우유를 얻는다.
               날씬하여진 바나나우유통을 보면서 세월은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10:40    조그만 간이역을 스친다.
               오른족 창가에는 장갑차를 한 대 달랑 실은 화차가 머물고 있다. 얼룩무늬 장갑의
               색깔이 왠지 모조품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하다.
               왼쪽에는 미군들이 사용하는 허머찝차가 스무대쯤 실려있는 화차도 있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힘의 차이와 씀씀이의 차이를 본다. 씁쓸하다.


    10:42    이제는 해가 난다.
               길옆 국도에는 물기없는 차들이 달린다.
               잎떨어진 가로수가 비온뒤의 몸을 말리고 있다.


    10:47    굴뚝마다 피뢰침이 서있는 대구염색공단을 지난다. 저멀리 대구타워가 보인다.
               도심을 지키는 방음벽이 일정한 속도와 무늬로 뒤로 자꾸만 달아난다.
               마치 바깥의 공간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구 뒤로 달아나 사라져 간다.


    10:52    열차는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뒷자리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목소리의 여인이 연인과
               속삭이는 풍요함이 귀를 간지럽힌다.
               기름기 흐르는 목소리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10:54    기차는 다시 출발한다.
               이번에는 가는 사람들뿐 새로이 오는 사람이 없다.
               몇몇 빈자리가 생겼다.
               점점 종착역으로 간다는 느낌이 압박으로 다가온다.
               우리 인생도 갈수록 하나둘 이렇게 옆자리가 비어가는 것을 보는 것 아닐까?


    11:02    도시의 풍경이 자꾸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낀다.
               건물들이 높아지고 새건물이 생기고 새길이 생기는 것 이상으로 피뢰침의 숫자도
               늘어간다. 피뢰침의 숫자가 도시가 변하는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뒤쪽에서 수능을 치르고 여행을 떠났는지 부러운 젊음들이 즐거운 놀이를 하는
               모양인지 연신 까르르~~ 맑은 웃음이 차안의 기계색 풍경에 생동감을 채운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오래된 기억하나가 슬며시 추억의 선반을 내려온다.
               그 즐거움을 보려고 뒤를 잠깐 돌아보다가 윤기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보인다.
               `자기야! 그만 끊어요` 하던 목소리가 오버랩되는 곳에 미색바바리의 남자와 팔장을
               낀채 재잘재잘 되고 있다.
               `불륜인가?` 실없는 웃음이 피식 나온다.
               누구나 한두 번쯤 불륜을 꿈구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나역시도 마찬가지이고..
               단지 화자가 나이냐 아니면 타자이냐에 따라서 불륜과 로맨스로 되는 것 아닌가.


    11:17     열차가 곧 영천역에 도착한다고 한다.
                좋은곳이다. 들도 넓고 물도 풍부한 곳이다.
               그리고 역사가 참으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낯익은 국도가 옆으로 스치어 간다.
               철지난 포도밭에서 겨울의 활량함이 절절히 묻어난다.


    11:34    마광수교수의 신작시 `이 서글픈 중년`을 읽는다. 끄덕 끄덕..
               나도 이제는 중년이 되어 버린 서글픔이 가슴을 짠하게 조여온다.
               이제는 섹스를 탐닉할 나이조차 지나쳐 버린 그는 지금 또 무었을 탐닉할까?
               그와 같은 중년의 나는 또 무었을 탐닉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11:53    경주역에 열차가 도착했다.
               서울에서부터 내내 한몸으로 달려온 앞뒤 기차는 이제 여기서 분리되어서
               제갈길로 간다.
               경주!
               까마득한 선조의 고향이었고 태어나 처 수학여행지였으며 우리 아이들과의
               추억도 참 많았던 곳 경주..
               타고난 말썽꾼으로 모두들 토함산으로 일출을 보러 떠나고 혼자서 여관방에
               남겨지는 벌을 받았던 서러움도 있었던 경주..
               다시금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가져온 우산이 다시 쓰여질 모양이다.


    12:02    이제는 모든 풍경이 앞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부터는 포항을 향해서 北行한다. 남으로 내려온 열차는 앞뒤가 따로 없는
               동체로 북으로 가지만 앉아 있는 사람은 갑자기 바뀌는 방향이 생경스럽다.


    12:10    안강뜰을 지난다.
               추수를 끝낸 볏짚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약수가 좋은 사방역을 지나친다. 사방역의 황물탕하면 알아주는 약수다.
               포항-대구간 고속도로 공사장에는 덤프들만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난수밭!!!
               지금 잊혀질뻔한 기억속의 낱말 하나가 갑자기 떠오른다.
               채마밭을 우리 엄마는 이렇게 불렀다.
               아직 하나도 뽑히지 않은 배추들이 그득한 빨간기와집옆 난수밭을 지난다.


    12:14    안강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영어로도 나오고 일본어로도 나오고 마지막엔 중국어로도 나온다.
               넓어 보이는 세상도 잘 따져 보면 좁다.
               물 말라 버린 수로에 파란색 수문이 여름의 고담함을 달래고 있는데
               왜가리 한 마리가 자꾸 보채는 듯 서성인다.


    12:18    안강을 떠난다.
               열차는 이제 마지막 쉴곳을 남겨두고 있다.
               여기 저기서 사람을 찾는 전화들이 분주하다.
               소용처를 찾지 못한 볏짚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논을 지난다.
               소용처가 있는 볏짚과 없는 볏짚, 어느쪽에 진정한 행운이 있는 것일까?
               부질없는 생각 꼬투리...싹뚝..


               차창에 물방울 사선이 방향성을 가지고 그어진다.
               아스팔트의 젖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빗방울은 아까보다 좀더 굵어 졌다.


    12:22    국당을 지난다.
               젊다고 할 만한 때에 패러글라이더를 즐기던 나지막한 국당활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대 그 벗들은 잘 있는지..오늘일이 일찍 끝나면 전화나 한번 넣어보아야 겠다.
               경주에서 발원하여 포항을 거쳐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형산강이 좁은 골을 만나서
               힘겨워하는 유금을 지난다. 포항의 관문이다.


    12:24    마지막 종착역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여기저기서 분주한 소리가 들린다.
               기차는 터널속으로 제모습을 감추었다가 답답했던지 이내 바깥으로 몸을 드러낸다.
               이제는 포항이다.
               나는 만년필을 포켓에 넣고 짐을 챙긴다.
               이제 다왔구나 생각하니 시장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시작과 끝은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생겼다가 사라져간다.
               다왔다는 이 끝남도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종착역은 시발역의 또 다른 표현임을 알기에 늘 여행에는 설레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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