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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단추...뺑뺑이
    교복시절의 추억 2006. 4. 19. 20:33

     

     

    이제 35개의 포스트가 올라간 유년의 기억들이
    아직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부터 교복시절의 이야기들을 정리 하려고 한다.
    옛날의 추억이라는 것이 모두 그렇듯이 시간적으로 정리를 한다는 것이 정말로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간적으로 조금씩 나열을 하고 다음에 읽다보면 그렇지..이런적도
    있었지~ 하면서 숨어있던 새로운 기억들이 나타날수도 있겠지 하면서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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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을 앞둔 1971년의 2월달은 우리집에도 텔레비젼이 들어온 달이다.
    몇년동안을 동네 목수집 텔레비를 보느라 잦아졌던 밤마실도 하나둘 텔레비를
    사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목수집 안방도 빈자리가 많아졌고 급기야 한두사람으로
    줄어들자 오히려 보러가는 사람이 미안한 지경이 되었다.
    엄마는 테레비 사는 계에 들었고 네번째로 당첨이 되어서 마침내 우리집에도
    골드스타라는 상표가 붙은 자바라식으로 나무 문을 여는 테레비가 들어온게
    1월 중순쯤되었다.


    탱자나무보다 높이 세워야 잘 나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셨던 아버지는
    다니시던 밀가루 공장에서 긴 파이프를 얻어 오셨고 제법 높이 안테나를
    세워 놓으셨다.
    마침내 우리집도 자주적으로 보고싶은 프로를 볼수 있는 권한이 생긴 것이다.
    세상일에 관심이 많으시던 아버지는 그동안 보지 못했고 찌직거리는 라듸오로
    듣기만 하던 뉴스를 볼 수 있다며 좋아하셨다.


    나는 계(契)의 위력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그외에도 엄마는 반지계..봄에 놀러 가는 계..무슨 무슨 계에 많이 드셨다.
    서민들이 계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2월이 되자 테레비 뉴스에서는 아폴로14호의 이야기로 한동안 법썩이였다.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은 "오늘은 말이야..아폴로14호가 달궤도에 들었다누만.."
    하시면서 한동안 아폴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게 또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그 당시만해도 만덕이나 화명은 부산에서도 촌이던 구포에서도 또 한참을
    깡촌으로 취급을 받던 곳이라 테레비 없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나는 비로소 눈으로
    보고 다시 선생님의 입을 통해 들으니 자연 연상도 쉬웠다.
    문명의 이기가 필요한 이유도 아마 이런 것이리라...


    또 매일 나오는 뉴스중에서 월남의 전쟁이야기가 빠진적이 없었던것 같다.
    그리고 늘 나오는 뉴스중의 하나에는 김대중씨 이야기도 있었다.
    무었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나왔는지는 관심도 크게 없었지만 그저 테레비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자였기 때문에 자족할 수 있었다.


    2월 10일 우리는 학교에 모여서 한참을 걸어서 구포국민학교에 마련된 추첨장으로
    갔는데 어른들은 "자들..뺑뺑이 돌리러 가는 가베..."라고들 하셨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영문도 모르고 그저 선생님이 이끄는대로 따라 갔다.
    필경사가 아주 멋진 글씨체로 써서 등사한 수험표 비슷한 것을 나누어 주었는데
    차례를 기다리다 자기 차례가 되면 앞으로 나가서 제출하면 확인을 하고 도장을
    찍어준다.
    그 다음에 옆으로 두어발 옮기면 속이 보이는 상자가 있고 그 속에는 탁구공에
    숫자가 씌어져 있는 것이 수십개 뒤섞여 있다.
    그 상자앞에 손잡이가 있는데 그것을 당기면 또르르~ 하고 공이 굴러 나왔다.

     

     

     

    12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내 손으로 뽑은 숫자다.
    그때야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12라는 숫자하나로 우리의 인생도 바뀌어
    졌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 뽑은 12번이라는 숫자야 말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12번....
    앞에 앉은 다른학교 선생님인지 감독관인지 모르는 양복입은 사람이 외쳤고
    종이에 12번을 적고 도장을 꾹~눌러준 다음에 반으로 쫙~찢어서 반을 도로
    내주었다.


    그리고 다음 다음날...그러니까 2월 12일....
    학교에서 선생님은 앞으로 자기가 다녀야 할 중학교를 발표해 주셨다.
    "김대근!"
    "예!"
    아마 이 대답을 하는 순간만큼 떨렸던 적도 없었을 것이다.
    "니는 12번이제? 함보자...중앙중학교네...잘됐다.."


    중앙중학교는 서면에 있었다.
    구포에서는 버스로 40분정도 걸리는 길이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하기는 그 당시만 해도 구포에는 남자중학이
    아예 없었다, 여자중,고등학교는 하나가 있었지만 남자중학교는 아예 없었던
    터라 모두 서면까지 나가야 했다.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다.
    만덕이나 화명등지에 살았던 친구들은 구포까지 버스를 30분이상 타고와서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나가야만 했다.


    영식...
    나는 이 이름을 잊을수 없다.
    내가 뽑은 번호로 내 인생의 많은 발걸음들 중에서 조금 무게가 있는 발걸음의
    하나를 결정한(?)  아니 남에 의해 결정된 그 날 밤에 뉴스에서 영식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접했다.
    대통령의 아들이 나하고 나이가 같다는 것..그 이름이 영식이라는 것이 그날
    내가 테레비를 통해서 알게된 새로움이였다.
    서울에서는 우리처럼 탁구공으로 결정지어진게 아니고 이름도 생소하던
    컴퓨터라는 기계를 이용해서 했다는 것과 배문중학교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
    그 새로움에 첨가가 되어 졌다.


    그 한참뒤에야 영식은 이름이 아니고 극존칭의 일부라는 것..그리고 그 대상의
    실제 이름은 지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교복시절의 첫 단추는 이렇게 꿰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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