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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책 탐독記
    교복시절의 추억 2006. 4. 19. 20:44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고 했던가..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는 말씀인데
    현대야 굳이 남아수독~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당연히 여아수독오거서도 되어야 만 하는 게 아니겠는가.
    남여 구분할 것 없이 누구나 다섯수레의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지.


    수레도 수레 나름이겠지만 이 글을 씀에 이르러 남 이야기 하기 전에 우선은
    나는 그동안 얼마나 책을 읽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어서 물경 1시간 동안을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양(量)은 서너수레는 되는 듯 하지만 머리속에 남은 건
    똥조(갱지..말똥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두 장 분량도 안되는 것이다.


    어릴때는 가난이 지지리 궁상이라 용왕님이 토끼간을 잡숫시는 장면 그려진
    소위 동화책이란건 구경도 못했다.
    처음으로 책이라는 것을 본게 아마도 국민학교 입학해서 받은 교과서일 것이다.
    '바둑아 이리와..나하고 놀자"
    철수와 영희가 단골로 나오던 우리들의 교과서 말이다.
    똥꼬로 나이를 먹었는지 어느 세월에 나도 모르게 이만큼씩이나 나이를 먹고 보니
    누군가가 말한 철수의 수는 육영수의 수...영희의 희는 박정희의 희다라는 말이
    허~허~ 그럴수도 있겠구만 하게 되었다.
    그 만큼 책이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고학년때는 책 자체가 싫어졌다. 그때는 학교에서 선생이 방과후에 과외도 했고
    전과라는 것을 만들어 파는 출판사에서 로비도 버젓히 하던 때라서 매일 아침이면
    전과를 안 가져 왔다고 손바닥 맞는게 중요한 일과의 하나였다.


    내가 책에 빠져 버렸던 것은 중학교에 가면서 부터 였다.
    학교가 부산 서면에 있는 중앙중학교였는데 바로 옆에 시립도서관이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가장 먼저 그 곳부터 들렀다.
    2년...
    1학년과 2학년이 끝날 무렵까지 나는 도서관에 묻혀 지내다시피 했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2학년이 거의 끝나고 3학년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옆자리의 친구가 탐독하는
    한권의 책...무협지를 얻어 읽었다.
    시리즈로 나오던 책의 중간쯤에 있는 책이였는데 "아~ 경이로움..." 그것이였다.


    새로 학년이 올라가고 묘하게 그 친구는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초읍...어린이대공원이 있었던 초읍은 33번 버스의 종점이였다.
    그 초읍에서  그 친구네는 만화방을 하고 있었다. 나는 종점에서 탄다는 핑계로
    40분에서 50분을 걸어서 초읍까지 갔다.
    버스종점을 못 미쳐 있던 친구네 가게에서 하루에 두세권의 무협지를 빌렸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그렇데 읽은 무협지가 족히 사오백권은 될것이다. 어림으로 계산을 해도 일년
    열두 달중에 방학 빼고는 매일 들리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경신술...철사장...축지법...불영신공...모두 이때에 축적된 용어들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어찌 무협지만 읽고 살 수가 있으랴.
    1년 12달을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그 말 이다.
    나는 초읍 33번 종점까지 걸어가면서 친구와 새로운 지식의 보고에 눈을 떳다.
    寶庫...보물창고...그렇다.
    초읍에서 우리는 우리들만의 보물창고를 발견한 것이였다.
    지금도 있지만 하야리야부대라는 미국군부대가 초읍에 있었는데 33번 종점으로
    가려면 미군부대의 보록쿠담을 따라서 가야 한다.
    중간쯤에 제법 잘 지은 양옥 하나가 있는데 군속인지 아니면 군부대가 지겨워서
    양갈보(이건 좋지않은 용어이다... 미군과 사는 여자를 이렇게 불렀다.) 데리고

    밖에 나와 사는 미군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대문옆에 붙은 쓰레기통이 발견된

    보물창고였다.


    한사람은 망을 보고 까만 철제뚜껑을 열고 뒤지면 포켓용 책이나 잡지가
    자주 나왔다.
    플레이보이...펜터하우스....
    태어나서 다 큰 여자의 알몸을 제일 먼저 외국여자들의 팔등신 몸매부터 각인이
    되어버린 것도 이때의 일일 것이다.


    한참 사춘기때의 남자는 몽정이라는 것이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나 역시도 그런 것이였다.
    말 그대로 夢精...이니 꿈을 꾸는게 당연한데 늘 꿈에서는 눈이 파랗고 얼굴보다
    가슴이 더 큰 여자가 등장하는 것이였다.
    아마 나는 그때부터 요즈음 이야기하는 글로발적인 사고를 했었는가 보다.


    고등학교를 갔다. 한쪽 어깨에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고 새겨진 헝겊 쪼가리를
    붙이고 다니던 공고로 진학을 했다.
    학교가 부산의 메리놀 병원 바로 위에 있었는데 아침이면 거의 100여개의 계단을
    뛰다시피 올라야 한다.


