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Today
Yesterday
Total
  • 여행길의 스치는 인연, 머무는 인연-새로 만든 딥펜대 하나
    自作, 우든펜 만들기 2025. 4. 15. 19:48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부산에서 강릉 가는 기찻길이 열렸다는 인터넷 쪼가리 기사를 보고 회가 동했다. 부부가 모두 고향이 부산이고 신혼 13년간을 포항에서 살림을 했다. 포항있을 때 강릉을 가려면 정말 큼 맘을 먹어야 했다. 둘 다 바다를 좋아한다. 물멍의 맛도 불멍에 못지않다.




    여행의 주된 목표는 동해선을 시작부터 끝까지 타 보자였다. 여태껏 여행과 다르게 기차로만 움직여 보자는 목표로 며칠 승차권 예약에 매달린 끝에 포기하는 사람이 나왔는데 예약 걸어둔 코레일에서 연락이 왔다. 둘다 직장이 있어서 금요일 오후 조퇴하고 부산 가서 전포동까페거리 구경을 하고 전포역에서 다음날 아침 동해선을 타고 5시간 뒤 강릉에 도착해서 강릉 구경하고 다시 가른에서 서울로 와서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아산으로 오는 것으로 여행을 끝냈다.




    강릉 해변 벤치에 앉아 물멍하다가 나뭇가지 하나를 만났다. 손으로 잡아보니 굵기가 딥펜대로 딱이고, 길이도 적당하다. 나무 이름을 알 수 없다. 길이방향으로 많이 갈라졌다. 바닷가의 매서운 아침바람과 뜨거운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 갈라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할 터이다.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오면서 얻어온 휴지로 대충 닦으니 와이프는 짐짓 모르는 체 하는 눈치다. 하긴 한 두 번이 아니니 그럴 만하다. 이미 수년간 태양아래 노출된 이런 나무는 오랫동안 건조할 필요가 없다. 바닷가를 떠도는 유목들도 그렇다.

    아무튼 그렇게 스치는 인연에서 머무는 인연으로 바뀌었다. 책상 한 곁에 방치해둔지 한 달째, 이제는 이 녀석의 탈태환골을 이루어주어야 할 때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갈라진 틈을 메워주는 일이다. 일부 갈라짐은 나이테의 가장 가운데까지 깊어져 있다. 에폭시에 금분을 섞어서 하나하나 메꾸었다. 그렇게 메꾸어 지면 톱으로 양쪽을 잘라서 닙 들어갈 구멍작업을 해야 한다. 첫 번째 구멍은 삭은 부위로 실패... 다시 그 부분을 톱으로 자르니 다서 길이가 짧아 졌다. 그래도 갈라진 부위가 깊어 에폭시 메꿈도 약하겠다 싶어 다이소에서 철사를 사다가 끝을 감아 구조적 보강을 하고서야 뚫는데 성공을 했다.




    분홍빛 낚시줄로 끝단을 감아 보강을 하고 몸체에 단청 그림을 그릴까 하다가, 그냥 갈라진 흔적을 무늬 삼기로 했다. 마감처리를 호두기름으로 할까 니스로 할까 인조 옻칠로 할까 하다가 한지공예에서 사용하는 유성 마감재로 했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길바닥 인연을 엮은 셈이다. 비록 無情物이지만 감춘수 시인의 詩 ‘꽃’의 한 구절처럼 의미를 만들어 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이 싯구처럼 말이다.


Designed by Tistory.