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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담사 만해마을
    여행기 2006. 4. 16. 14:58

    만해문학관을 다녀와서..

     

     

    노란잠수함...아이들은 원하기는 했지만 속초에서의 잠수함수중탐험을
    해볼려고 팜플렛을 보았더니 5인가족이 잠수함 한번타는데 물경 25만원정도가
    들어야하는 데에 뜨끔 놀라서 방향을 180도로 바꾸어 남행을 하기로 했다.
    갑자기 일정을 바꾼터라서 다소 마음이 혼란스럽다.
    그러는 사이에 양양읍내에 다다렀다. 한계령의 이정표가 보인다.
    양희은의 한계령이라는 노래를 기억하며 그쪽으로 길을 잡자고 하였더니 우리
    와이프는 저번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백담사를 가보자고 한다.


    44번 국도의 시작점이다.
    조금가다보니 길은 막히고 옆으로 송천민속떡마을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고 내린 결론은 2키로정도에 있다는 떡마을에 가서 떡구경도
    하면서 한시간정도를 보내면 길도 어느정도 뚫리리라하고 갔더니 그곳은
    방앗간만 있을뿐이고 주문떡만을 취급한다고 한다.


    별 수 없이 길가에서 떡 두봉지를 사서 한계령을 넘었다.


    46번국도와 44번국도가 만나는 삼거리..
    관광안내책에는 이곳 휴게소의 와플이 맛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냥 통과했다.
    이곳에서 46번국도를 따라 고성쪽으로 길을 잡는다. 이곳을 계속가면 진부령으로
    통하는 길이다.


    도착한 백담사...
    생각치 않은 복병을 만난다. 입구에 주차를 하고 셔틀버스로 4키로를 간다음에
    다시 도보로 3키로를 가야한다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추위에 떨었던 아이들이 산길 3키로를 걸어야 한다니까 모두 안간단다.
    할 수 없이 포기를 하고 다음에 단둘이 오자고 약속을 하고 차를 돌린다.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나도 백담사는 이범이 처음인데 오고싶었던 이유는 만해 한용운스님의 흔적이
    이곳에 가장 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였다.
    46번 국도변에 있는 만해마을을 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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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시집 {님의 침묵}, 1926)에 나오는 `님의 침묵` 全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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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6년에 발간된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된 `님의 침묵` 全文이다.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날카로운 비수를 품은 그런 시라는 생각이다.

     

     

     


    만해 한용운스님의 전신상..
    만해문학관에 들어가면 통유리의 바깥에 있는데 걸어면서 사유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우선 만해 한용운 스님에 대하여 복습을 해보자.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찾아본 스님의 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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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 청주(淸州). 호 만해(萬海·卍海). 속명 유천(裕天). 자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하였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건양 1)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가, 1905년(광무 9)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1908년(융희 2)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圓宗宗
    務院)을 설립한 후 일본에 가서 신문명을 시찰했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1916년 서울 계동(桂洞)에서 월간지 《유심(唯心)》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의 일을 맡았다.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월간지 《불교(佛敎)》를 인수,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35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 성북동(城北洞)에서 중풍으로
    죽었다.

    시에 있어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고 불교적인 ‘님’을 자연(自然)으로 형상화했으며,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노래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추서되었다.

     작품으로는 상기 장편 외에 장편소설인 《박명(薄命)》이 있고,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등이 있다. 1973년 《한용운전집》(6권)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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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도 공부하였으면 이제 만해마을로 입장을 해도 될터이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만해마을의 간판..
    보이는 건물들을 처음에는 미완공 건물로 생각했었는데 콘크리트인 그대로두어서 오히려
    만해 한용운스님의 담백하였던 삶을 드러내고 있다.

     

     

     


    건물들 사이에 잇는 만해사..
    그동안 우리들이 보아온 수많은 절들과는 현판부터 다르다.
    콘크리트 벽에 조그마하게 붙어 있는 만해사 현판..

     

     

     


    만해사 법당으러 가는 길..
    꼭 인사동의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심미적안목이 뛰어난 사람이 기획하고 설계한 건물로 생각이 되었다.
    요즘처럼 온갖 단청으로 치장하지 않아도 서울에서처럼 유리로 외벽을 치장하지 않아도
    바닥에 타일을 깔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는 건물...
    만해 한용운 스님의 인품을 뒷사람이 와서 자연스레이 느낄 수 있도록 표현된 건물이다.