    여기서 나는 영도에 사는 친구 둘을 만났다.
    한 친구는 졸업후 가출한 나와 연락이 닿아서 종국에는 자기도 서울와서 한때
    가수를 한다고 취입준비까지 했던 놈이 있다.
    지금은 가끔씩 노래방에서나 제 목소리를 뽐내곤 하지만...


    그 친구는 아버지가 외항선을 탔다.
    그 친구의 아버지 방은 두번째로 발견한 보물창고 였다.
    6개월에 한번씩이나 집에 오시는 데다 친구의 엄마도 공무원이라 우리는 집에서
    마음 편히 놀수가 있었다.
    친구 아버지의 책상서랍...서랍안이 아니라 그 너머...너머로 손을 넣어면 몇권의
    책과 비디오 테잎이 나오는데 중학교때 보던 플레이보이나 펜터하우스와는
    전혀 비교가 안되는 경이로움 이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비디오 테잎을 이용한 멀티미디어적 自習...


    그런것만 본것은 아니다.
    그런것만 탐닉을 했더라면 오늘의 내가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대망...大望......
    24권짜리의 대단한 분량의 이 책을 독파했는데 나는 이 책에서 얻은 몇 개의
    귀절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스님이 도꾸가와 이에야스에게 해준 말...
    " 평소에 많은 짐을 져본 당나귀라야 나중에 힘든 산을 넘을때라도
    살아남는 법이지....."
    이 책은 내 인생에서 첫 할부책이기도 했고 잠 한 숨 자지 않고 1주일만에
    모두 읽고 첫 할부금부터 친구에게 떠 넘긴 책이기도 하다.
    "이 책... 아마 인생에서 다시 만나기 힘들지 몰라~'라는 감언이설과 함께...


    학교가 파하고 나면 그냥 집으로 바로 가는 법이 없었다.
    교복보다는 주로 교련복이나 실습복을 입고 영화 "친구'에 뛰는 장면에 나온
    돌담이 있는 보수동 책방 골목을 제일 먼저 들린다. 헌책방에 들어가서는 딱히
    사야 될 책을 정해놓고 가는 것이 아니라서 이 책을 뺏다가 저 책을 뺏다가
    괜스레 시간을 끌면서 가끔씩 주인 아저씨 쪽으로 시선을 보내곤 한다.
    가만히 보고 있던 주인이 주변에 사람이 어느 정도 없어지면 다가와서 슬며시
    이렇게 묻는다.
    "빨간 책 찾는기제?"
    "야!"


    그러면 주인아저씨는 의자밑이나 은밀한 장소에 감추어 두었던 얇은 책을 한권
    주변 살피면서 준다. 그때 얼마만큼의 돈을 지불했는지는 까마득해졌다.
    어떤 책은 빨간 표지이기도 하지만 어떤 책은 누런 표지거나 하얀 표지일 때도
    있는데 굳이 빨간책이라고 하는 것은 그 내용이 빨갛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들은 정식으로 출판된 책이 아니다. 하기는 그런 책을 정식으로 출판할 수
    있는 나라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정식으로 인쇄를 했다기 보다는 대개는 직접 손으로 철필로 긁어
    (옛날에는 가리방이라 했다..) 내용의 전부가 등사로 만들어져 있었다.
    '똥조'라고 말하는 누런 갱지에 조잡하게 인쇄된 이 책들이 소위 말하는
    빨간책인데 얼마나 적나라하고 실감나게 씌여졌던지 밤새워 읽고 또 읽고는
    했었다.


    그렇게 며칠을 읽고 가져가면 서점의 아저씨는 삼분지일의 가격으로 새책을
    주시곤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빨간책들의 제목....
    꿀단지, 작은 형수, 야밤야화, 누야! 와 시집안가노...등등


    무협지와 빨간책을 합해준다면
    나는 분명 男兒須讀五車書에 가까이 가고 있음이다.


    그러나 나는 오십밑자리 깔아놓은 지금도 여전히 빨간책을 탐독한다.

     

     

     

     

    인터넷으로 올려진 노자 도덕경...이 놈을 인쇄해서 아예 빨간색으로 스스로
    제본을 했다.
    게다가 호주머니에 늘 넣고 다니면서 온갖 잡다한 것들을 끄적이는 수첩도
    그러고 보니 빨간색이다...無始無終...시작도 끝도 없다...
    이 작은 잡책에다 이 제목을 적어두고 실소를 했었다.
    시작하지 않으면 끝도 없는 것을 나는 체질상 늘 무언가 벌리고 있으니...
    그래도 가끔씩 고요한 가운데 혼자 이 잡책을 들쳐보면 꽤나 재미있다.
    어쩌면 빨간색은 나의 고향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옷은 주로 파란색을 좋아하고 코발트빛이나 보라색을 좋아하지만
    마음속의 깊은 곳에는 늘 빨간색의 열망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첫 시집의 제목을 "내 마음의 빨간불"로 했었다.
    무심히 지은 제목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마음의 기저에 있는 색깔이
    빨간색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어린시절 너무나 많은 빨간책을 탐독한 탓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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