     

     

    법당안도 참 소박하다.
    마치 아무런 끼미도 넣치않고 쪄낸 하얀 백설기 떡처럼 말이다...
    마치 스님이 계시던 심우장처럼 방향도 북향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법고...범종...목어...현판...


    이 사물이야말로 불교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형태물도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종교들이 오로지 신과 인간..이 두가지의 명제를 가지고 있다.
    절대자 신과 복종자 인간과의 상호관계에 연연하고 있다.
    불교의 명제에는 절대자가 없다. 절대자는 오로지 그 자신일뿐이다.
    자기자신과 우주만물...


    축생을 제도하기 위한 법고.. 요즈음 너 나할 것 없이 안고다니는

    강아지는 애지중지 하면서 식탁에 오른 소고기나 돼지고기의 삶과 비교해본적이 있는지..

    생명의 천함과 귀함을 구분지을만큼 우리 인간은 잘난 것인지..
    절에 갔을 때 법고앞에 선다면 그런 생각의 정리를 한번 해보기 바란다.


    온갖 나르는 생명체들을 제도하기 위한 운판..

    구름모양의 작은 쇠붙이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울리면서 비둘기..새..닭..찌르레기..바퀴벌레까지도 모두 제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는 것은 결국은 인간 스스로의 겸손과 下心의 공부가 되는 것이리라.


    물에 의지해 살고 있는 생명들을 제도하기위한 목어..

    절대로 눈을 감는법이 없는 목어는
    수행자가 늘 삶에 눈뜨고 있어야 함을 동시에 깨우쳐준다.
    개울가 바위밑에 숨어사는 작은 물고기마저도 불교에서는 인간의 생명과 하등의 다를
    것이 없음을 가르친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버리는 우유한잔이 오염시키는 것으로 인해 고통받게될 물에
    의지해 사는 수많은 또 다른 생명들이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목어가 절에 매달려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르침이다.
    잔잔한 마음으로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기마음을 딱는데 스승이 된다.


     

    우주에 진리의 법음을 전하는 범종..

    우리가 아직 모르는 미지의 세계..
    저 우주에도 중생은 있을 것이다. 현대의 과학이 인정하는 진리가 되어 버렸다.
    불교에서는 이 우주를 33개의 하늘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것도 하나의
    하늘에 속한다.
    그래서 불교는 저 광할한 우주 33개의 하늘에 사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 한다는 뜻으로
    새벽에 범종을 울린다. 모든 생명이 깨어나는 시간이 4시쯤이라고 한다.
    모든 생명들이 깨어야 할 시간에 범종을 울리고 법고를 치고 운판을 울리며 목어를
    치는 것이야말로 뭇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라는 깨우침을 일러주는 것이리라..

     

     

     

     

    만해 문학관 입구..
    여기의 모든 건물은 흉상의 뒷벽처럼 저렇게 치장하지 않은 색깔 그대로이다.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류의 행복이라` 만해스님의 유명한 말씀이다.
    저기서 말하는 자유는 당시에는 속박에서의 자유를 말씀하신 것일테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반디불은 일상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생각에서의 자유를 말함이리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지나간다.

     

     

     

    스님의 행적들과 작품집..작품이 수록된 책등이 전시되어 있다.

     

     

     

    가보고 싶은 오세암...
    그동안 만주로 상해로 결국에는 일본에서 돌아가셔서 유골만 돌아와 우리곁에
    묻히신 조부님의 피내림으로 역마살이 끼여있는 반디불이 못 가본곳..
    간절히 가보고 싶은곳 그 오세암...
    그 그리움을 콘크리트 벽에서 다시 만난다.

     

     

     

     

    만해사 전경..설악의 무거움을 등에 지고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만해문학관 전경..

    분명 앞이 있으되 앞이 보이지 않고.. 끝은 있으되 그 끝을 인식할 수 없는 인생을
    사는 오늘의 나..


    그 점을 찍을 수 없는 인생의 한 점에서 前人의 흔적을 後人이 찾고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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